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박물관서 찾은 구순 엄마의 다락방 찻잔세트

중앙일보

입력 2022.01.17 13:00

[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91)

“혹시 다락방에 있던 그릇세트 어딨는지 모르냐?” 구순이 다 되어가는 친정어머니의 질문이다. 친정집의 다락방이라면, 주택을 떠나온 지가 언제인데…. 그렇다면 적어도 삼십여 년은 넘었다는 얘기인데 느닷없는 다락방이며 그릇은 무슨 얘기지?

더럭 겁이 났다. 혹시 치매 증상이 오신 걸까? 어떡하지?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이 재빠르게 오고 갔다. 연로한 부모님이 있는 자녀들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추억의 다방을 재현한 장소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패드7. [그림 홍미옥]

추억의 다방을 재현한 장소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패드7. [그림 홍미옥]

사연은 이랬다. TV 드라마에서 옛날 같은 곳이 나왔는데 당신이 좋아하던 그 커피잔 세트가 나왔다고 했다. 당시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지구촌의 화제여서 아폴로 상호를 건 가게가 많았다고 한다. 80년대의 E.T 당구장, E.T 다방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고 보니 친정집 다락방에 그런 게 있긴 했다. 내 기억에도 선명한 그 황실장미세트 그릇들은 어디 있을꼬? 지금이라면 엔티크, 레트로라는 이름을 달고 꽤 고가에 거래될 텐데 말이다. 갑자기 궁금해서 못 살겠다.

친구의 찻잔엔 그리운 추억이 넘실대고

오래된 어머니의 찻잔세트는 추억을 소환한다. [사진 백주경]

오래된 어머니의 찻잔세트는 추억을 소환한다. [사진 백주경]

의외의 장소에서 보물을 찾았다는 오랜 친구의 이야기다. 그녀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낡은 밥솥 안에 보자기에 켜켜이 쌓인 그릇을 발견했다. 그것은 친구의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던 장미꽃 찻잔 세트였다.

먼저 세상을 뜬 아내의 찻잔을 보자기에 꽁꽁 싸서 밥솥 안에 간직해 왔던 것이다. 못 되어도 50여 년은 훌쩍 지났을 옛날 찻잔들이다. 그날 친구는 찻잔 가득 부모님의 향기를 담아 시간 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보아도 곱고 예쁜 그것들은 엄마의 부엌에서 딸의 식탁으로 이사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날부터 친구의 보물 1호는 밥솥에 숨어 있던 찻잔 세트이리라. 친구는 다락방 대신 밥솥 안에서 보물을 찾은 셈이다.

양은도시락 흔들기와 레트로 열풍  

레트로 열풍에 인기를 끌고있는 소품들. [사진 홍미옥]

레트로 열풍에 인기를 끌고있는 소품들. [사진 홍미옥]

너도나도 양은 도시락을 흔드는 장면을 보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신기하지 않다. 상하좌우로 도시락을 흔드는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즐겁고 유쾌하다. 고깃집의 사이드 메뉴로는 최고라는 옛날 도시락 이야기다.

반찬이라야 커다란 분홍 소시지와 김 가루, 그리고 계란 프라이와 볶음김치 정도에 불과하다. 별거 아닌 옛날 도시락 메뉴가 젊은 친구에겐 이벤트성 놀이로, 중장년에겐 향수 어린 추억으로 최고 인기를 누린지는 오래다. 뉴트로, 레트로 열풍이 가져온 현상이다. 최근 들어 급격히 늘어나는 테마형 카페도 그 범주에 속한다고 보면 되겠다. 특히 향수를 자극하는 레트로 카페가 대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장년층이나 좋아할 감성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주 고객층은 젊은이다. 그들로서는 처음 보았을 게 분명한 꽃무늬 쟁반이나 다이얼식 전화기, 소위 이발소 그림이라 불렸던 풍경화 액자임에도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땐 그랬지’를 말하는 우리와 ‘와~저땐 저랬구나’를 말하는 두 세대의 만남이라고 한다면 무리일까?

박물관에서 발견한 다락방의 보물

파주의 한 박물관에는 옛날 다방을 재현해 놓은 코너가 있다. 무심코 들여다본 그곳에서 앞서 말한 문제의(?) ‘다락방의 황실장미세트’를 발견했다. 정확히 말하면 비슷한 모양의 그릇이다. 사실 이름이 좋아 불로초라고 황실에서 사용했을 리 만무한 그릇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어렴풋한 기억을 풀어내자면, 70년대만 해도 온갖 ‘계’가 성행할 무렵이었던 것 같다. 목돈을 모으는 계는 물론이고 값나가는 그릇. 코트, 이불 등을 계라는 이름으로 장만하곤 했다. 카드 할부가 없던 시절이니 그럴 만도 했다. 젊었던 친정 엄마는 황실이라는 이름에 속아 넘어갔을 수도 있겠고 이쁜 그릇을 갖고픈 마음도 있었을 게다.

너무 아까워서 꽁꽁 싸서 다락방에 올려 뒀던 당신의 보물, 가끔은 색이 고운 홍차를 우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표정으로 티타임을 즐기기도 했을까? 언제 버렸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 그릇 세트의 행방을 묻는 말은 날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몇 차례의 이사로 행방이 모호한 그것은 분명 상자째로 버렸을 것이 틀림없다. 혹시 이름도 우아한 황실장미세트는 돌고 돌아 몇십 년을 구비 돌아 여기 박물관으로 온 것일까? 아니면 노모의 기억 속 다락방에서 오늘도 자태를 뽐내며 한껏 우아함을 과시 중일까? 사소한 물건과 함께 따라온 추억이 못내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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