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억 받고 명퇴?…그 전에 꼭 읽어야 할 '명퇴남 6년 후' [더오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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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109)

연초부터 금융계를 중심으로 희망퇴직이 이어진다. 경쟁이라도 하듯 수백에서 수천 명씩 감축하겠다고 발표하고 그 대상도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50대에서 진작에 40대로 내려왔다. 그런 발표에는 특별퇴직금으로 몇 년 치 급여를 더 주고, 재취업지원비, 건강검진비, 자녀학자금 등 이것저것 잘 챙겨주겠다는 조건이 붙는다. 금융권의 특별퇴직금은 억대는 기본이고 6억~7억원에 이르는 곳도 있다.

나는 2016년에 명예퇴직했다. 회사에서 일괄 시행하는 것이 아니었고, 나 혼자 신청한 것이라 주변에 알리지 않고 오랫동안 차분히 미래 경로를 구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온 지 만 6년,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갔다. 그동안 한 일은 여러 매체에 쓴 글이 120회, 가끔 강의하러 다니고, 책 한 권 내고, 남의 책 두 번 만들어 주고, 해외 한 달 살기 네 번, 틈틈이 아내 업무 돕고, 글과 관련한 부업하고, 지방으로 이주하고, 대학원 다니고, 책 읽고, 이것저것 배우고, 술 마시고, 살림하고, 어깨까지 머리 길러보고, 강아지 키우고, 병원 다니고, 코로나도 걸려보고…. 그 사이에 두 아이는 대학 진학과 취업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다. 조직에서 전성기를 보낸 후 남은 몫의 시간을 가지고 사는 삶은 이렇다. 아직도 꿈에 옛 직장 사무실과 사람들 형체가 왜곡된 채 나타난다. 주변에서는 후회 없냐고,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 대답은 잠시 후에 하겠다.

정년퇴직의 개념이 희미해진 시대라서 중년에 이른 직장인이라면 누구든 마음속에 퇴직 시점에 대한 무거운 고민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사진 박헌정]

정년퇴직의 개념이 희미해진 시대라서 중년에 이른 직장인이라면 누구든 마음속에 퇴직 시점에 대한 무거운 고민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사진 박헌정]

중년 직장인 마음 속에는 퇴직 시점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늘 있을 테고, 퇴직을 진지하게 생각 중이라면 어느 날 사내 전산망에 뜬 희망퇴직 공고에 심장이 요동칠 것이다. 조직 내 경쟁과 직장생활의 피로감, 미래 계획과 현재 입지에 대한 고민…. 청춘을 보낸 직장을 떠나려는 저마다의 사정을 감히 누가 상상이나 할까. 시간을 두고 연착륙을 준비하는 정년퇴직과 달리 희망퇴직은 서둘러 결단을 내려야 하기에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차분히 미래를 생각하며 판단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퇴직 고민의 핵심은 단연 ‘돈’이다. 몇 억의 특별퇴직금은 남은 인생에 어떤 힘이 되어줄까? 나는 2~3년 치 급여를 더 받고 나왔다. 내 연봉이면 신입사원 몇 명의 몫이었으니 회사는 자발적으로 빠져주는 내게 고마웠는지 특별승진을 비롯해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마치 내 자리에 대한 권리금을 챙기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사실 나의 몫은 회사의 이득에 비하면 적은 것이었다. 내가 3년 치 임금을 더 받고 나와 그 3년을 집에서 보낸다면 받은 돈을 다 쓰는 셈이고, 회사에 그대로 눌러앉아 3년을 버틴다면 그다음부터는 그보다 훨씬 큰 금액이 내 몫으로 쌓이는 것이다. 3년 정도 시간은 정말 금방 지나간다. 게다가 목 좋은 곳의 권리금은 버틸수록 올라가기도 한다.

