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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고립'이 만든 담백한 음악…11번째 앨범 낸 나윤선

중앙일보

입력

나윤선 11집 'Waking World'의 표지 사진은 나윤선이 리모컨으로 셀프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 울렁증이 있다는 그를 위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직접 찍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동생의 아이디어다. 사진 엔플러그

나윤선 11집 'Waking World'의 표지 사진은 나윤선이 리모컨으로 셀프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 울렁증이 있다는 그를 위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직접 찍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동생의 아이디어다. 사진 엔플러그

29년차 재즈가수 나윤선(53)은 아직도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고 했다. 지난 6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자리에서도 사진은 그의 친동생 나승렬(51) 포토그래퍼가 찍었다. 그런 그의 새 앨범 ‘웨이킹 월드(Waking World)’ 표지는 정면을 똑바로 응시한 흑백사진이다. 리모콘을 들고 그가 셀프 촬영했다. 나윤선은 “머리, 화장도 안하고, 집에 있는 옷을 입고 편하게 찍었다”며 “카메라를 이렇게 뚫어지게 쳐다본 앨범 사진은 처음”이라고 했다.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 인터뷰

나윤선 11집 'Waking World' 표지 사진은 집 앞 풀밭에 카메라만 설치한 채 나윤선이 셀프촬영했다. 나윤선은 "카메라 뒤에 사람이 없으니까 아무래도 똑바로 렌즈를 바라볼 수 있고, 편안하게 찍힌 것 같다"고 했다. 사진 엔플러그

나윤선 11집 'Waking World' 표지 사진은 집 앞 풀밭에 카메라만 설치한 채 나윤선이 셀프촬영했다. 나윤선은 "카메라 뒤에 사람이 없으니까 아무래도 똑바로 렌즈를 바라볼 수 있고, 편안하게 찍힌 것 같다"고 했다. 사진 엔플러그

“두 달일 줄 알았는데 2년” 코로나19 고립이 만든 11곡

지난 6일 서울 중구에서 만난 나윤선은 "첫 앨범같은 느낌이다. 만들면서 나와 가장 많이 대화한 음반"이라고 말했다. 사진 나승렬

지난 6일 서울 중구에서 만난 나윤선은 "첫 앨범같은 느낌이다. 만들면서 나와 가장 많이 대화한 음반"이라고 말했다. 사진 나승렬

나윤선이 11번째 앨범을 냈다. 가사부터 음 하나하나 직접 쓴 11곡을 모았다. 자작곡만으로 앨범을 꽉 채운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나윤선은 “첫 앨범 같은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앨범 소개에는 ’코로나‘ ’단절‘ ’고립‘에 대한 언급이 많다. 이번 앨범은 코로나19로 한국에서 보낸 2년간, 그의 침체의 결실이다. 1995년 프랑스 유학 이후로 내내 전 세계를 떠돌았던 나윤선은 “인생의 절반을 어디 한 군데 오래 있어본 적이 없어서 어색했다”며 “혹시 아팠다가 목에 이상이 생기면 안되니 집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살았다”고 했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하던 때 미국에 있던 그는 미국이 국제선을 끊기 직전 거의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다. 2020년 3월 30일,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윤선은 “휴식기를 갖는 아티스트들처럼 나도 좀 쉴까, 생각했다”며 “두 달쯤일 줄 알았는데 2년이 됐다”고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

“다른 일을 해야 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나윤선은 “자발적인 휴식이 아니니까, 계속 이러면 ‘다른 일을 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한없이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중, '곡을 써야겠다' 생각한 건 지난해 1월이다. 작곡·작사를 배운 적 없지만 '한 땀 한 땀' 썼다. 드라마틱한 스캣(즉흥적인 추임새)과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화려하고 다이내믹한 재즈 보컬로 유명한 나윤선의 기존 곡들과는 다른 담백한 느낌의 곡들이다. 쓰기 시작한 뒤부터 우울함이 나아졌다. "이 음악을 듣고 사람들이 0.0001%만이라도 치유됐으면 좋겠다, 했는데 제가 제일 먼저 치유된 것 같다"는 나윤선은 "너무 힘들 때, 아무도 날 도와줄 수가 없을 때 저와 가장 많이 대화한 음반“이라고 11집을 요약했다.

