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자막 없는 OTT 브로드웨이 최고작 ‘해밀턴’…팬들이 자막 만든다

중앙일보

입력 2022.01.17 00:02

업데이트 2022.01.1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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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미국의 독립전쟁과 건국의 역사를 다룬 뮤지컬 ‘해밀턴’. 랩·힙합·재즈가 결합한 현대적 음악의 뮤지컬이다. 가운데가 린 마누엘 미란다. [사진 디즈니플러스]

미국의 독립전쟁과 건국의 역사를 다룬 뮤지컬 ‘해밀턴’. 랩·힙합·재즈가 결합한 현대적 음악의 뮤지컬이다. 가운데가 린 마누엘 미란다. [사진 디즈니플러스]

“‘해밀턴’ 한글 자막입니다. 틈틈이 업그레이드하겠습니다.”

이런 글이 블로그와 커뮤니티에 속속 올라오고 있다. 뮤지컬 팬들이 기다리다 못해 직접 번역에 나섰다. 한국 공연 계획도, 공식 한글 자막도 없지만 위상만큼은 대단하다. 2015년 이후 미국 브로드웨이 기록을 새로 세우고 하나의 현상이 된 뮤지컬 ‘해밀턴’ 얘기다.

‘해밀턴’은 2016년 토니상 11개 부문을 수상했고, 그래미상뿐 아니라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으로 초청해 전체 작품을 공연했고, 2016년 토니상 시상식 오프닝에 영상으로 출연해 ‘해밀턴’을 추천했다. 인기가 치솟아 2500달러(약 297만원)로 평균값보다 5배 이상 비싼 암표를 산 후기가 2016년 뉴욕타임스에 올라오기도 했다. 벌어들인 돈도 막대하다. 팬데믹 여파 이전인 2020년 2월까지 수익이 6억 4900만 달러(약 7719억원, 공연 전문 사이트 ‘브로드웨이 월드’ 집계)다.

2015년 시작, 코로나 전까지 7700억원 벌어 

뮤지컬 ‘해밀턴’에 출연한 린 마누엘 미란다(왼쪽)와 필리파 수. [사진 디즈니플러스]

뮤지컬 ‘해밀턴’에 출연한 린 마누엘 미란다(왼쪽)와 필리파 수. [사진 디즈니플러스]

한국에서 공연된 적은 없다. 하지만 지난해 11월부터 ‘해밀턴’을 볼 수 있다. 디즈니 플러스가 한국에 상륙하면서다. 2019년 미국에서 오픈한 디즈니 플러스는 2020년 7월 미국 독립기념일에 ‘해밀턴’ 공연 영상을 앞세워 구독자를 유인했다. 브로드웨이에서 2016년 공연한 무대를 영상화한 160분짜리 작품이다. 다만 한글 자막은 없다. 디즈니 플러스는 영어·스페인어·포르투갈어 자막만 제공하고 있다. 제작사가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밀턴’은 기록적인 흥행을 하고도 세계 무대 진출을 생각하지 않는 독특한 뮤지컬이다. 미국 밖에선 영국·호주 공연만 한다. 무엇보다 줄거리가 미국 건국 역사를 알아야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건국의 주역 중 하나인 알렉산더 해밀턴(1757~1804).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에 가려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NBC ‘더 투나잇 쇼’의 지미 팰런조차 “누구인지 잘 몰랐다. 지폐(10달러)에 얼굴이 있다는 정도만 알았다”고 했을 정도다.

그런 데다 가사는 쉴 틈 없이 쏟아지고 풍자적이다. 중앙은행 설립에 대한 논쟁을 랩 배틀로 펼치고, 연방제를 옹호하는 이들의 ‘연방주의자 논집(The Federalist Papers)’을 중요하게 다룬다. 해밀턴이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덕분에 연방정부 채권과 같은 경제 이슈도 등장한다. 미국의 아버지들이 나와 랩을 하고 힙합에 맞춰 아크로바틱한 안무로 무대를 채운다. 힙합, 재즈, R&B가 결합한 음악은 현대적이고, 전개는 놀랄 만큼 빠르며 안무는 강렬하다. 뉴욕타임스는 “대중음악의 가장 최신 장르로 서사성과 감수성의 힘을 가졌으며 뮤지컬의 문법을 바꾼 작품”이라고 평했다.

작품의 중심에는 현재 미국 문화계의 총아인 린 마누엘 미란다(42)가 있다. 책  『알렉산더 해밀턴』(2004)을 읽은 후 각색·작사·작곡에 해밀턴 역으로 출연까지 했다. 미란다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인 더 하이츠’(2008),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2016)의 작곡가다. 참신한 감각으로 여러 장르에 포진한 스타 창작자다. 넷플릭스에서 지난해 11월 오픈한 뮤지컬 영화 ‘틱, 틱… 붐’의 감독을 맡아 영리한 장면 연출과 수준 높은 음악으로 호평받았고, 디즈니 최신작 ‘엔칸토’에서는 남미 음악을 기본으로 유머를 얹어 재능을 과시했다. 그 중 ‘입에 담지 마 브루노(We Don’t Talk About Bruno)’는 미국 스포티파이와 아이튠스 1위, 빌보드 핫100 5위에 올랐다.

투자·제작비 부담, 한국 공연 가능성 작아 

푸에르토리코계인 그는 ‘해밀턴’에서 흑인, 라틴계, 아시아계 등 모든 인종의 배우를 등장시켰다. 알렉산더 해밀턴이 카리브해 출신의 이민자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노래 ‘이민자는 해낸다(Immigrants We Get The Job Done)’가 나올 때 객석에서 뜨거운 박수가 터진다.

여러모로 핫한 작품이지만 한국 공연 가능성은 작다. 뮤지컬 평론가 원종원(순천향대 교수)은 “장애물이 너무 많다”고 했다. “청중이 미국 역사를 자세히 알아야 하는 데다 큰 흥행작이기 때문에 투자비와 제작비는 상당하다. 게다가 힙합 라임의 한글 번역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는 “본래 비극은 세계 공통이지만 풍자와 파격은 좀 더 지역적”이라고 설명했다.

린 마누엘 미란다의 전작 ‘인 더 하이츠’는 2015년 한국에서 공연했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뉴욕 맨해튼의 워싱턴 하이츠에 사는 중남미계 이민자들의 스토리로 미란다 스타일의 힙합이 녹아있다. 독특한 소재에 집중하는 미란다가 미국을 넘어 세계의 스타 창작자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원종원 평론가는 “미란다의 작품 외에도 특정 종교를 소재로 하는 ‘북 오브 몰몬(The Book of Mormon)’ 등 타 문화권이 이해하기 힘든 작품들이 있다”며 “작품 자체보다도 늘 새로움을 향하는 창의성과 실험정신은 한국에도 이식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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