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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회색 코뿔소’가 다가온다…위험관리 잘해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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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1호 30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한국은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한국은행]

미국 금리인상 임박, 한국은 1.25%로 복귀  

한은은 돈줄 죄는데 정부는 추경 돈풀기

고물가 잡겠다는 정책 효과 제대로 나올까

한국 기준금리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복귀했다. 어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1%에서 1.25%로 인상했다. 지난해 11월에 이은 두 차례 연속 인상이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국내외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물가가 치솟고 있어서 어느 정도 예상됐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2.5%가 오르며 2011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많이 치솟았다.

미국 물가도 무섭게 올랐다.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7%가 오르며 40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미국이 예상보다 빠른 3월부터 금리를 올리고 인상 횟수도 3차례에서 4차례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최근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며 통화정책 정상화의 시그널을 계속 던지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어제 한국의 현 기준금리(1.25%) 수준이 여전히 완화적이라고 평가했다. 더 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대출자 부담이 커진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가계대출 전체 잔액 가운데 약 75%가 변동금리 대출이다. 한은에 따르면 금융기관의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연 이자 부담은 대출자 1인당 평균 16만1000원이 늘어난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빚투(빚내서 투자)로 무리해서 부동산 사는 건 힘들고 위험해진다. 거래는 줄고 집값 하락 압력도 커질 것이다.

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중앙은행이 코로나 위기 대응을 위해 넉넉하게 풀었던 돈줄을 되감는 건 불가피하다. 한국이 지난해 일찌감치 시작했고 곧 미국도 시작한다. 미국이 금리를 올릴 때마다 신흥국은 달러가 빠져나가 몸살을 앓았다. 2013년 긴축발작(Taper Tantrum)이 대표적이다. 아시아 신흥국의 경우 이번엔 경상수지도 괜찮고 외환도 넉넉히 쌓아서 과거와는 다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국장은 코로나 위기 대응 과정에서 아시아의 빚이 많이 늘어나 국제금리 인상이 아시아 경제의 회복세를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이 선진국보다 먼저 금리 인상을 시작한 부분도 조금 불안하다. 요즘 주요국 중앙은행은 ‘선제적인’ 통화정책 대신에 ‘데이터에 기반한’ 통화정책을 선호한다. 경기가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음을 데이터로 확인하고 나서야 신중하게 결정한다. 실기(失期)했다는 비판을 나중에 들을망정, 돌다리를 두드려가며 안전하게 나아간다. 부동산과 가계 빚 때문에, 혹은 오는 3월 말 끝나는 총재 임기 때문에 한은이 너무 서둘러 움직인 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일부 있다. 만약 그렇다면 경기 과열을 막은 게 아니라,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어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의 경기 후퇴)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11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한국이 금리 인상을 조금 일찍 시작했고, 속도도 다른 국가보다 상당히 빠르다”며 “가파른 금리 인상이 경기 회복을 지나치게 제약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한쪽에선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다른 쪽에선 사상 초유의 1월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발표하는 엇박자도 문제다. 한은은 돈줄을 죄는데 정부는 돈 풀기에 나서니 정책 효과가 제대로 나겠나. 일단 적자국채를 발행해 추경 재원을 마련해야 하니, 그만큼 인플레이션 압력도 커질 것이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이틀 전 “멀리 있던 회색 코뿔소가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회색 코뿔소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도 간과하는 위험이다. 가계 부채, 미국 금리 인상, 중국 경기 둔화, 미·중 갈등 등이 올해 예상되는 ‘회색 코뿔소’다. 뻔히 알면서 눈 뜨고 당하지 않으려면 국민도, 기업도, 정부도 잘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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