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붕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최현주 기자 중앙일보 기자
최현주 생활경제팀 기자

최현주 생활경제팀 기자

1970년 4월 서울 마포구 와우지구 내 시민아파트가 무너졌다. 준공 4개월 만이다. 이 아파트 공사 기간은 평균 아파트 공사 기간의 절반 수준인 1년에 불과했다. 철근 70개가 있어야 할 기둥엔 5개뿐이었다. 이 사고로 7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995년 6월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당시 매출액 기준 국내 1위 백화점이었고 준공 6년 차였다. 상가로 쓰일 건물을 백화점으로 바꾸면서 벽을 없애 건물 하중을 기둥으로만 버티는 구조였다. 그나마 철근 16개가 있어야 할 기둥엔 8개뿐이었다. 바닥과 기둥을 연결하는 철근도 지지력이 있는 ‘L’자형이 아니라 ‘ㅡ’자형을 썼다. 사망자 502명을 포함해 사상자 1445명이 나왔다.

2022년 1월 광주 서구 화정동 화정아이파크가 무너졌다. 준공을 10개월 앞둔 공사 중인 아파트의 외벽이 무너지며 인부 1명이 숨지고 5명이 실종 상태다.

반세기 전도, 지금도 한국은 여전히 부실공사 늪에 빠져있다. 화정아이파크 붕괴 원인을 보자. 부실한 콘크리트 타설(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붓는 작업), 졸속 양생(콘크리트가 굳어지는 과정), 감리 부실, 안전 교육 미흡, 무리한 공사 기간 단축 등이 이유로 꼽힌다. 그런데 이 모든 이유를 유발하는 근본 원인이 있다. ‘최저가 낙찰제’다.

‘아이파크’ 아파트의 시공사는 현대산업개발(현산)이지만, 실제로 현산이 짓지 않는다. 설계 정도만 한다. 예컨대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100명 중 현산 직원은 현장소장·공무과장 등 10명 수준이다. 나머지는 하청업체 직원이다. 현산 직원은 관리만 한다.

문제는 실제 공사를 할 하청업체를 선정하는 기준이다. 공사 입찰에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업체가 뽑힌다. 무리해서라도 공사비를 낮게 제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니 공사가 시작되면 어떻게든 이윤을 내기 위한 온갖 방법이 동원된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5명이 작업해야 할 일을 3명이 한다. 필요한 장비도 10대가 아니라 4대만 사용한다. 공사 기간 단축은 필수다. 아예 재하청을 주기도 한다. 그러잖아도 낮게 수주한 공사비보다 더 싸게 일을 맡긴다. 부실 공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사고 수습도 중요하지만, 70년째 최저가 낙찰제를 고수하는 정부도 이번 사고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테다. 줄 돈은 제대로 주고 할 일은 제대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