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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도 아닌데 20년산? 250ml 하나에 13만원 '마법의 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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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압구정동의 현대백화점 본점 지하1층의 소스코너. [사진 독자제공]

서울 압구정동의 현대백화점 본점 지하1층의 소스코너. [사진 독자제공]

김연정(36)씨는 주말인 15일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식품관에 들러 갖가지 소스를 구경했다. 소스 코너 담당 직원은 이탈리아 브랜드 올리브 오일을 가리키며 “박진영(JYP엔터테인먼트 대표)도 먹는 건데 한 숟갈씩 드시면 건강에 너무 좋다”며 권했다.
김씨는 “소스가 주는 미묘한 차이가 음식 맛을 얼마나 올려주는지 경험한 뒤로는 본 재료만큼 신경 써서 고른다”며 “계란간장밥 하나를 해도 전용 간장이 따로 있고 같은 종류라 해도 하바네로(더 매운 맛의 칠리소스)가 주는 맛, 아이올리(마늘이 들어간 마요네즈)가 주는 맛이 확실히 다르다”고 말했다.

소스 수입·매출 20~30%대 증가 

한국인의 밥상에서 이색 식자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참기름·들기름·식초·조청 등 전통 조미료 외에도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 각종 소스까지 종류가 다양해지고 점점 고급화하는 모습이다.
16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소스류 생산액은 2016년 1조6584억원에서 2020년 2조296억원으로 22.4% 성장했다. 같은 기간 소스류 수입도 1억3928만 달러(약 1660억원)에서 1억 8769만 달러(약 2200억원)로 34.8% 급증했다.

소스류 수출입 동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소스류 수출입 동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런 추세는 유통가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이마트에 따르면 샐러드와 파스타, 스테이크에 주로 쓰이는 올리브 오일은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27.6% 증가했다. 이 가운데 항산화 음식으로 꼽히는 아보카도에서 짜낸 아보카도 오일 매출이 17.8% 늘어났고, 오메가3가 풍부하다고 알려진 아마씨 오일, 비타민E가 많다는 아르간 오일 등도 두 자릿수 매출 신장률을 기록했다.

작은 병에 수만원 대 오일·식초 인기  

소스 수요가 늘어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집에서 밥을 먹는 경우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또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품질 좋은 식재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소비자 입맛이 고급화·미식화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맞벌이를 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정진숙(42)씨는 “원래 요리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집에서 아이들 밥을 챙겨주다 보니 간편하면서도 몸에 좋은 샐러드류나 소스 하나로 여러 맛을 낼 수 있는 파스타를 많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포도즙을 숙성시킨 발사믹 식초는 발효식품인 데다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아 자주 사용한다”면서 “브랜드나 성분에 따라 풍미가 너무 달라 비싸도 고급 제품을 사는 편”이라고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소스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왼쪽)과 고급 발사믹 식초.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및 쇼핑 사이트 화면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소스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왼쪽)과 고급 발사믹 식초.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및 쇼핑 사이트 화면 캡처]

발사믹 식초는 8·12·20년산 등 해외 브랜드의 고급 제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탈리아 주세페주스티 발사믹 식초 20년산은 250mL에 10만원이 훌쩍 넘는다. 올리브 오일도 로렌조·꾸악·세니아네제 등 유럽 브랜드 제품의 경우 500mL에 3만~5만원대로 고가다.
문지명 이마트 조미료 바이어는 “코로나19로 건강한 식생활 트렌드가 늘면서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건강하게 먹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집에서도 레스토랑에서처럼 고급스러운 맛을 낼 수 있는 조미료나 소스 수요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해외여행 대신 ‘이국적인 맛’ 

서울 서교동의 식료품점인 '슈퍼스티치'. 다양한 종류의 식자재와 소스류, 음식, 커피 등을 판매한다. [사진 슈퍼스티치]

서울 서교동의 식료품점인 '슈퍼스티치'. 다양한 종류의 식자재와 소스류, 음식, 커피 등을 판매한다. [사진 슈퍼스티치]

흥미로운 건 소스 등 이색 식자재가 20·30대가 주축인 MZ(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 인기라는 점이다. 외국어가 잔뜩 쓰인 다양한 소스를 구경하고 이국적인 맛을 경험하며 마치 해외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편집매장 형식으로 꾸며진 크레타마켓(서울 망원동), 슈퍼스티치(서울 서교동) 등의 식료품 가게가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 장소가 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김연정씨는 “코로나 전 해외여행을 가면 늘 마트나 시장에서 먹거리를 구경하는 재미가 컸는데, 이국적인 식재료들을 보고 있으면 국내에서도 그때 그 기분이 느껴져 즐겁다”고 했다.

롯데백화점이 설 명절 선물로 출시한 '로렌조 올리브오일&말레티레냐니 파밀리아 발사믹 50년산 세트' (왼쪽)와 이마트가 선보인 프리미엄 오일 '대체코 세트'. [사진 각 업체]

롯데백화점이 설 명절 선물로 출시한 '로렌조 올리브오일&말레티레냐니 파밀리아 발사믹 50년산 세트' (왼쪽)와 이마트가 선보인 프리미엄 오일 '대체코 세트'. [사진 각 업체]

실제 롯데백화점이 지난해 프리미엄 식자재 매출을 살펴보니 2030세대의 매출이 전년 대비 50% 이상 급증했다. 또 이색 소스를 산 10명 중 7명 이상이 2030세대였다.
이 백화점은 이런 트렌드를 올 설 선물에 반영해 ‘프리미엄 그로서리 세트’ 품목을 지난해 설보다 50% 늘렸다. ‘로렌조 올리브 오일&말레티레냐니 파밀리아 발사믹 50년산 세트’는 32만원, ‘산줄리아노비나그룸 그로서리 세트’는 12만원, ‘사바티노 트러플 오일&솔트 세트’는 5만3000원으로 말 그대로 ‘럭셔리 조미료’ 선물이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 관계자는 “서구화된 식사, 대중적이고 트렌디한 파스타·스파게티 요리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지난해 서구형 소스가 시장을 주도했다”며 “소비자의 기본 소득이 증가하고 취향이 세련돼 지면서 레스토랑과 비슷한 질 좋은 요리를 따라하고 적절한 요리법을 찾는 고급·미식 트렌드가 점점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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