“슬픈 음악 좋아한다, 비틀즈 같은 곡 쓰고 싶었다”

나윤선은 "슬픈 음악을 좋아한다. 밝고 기쁜 건 사실 잘 못하는 편"이라며 ”이번 앨범은 하고 싶은 대로 만들었고, 코로나19로 격리되며 다소 가라앉은 상태에서 만들다 보니 조금 차분한 음악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몇 개 화음만으로 단순하게 만드는, 비틀즈같은 곡을 쓰고 싶은데 그건 다시 태어나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에 써둔 곡도 있지만 대부분 끝내지 못했던 미완성 곡들도 이번에 완성했다. 타이틀곡 ‘웨이킹 월드’는 첫 4마디 정도 써뒀던 곡이다. 나윤선은 “현실이 너무 암담하면 꿈에서 깨고 싶지 않고, 눈을 뜨면 다시 꿈을 꾸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나”며 “지금 현실이 꿈, 악몽 같아서 쓰게 된 곡”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덕? 탓? 귀한 녹음실‧연주자 모두 "OK"

나윤선 11집 녹음실 사진. 코로나19로 일정이 넉넉해진 정상급 연주자들과 녹음실을 섭외할 수 있었다는 나윤선은 “다들 훌륭한 연주자들이라, 제가 드린 악보를 변형시켜서 마음대로 연주해달라고 했는데 제가 쓴 대로만 연주해주셨다”며 “이렇게 모여서 녹음을 하는 것도 오랜만이었고, 끝내고는 울컥했다”고 전했다. 사진 엔플러그

나윤선 11집 녹음실 사진. 코로나19로 일정이 넉넉해진 정상급 연주자들과 녹음실을 섭외할 수 있었다는 나윤선은 “다들 훌륭한 연주자들이라, 제가 드린 악보를 변형시켜서 마음대로 연주해달라고 했는데 제가 쓴 대로만 연주해주셨다”며 “이렇게 모여서 녹음을 하는 것도 오랜만이었고, 끝내고는 울컥했다”고 전했다. 사진 엔플러그

이번 앨범 녹음은 프랑스 파리에서 했다. 곡을 다 만들었을 무렵인 지난해 7월, “‘비행기가 뜬다’고 기적적으로 연락이 와서” 공연을 위해 유럽으로 넘어간 김에 녹음도 했다. 나윤선은 “팬데믹 때문에 원래는 예약이 어려운 녹음실도 다 되고, 섭외가 거의 안되는 바쁜 뮤지션들도 일정이 비어서 완벽한 멤버를 구성했다”며 “행운이라고 해야 되는지 정말…”이라고 말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드럼 위에 쌀을 뿌려 나윤선이 직접 휘저으며 빗소리, 파도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만들기도 했다. 피아노 현이 닿는 곳에 압정을 박아 독특한 소리를 만들기도 했다. 나윤선은 "상상만 하던 소리를 즉석에서 뚝딱뚝딱 만들어줬다, 왜 최고의 연주자들인지 알겠더라"고 극찬했다. 사진 엔플러그

드럼 위에 쌀을 뿌려 나윤선이 직접 휘저으며 빗소리, 파도 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만들기도 했다. 피아노 현이 닿는 곳에 압정을 박아 독특한 소리를 만들기도 했다. 나윤선은 "상상만 하던 소리를 즉석에서 뚝딱뚝딱 만들어줬다, 왜 최고의 연주자들인지 알겠더라"고 극찬했다. 사진 엔플러그

타이틀곡 ‘웨이킹 월드’의 도입부를 여는 하프 같기도, 거문고 같기도 한 묘한 소리는 오래된 업라이트 피아노 뚜껑을 열고 압정을 대서 금속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를 만든 것이다. 드럼 위에 쌀을 뿌려 직접 휘저으며 파도 소리, 빗소리와 비슷한 소리도 만들었다. 나윤선은 “‘이런 소리를 냈으면 좋겠다’ 상상만 하고 설명은 못 했던 소리를, 현장에서 엔지니어와 피아니스트가 모여서 뚝딱뚝딱하더니 만들어냈다”고 극찬했다.

"꿈이 생겼다"는 29년차 톱 재즈가수 

나윤선은 11집 발매 직후 유럽, 미주 투어에 나선다. 사진 나승렬

나윤선은 11집 발매 직후 유럽, 미주 투어에 나선다. 사진 나승렬

"지금 하고 있는 게 꿈을 이룬 거여서, 더 바라면 나쁜 사람인 것 같아서 늘 '꿈이 없다'고 얘기해왔다"는 나윤선은 이번 앨범을 만든 뒤 "코로나19 같은 게 또 올 수도 있으니, 지금 더 책임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꿈이 생겼다고 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대도 노래를 할 것이라는 그는 지금까지도 아침이면 "소리가 잘 나나? 항상 궁금하다"며 소리를 내보고, 물을 2리터씩 마시고, 일 외에는 별다른 취미 없이 오롯이 쉬는, 노래로 꽉 찬 삶을 산다.

지난해 여름 유럽 투어 공연을 다닌 나윤선은 “벨기에는 야외 공연에서 관객들이 마스크를 벗을 수 있어서 얼굴을 보고 공연했다”며 “너무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라 이상하고 당황스러우면서도, 이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달았다. 계속 눈물이 나더라”라고 관객에 대한 갈증을 전했다.

나윤선은 새 앨범의 곡을 들고 글로벌 투어를 위해 지난 10일 다시 유럽으로 향했다. 그는 "관객 만나는 걸 너무 좋아하는데, 이번 유럽 투어에서도 공연 뒤 관객을 만나진 못한다"고 아쉬워하면서도 “취소만 안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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