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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프리즘] 오영수의 골든글로브 수상은 연극의 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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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1호 31면

신준봉 중앙일보 문화디렉터

신준봉 중앙일보 문화디렉터

인종차별, 성차별 논란에 휘말렸지만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그간 한국인들이 하지 않았거나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 배우 오영수의 발견 혹은 재발견 말이다. 그런 배우가 있는지조차 몰랐거나 기자처럼 이름만 들어 아는 정도였던 사람들이 그의 대학로 공연에 앞다퉈 몰리고, 그의 인생 스토리에 귀를 기울인다. 물론 골든글로브의 선택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인 성공에 따른 것이다. 그러니 발견의 최초 저작권은 어디까지나 ‘오징어 게임’에 그를 캐스팅한 황동혁 감독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렇더라도 깐부 할아버지라는 인상적인 조연에서 한국 대중문화사를 새로 쓴 배우로 오영수씨를 표 나게 끌어올린 건 순전히 골든글로브 수상 사실이다.

어지간한 얘기는 나온 듯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궁금하다. 그리고 이런 얘기는 해도 해도 즐겁다. 황동혁이나 골든글로브는 오영수 연기의 어떤 점을 높이 산 걸까. 그의 연기에서 과연 무얼 발견할 걸까.

50년간 200편 출연, 잠시도 안 쉬어
젊은 연극인 처우 개선책 살펴봐야

기자에게 최고의 장면은 역시 여섯 번째 에피소드 ‘깐부’에서 치매 노인 연기였다. 치매와 각성된 상태의 경계를 얼굴 표정과 눈빛 하나로 표현해내는 연기력에 감탄했다. 종류만 다를 뿐 생존 게임이 반복되는 포맷이어서 지루할 수 있는 전체 9부작 드라마를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오영수씨의 치매 연기처럼 곳곳에서 반짝거리는 요소들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학로 공연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배우 오영수의 연기는 단순히 좋다, 나쁘다, 이분법적인 연기력 잣대로만 묶을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무대 위의 그는 전무송처럼 화사한 미남도, 이호재처럼 화술이 능란한 배우도 아니다. 그런데도 개성적인 연기를 인정받아 김기덕·황동혁의 작품에 등장한 끝에 지금에 이르렀다. 극작가 김명화씨는 “존재감 있는 외모에 연기 선이 굵다 보니 짧은 장면에 등장해도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 같다”고 했다. 국립극단 예술감독 시절 오영수씨와 함께 작업한 연출가 이성열씨는 “대사를 느리게 치면서도 감각적으로 깊은 맛을 내는 개성 있는 연기가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 역할에 잘 맞아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1960~70년대 대표적인 극단이었던 자유에서 연기를 함께 한 배우 권병길씨는 “굉장히 사색적인 사람이다. 연기에 그게 배어 나온다”고 했다.

이런 오영수 연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결국 평생에 걸친 풍부한 무대 경험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1944년생인 그는 1967년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200편 넘는 연극에 출연했다. 1년에 서너 편꼴인데, 연극 한 편 공연하는 데 짧게는 두 달에서 대개 서너 달 걸린다고 한다. 잠시도 연기를 그만둔 적이 없다는 얘기다. 꽃길까지는 아니더라도 일거리가 끊이지 않는 부침 덜한 경로를 밟아 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철저한 자기관리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미래에도 오영수를 발견할 수 있을까. 연극 무대에서 탄탄하게 연기를 다진 제2, 제3의 오영수 말이다.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무척 어려운 상황인 것 같다. 한국소극장협회 최윤우 사무국장에 따르면 평균 석 달 걸려 150석 소극장 무대에 연극 한 편 올리고 배우가 받는 출연료는 100만원 정도다. 무명의 오영수들이 받는 돈이다. 그나마 공연이 항상 있는 게 아니다. 문체부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연극배우의 공연 횟수는 평균 3회에 불과하다. 예술인 고용보험을 적용받아 공연 없을 때 실업급여를 받는 최저한도를 밑도는 수입을 올릴 수 있을 뿐이다. 골든글로브 수상을 기뻐하기만 할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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