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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객 없이 초라한 '돌잔치' 치른다…폐지론까지 뜬 공수처 현실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12월 10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 뉴스1

지난해 12월 10일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처장. 뉴스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오는 21일 ‘돌잔치’를 연다. 그런데 하객(賀客)을 부르지 않는다. 지난 1년간 수사기관으로서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가운데 정치적 중립성 논란, 무차별적 통신 조회에 따른 ‘사찰 의혹’ 등 여러 논란을 야기한 것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처장님 말씀’에 기념촬영만…기자간담회도 취소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오는 21일 오후 2시 정부과천청사 5동 대회의실에서 출범 1주년 행사를 연다. 외부인사 초청없이 김진욱 처장과 여운국 차장, 부장검사, 평검사 등 28명만 참석한다. 행사는 ‘처장님 말씀’과 기념촬영으로 구성된다.

당초 공수처는 1주년 행사와 함께 기자간담회 개최도 추진했지만, 취소됐다. 또 지난해 6월 말 제작이 완료된 공수처의 새로운 로고 등 CI(Corporate Identity) 발표도 검토했다가 무산됐다고 한다. 공수처 관계자는 “1주년 행사만 방역지침을 준수하면서 조촐하게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수처 신설이 여권의 오랜 염원이었고, ‘검찰 개혁의 상징’으로 불렀던 점을 고려하면 초라한 1주년 행사다. 지난해 1월 21일 출범과 함께 성대한 현판식을 열었던 것과도 대조된다. 현판식엔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참여해 손뼉을 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이번 1주년 행사가 조용히 치러지는 것을 두고 법조계에선 “각종 논란에 ‘폐지론’ 까지 나오는 공수처의 현실을 보여준다”라는 평가가 나온다.

1년간 기소 0…불법 출금 관련 사건 檢에 떠넘기거나 뭉개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이 범한 직권남용, 수뢰, 허위공문서 작성 및 정치자금 부정수수 등의 특정범죄를 척결하고…정의롭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설치되었습니다. (공수처 홈페이지)

이를 근거로 판단하면 공수처는 그동안 해야 할 일을 사실상 하나도 하지 않았다. 공수처가 출범 이후 직접 기소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다.

‘1호 사건’으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특혜채용 의혹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긴 했지만, 당초 1차 조사를 맡은 감사원이 공수처가 아닌 경찰에 고발했다는 점에서 “경찰이 할 만한, 상대적으로 경미한 범죄를 경찰로부터 뺏어와 생색을 냈다”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시민단체들은 “소 잡는 칼로 감자 깎냐”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존재 가치를 증명할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해 3월 공수처법에 따라 수원지검으로부터 검찰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와 이에 대한 ‘수사 무마’ 의혹 사건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같은 달 “수사 인력이 아직 갖춰져 있지 않다”라는 이유를 대며 사건을 되돌려 보냈다. 이 과정에서 “수사를 마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할 때 다시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해야 한다”라고 초유의 단서를 달았다가 검찰과 충돌하기도 했다.

이후 수원지검이 공수처를 제쳐두고 이규원 검사와 이성윤 고검장 등을 재판에 넘겼는데,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법은 수원지검의 손을 들어줬다. 같은 달 공수처는 아직 기소되지 않은 사건의 나머지 부분을 다시 가져와 놓고는 현재까지 7개월가량 동안 뭉개고 있다.

또 지난해 3월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넘겨받은 ‘청와대발 기획 사정(司正)’ 의혹 일부에 대해선 지난해 4월 수사에 착수하고선 8개월가량 뭉개다 지난달에 결론을 내지 않고 되돌려보냈다. 공수처는 “의혹의 나머지 부분을 수사한 중앙지검이 합일적으로 최종 처분하는 게 좋아 보인다”는 이유를 댔다. 결국 같은 달 중앙지검이 이규원 검사를 추가로 기소했다.

지난해 1월 21일 공수처 현판식이 열렸다. 당시 기준으로 김진욱 공수처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장진영 기자

지난해 1월 21일 공수처 현판식이 열렸다. 당시 기준으로 김진욱 공수처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장진영 기자

기자 가족까지…340여 명 상대 ‘불법사찰’ 의혹

공수처는 이성윤 고검장에 대한 수사에서 성과는 못 낸 채 ‘사찰 의혹’ 논란에 휩싸였다. 공수처는 김진욱 처장의 이성윤 고검장에 대한 ‘관용차 에스코트 조사(황제 조사)’ 사실이 지난해 4월 드러나자 관련 폐쇄회로(CC)TV 영상을 단독 보도한 TV조선 기자들의 취재 경위를 뒷조사하며 불법 사찰 논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에는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내용을 단독 보도한 중앙일보 기자들의 취재원을 캐기 시작했다. ‘공소장 유출 의혹’ 수사를 펼친다는 구실을 대면서다.

이 과정에서 공수처의 무차별적인 통신자료 조회 사실이 드러났다. 공수처는 16일 현재 언론인 및 기자의 가족, 국민의힘 의원,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원, 불법 출금 의혹 공익신고인인 장준희 검사, 윤석열 팬클럽 카페의 가정주부 회원을 포함해 341명의 통신자료(통신서비스 가입자 신상정보)를 총 458건 조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일보·TV조선 등 일부 기자에 대해선 통신사실확인자료(전화통화나 카카오톡 대화 상대방 내역 등)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진욱 처장은 “적정하진 않을 수 있어도 적법하게 진행한 수사의 일환이었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尹 관련 수사만 4건…야당, “공수처는 ‘윤수처’”

‘정치적 중립성 훼손’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공수처는 지난해 9월부터 윤석열 후보가 연루된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을 집중 수사했다. 여권에선 “공수처가 이제서야 제 할 일을 한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대선이 두 달도 남지 않은 현재까지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또 공수처가 직접 수사에 나선 12건 중 4건이 윤 후보 관련 수사다. 이에 야권에서는 공수처를 두고 ‘윤수처’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김 처장은 취임사에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철저히 지키겠다”라고 했지만, 공수처는 출범 후 1년 내내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휩싸였다. 이를 두고 공수처 내부서도 “윤 후보가 범죄에 연루됐다는 특별한 증거 없이 무리하게 윤 후보를 수사 선상에 올렸다”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윤 후보 관련 수사를 하면서 무리수를 뒀다가 망신을 사기도 했다. 공수처는 지난해 10월 고발 사주 의혹 수사 도중에 주요 피의자인 손준성 검사에 대해 체포영장이 기각되자 곧장 이례적으로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되고, 구속 영장을 재청구했다가 역시 기각됐다. 이를 두고 대한변호사협회는 “규칙과 규율을 무시하고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으며 이례적으로 인신을 구속하는 영장을 거듭 청구하는 기본권 침해 행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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