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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고 6일 만에 입 연 정몽규 "현산 회장직 물러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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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17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와 관련해 머리 숙여 사과했다. 정 회장은 또한 사고 아파트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정 회장의 사과는 지난 11일 사고가 발생한 지 6일 만이다. 정 회장은 사고 이튿날 현장을 찾았지만, 공개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침묵해 왔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17일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용산사옥 대회의실에서 광주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이날 정 회장은 사퇴 의사를 밝혔다. 장진영 기자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17일 서울 용산구 HDC현대산업개발 용산사옥 대회의실에서 광주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이날 정 회장은 사퇴 의사를 밝혔다. 장진영 기자

정몽규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 사고 피해자 가족과 국민께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며 "아파트의 안전은 물론 회사의 신뢰마저 땅에 떨어져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 사죄했다. 그는 "실종자 구조가 늦어지면서 사과 자리 마련이 늦어졌다"고 했다. 이번 붕괴 사고로 공사 작업자 5명이 실종되고 1명이 사망했다.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밝힌 정 회장은 안전 관리 강화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는 "전국 건설현장에 대한 외부기관의 안전진단을 하고, 안전과 품질 상태를 충분히 확인해 우려와 불신을 끊겠다"며 "골조 등 구조적 안전결함에 대한 법적 보증기간을 기존 10년에서 30년까지 대폭 늘리겠다"고 밝혔다.

사고가 발생한 아파트는 지하 4층~지상 39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이며 1, 2단지 8개 동(오피스텔 포함)으로 나뉘어 있다. 사고가 일어난 건물은 2단지의 201동이다. 2020년 3월 착공했고, 오는 11월 입주를 앞두고 있었다.

사고 소식을 접한 입주 예정자들 사이에선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에 "전체 단지의 전면 철거 후 재시공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 회장은 "외부 전문가와 당국의 안전 진단 결과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수분양자 계약 해지는 물론 (전체 단지의) 완전 철거와 재시공까지 고려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안전 진단 결과에 따라 보상 범위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당장 '알맹이 없는 조건부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날 정 회장은 "사고 원인을 정확히 알아야 대책이 나올 수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사고 발생 후 입주 예정자 등에 대한 사과 없이 대형 법무법인을 먼저 선임했다는 지적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17일 오전 정몽규 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HDC현대산업개발 모습. 장진영 기자

17일 오전 정몽규 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HDC현대산업개발 모습. 장진영 기자

정 회장은 이날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1996년부터 98년까지 현대자동차 회장을 지내다 자동차의 경영권이 정몽구 회장에게 넘어가면서 1999년 3월 현대산업개발을 물려받았다. 2018년 지주사 개편 이후 정 회장은 HDC와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을 겸하고 있었다. 정 회장은 지주사 HDC의 지분 33.68% 보유한 최대주주이며, HDC는 현대산업개발 지분 40%를 보유한 지배회사다.

사고 이후 일각에서 제기된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 대한축구협회장 사퇴 등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현대산업개발 경영에서 물러나지만 HDC그룹 회장직은 유지할 뜻을 내비쳤다. 그는 "대주주로서 할 수 있는 건 다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재개발 구역 참사에 이어 7개월 만에 신축 중이던 아파트 외벽이 무너지는 대형 사고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사고 소식이 전해진 후 주가는 약 27% 하락했다. 광주광역시는 "시가 추진하는 사업에 일정 기간 현대산업개발의 참여를 배제하는 방안도 법률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광주는 물론 수도권의 사업 수주 현장에서도 계약 해지 통보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총체적 위기 상황에서 사태 진화를 위해 그룹 총수의 결단이 필요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정 회장이 그룹 경영에서 손을 뗄 것이란 관측도 있었지만 그럴 경우 책임 회피 논란이 일 수 있다"며 "그룹의 핵심이자 사고 아파트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 경영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가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16일 오전 붕괴사고가 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신축 공사 현장에서 사고 건물에 설치된 145m 높이의 타워 크레인 해체용 1200t 규모 크레인을 설치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HDC현대산업개발이 16일 오전 붕괴사고가 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신축 공사 현장에서 사고 건물에 설치된 145m 높이의 타워 크레인 해체용 1200t 규모 크레인을 설치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정 회장은 "지금 단계에서는 고객과 이해관계자의 신뢰 회복이 최우선"이라며 "향후 어떤 역할을 할지는 구체적으로 심사숙고해서 말하겠다"고 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정 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본 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사퇴가 능사도 아니고, 책임지는 모습도 아니다"며 "사고 수습 전면에 나서 책임 있는 조치를 확실하게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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