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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눈이 머문 세상의, 마음의 방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71호 21면

내 작은 방

내 작은 방

내 작은 방
박노해 지음
느린걸음

책에 실린 시인 박노해의 흑백 사진들은 차라리 무뚝뚝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수다스럽게 정보를 늘어놓지 않는다. 따라서 감흥도 덜하다. 안데스 만년 설산 아래 작은 집. 아프가니스탄 국경 마을의 소녀. 어린 양을 돌보는 인도 여인. 박하게 평하면, 그저 그런 이국 사진 혹은 변방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극적인 사상 전향 이후 시인의 행적을 드러낸다고 해야겠다. 지상의 높고 낮은 데를 찾아다니며 스스로 반성하고 바쁜 우리를 슬며시 잡아끄는 유랑의 길, 평화운동가의 행적 말이다.

사진이 글을 만나자 이야기가 달라진다. 82·83쪽, 민속 공연을 하는 청춘 남녀의 모습이 지면을 꽉 채운다. 이 사진 에세이집에 실린 최대치의 크기다. 중앙아시아 혹은 이란 계통 사람들로 보인다. 축제일이라도 맞은 걸까.

그런데 크지 않은 방 안이 배경 공간이다. 시리아 정부의 감시를 피한 소수민족 쿠르드인들의 심야 비밀 공연이란다. 한때 사회주의 혁명가였던 시인은 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저항한다는 것이니, 어떤 경우에도 젊음은 노래하고 춤추고 사랑하고 저항하며 길을 찾는 것이니.” 일상의 혁명인가.

97쪽에는 석양 무렵 흙집 지붕 위에 올라간 어린아이의 무덤덤한 사진이 실려 있다. 96쪽 시에 이런 구절이 보인다. “작은 몸 안에 고요히 무언가가 스며든다. 아이들에겐 혼자만의 비밀스런 시간이 필요하다.” 영성마저 느껴진다.

시인은 2019년부터 해마다 한 권꼴로 사진 에세이집을 낸다. 이번이 네 번째 책이다. 제목처럼 올해 책의 주제를 ‘방’으로 잡았다.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작지만 위대한 방. 마지막 순간 우리가 돌아갈 땅속의 한 평 방. 우주도 결국 하나의 방이라고 했다. 집 우(宇), 집 주(宙), 아니냐는 거다. 방의 다양한 변주다.

청춘의 반지하 방, 공장 기숙사의 침상, 무기징역을 살 때 감옥 독방. 그동안 절벽 끝 같은 방들을 통과할 때 그가 되뇐 말이 있다고 했다.

“세계 속에서 곤경의 시운(時運)에 처할 때는, 스스로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지극한 경지에 머물러 때를 기다리며 오롯이 내 몸을 보존하라.” 『장자』의 한 구절이다.

자기 안의 깊은 곳. 결국 방이다. 코로나 시기에 힘이 되는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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