금융권을 중심으로 희망퇴직이 매년 정례화하고 있다. 요즘은 50대에서 40대, 심지어 30대까지 희망퇴직 신청 대상이라는 보도가 심심찮게 나온다. [사진 박헌정]

금융권을 중심으로 희망퇴직이 매년 정례화하고 있다. 요즘은 50대에서 40대, 심지어 30대까지 희망퇴직 신청 대상이라는 보도가 심심찮게 나온다. [사진 박헌정]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 돈을 받고 나오는가? 그 대답은 ‘오죽하면’일 것이다. 내부적 압박이나 어떤 한계로 인해 새로운 계기가 필요할 수 있다. 희망퇴직 또는 명예퇴직은 정년까지의 기대수입과 명예퇴직금 사이의 차액으로 정년까지의 시간을 구매하는, 일종의 ‘쇼핑’이다. 그렇게 산 시간은 자유나 휴식이 될 수도 있고, 더 큰 기회가 될 수도 있고, 후회와 한숨이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직장에서 전성기에 받던 만큼의 돈을 바깥에서 벌 가능성은 ‘매우 적다’.

그러니 조직에서 제시하는 논리와 내 상황을 잘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희망퇴직, 명예퇴직이라는 말에는 존엄, 존중, 선택 같은 느낌이 담겨있지만, 그 진정한 의미는 몇 년 후에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회사는 조직의 순환과 생존을 위해 끝없이 껍질을 벗어야 한다. 그들은 탈피(脫皮)하고 나는 탈출한다. 이 두 개가 잘 맞아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조직은 나보다 계산이 뛰어나다. 양쪽 모두에게 윈-윈일 수 있어도 그 저울은 늘 회사 쪽으로 기울기에, 눈앞의 목돈에 현혹되지 말고 퇴직의 의미부터 차분히 생각하면 좋겠다.

퇴직은 ‘혼자’가 되는 일이다. 인간은 본래 혼자라는 철학적 명제와 달리, 혼자라는 건 생각보다 낯설고 불편하며, 적응하기까지 고통스러울 수 있고 끝까지 적응 못 하는 사람도 있다. 곧바로 재취업하지 않는 한, 돈 버는 것도 혼자, 노는 것도 혼자, 일상생활도 혼자 해야 한다. 스마트폰, 컴퓨터 프로그램, 바뀌는 제도…. 지금껏 조직에서 누군가에게 도움받던 것도 혼자 알아가야 한다. 나오는 순간 주변에는 사람이 없다. 여전히 소중한 가족과 아내도 생각하던 것과 다를 수 있다. 나의 경우 작가로 전직했지만 내 글은 지인은 물론이고 가족들도 잘 안 본다. 그들이 내게 애정이 없을까. 천만에. 그들은 나를 아주 사랑한다. 다만 그 마음속에 할당해놓은 나에 대한 비중이 내 기대치보다 훨씬 적은 것이다. 그게 내가 내린 ‘혼자’의 정의다.

퇴직 후 한동안은 자유를 즐겨보겠지만 아직 완수해야 할 책임이 많이 남은 40~50대에게 극한의 자유는 공포일 수 있다. 따라서 결정하기 전에 신중하게 미래 경로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사진 박헌정]

퇴직 후 한동안은 자유를 즐겨보겠지만 아직 완수해야 할 책임이 많이 남은 40~50대에게 극한의 자유는 공포일 수 있다. 따라서 결정하기 전에 신중하게 미래 경로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사진 박헌정]

혼자서는 자유롭다. 자유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자유로운 생활에 대해 너무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그리스인 조르바가 ‘자유는 묶인 끈이 남들보다 조금 더 긴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듯이 회사 바깥도 그다지 자유롭지 않다. 당분간은 직장에 매이지 않고 내 앞에 오롯이 확보된 시간에서 자유를 느껴보겠지만, 웬만한 직장인 출신에게는 무제한의 자유가 공포로 다가올 수 있다. 아직 젊은 40~50대의 에너지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택할만한 일이 그리 다양하지 않다. 명예퇴직금 크기에만 쏠리지 말고 퇴직 후에 할 수 있는 일을 차분히, 신중하게 설계해야 하는 이유다. 나의 경우 구상하던 대로 일하고 있기에 적당히 재미있고 평화롭다. 물론 속도와 생산량도 감소해 적당히 심심하기도 하다. 수입이 아주 적고 퇴직금으로 먹고살려니 소비를 줄이는 리폼도 필요했다.

신중해야 한다. 노후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퇴직 문제를 언급하거나 일반화하는 게 주제넘은 일일 수 있지만, 나의 경험과 느낌을 조심스럽게 밝히는 것이니 각자의 생각이나 상황과 다르더라도 너그럽게 읽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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