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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에 40대 대통령이 안 나오는 이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71호 20면

청년을 위한 정치는 없다

청년을 위한 정치는 없다

청년을 위한 정치는 없다
라종일 외 7명 지음
루마크

이준석(37) 국민의 힘 대표는 국회의원 이력도 없이 헌정 사상 최초로 30대 당대표가 됐다. 하지만 대선 캠프에 영입된 인사에게 “나도 30대 아들을 키워봐서 안다”는 말을 듣는 등 대놓고 어린애 취급을 받았다.

신지예(32) 전 국민의힘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은 윤석열 캠프 영입 2주 만에 사퇴했다. 진보 진영에선 그가 영입됐을 땐 “기괴한 변절”이라 비판했고 사퇴 후엔 “쉽게 쓰고 버리는 티슈처럼 청년정치를 대하는 국민의힘에 분노한다”고 논평했다. 대선 정국에서 이들 ‘청년 정치인’의 행보가 연일 화제가 되긴 했지만 그것이 한국의 정치가 젊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국제의원연맹(IPU)이 집계한 한국의 40세 이하 의원의 비율은 2.3%로 192개국 중 135위다(단원 및 하원 기준). 제21대 총선 국회의원 당선자 평균연령은 54.9세. 50대(177명), 60대(69명)가 전체의 82%를 차지한다. 제21대 총선 유권자 가운데 30대 이하와 5060의 비율은 각각 34% 안팎으로 비슷했다. 인구 대비 2030은 과소대표, 5060은 과다대표된 셈이다.

『청년을 위한 정치는 없다』는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를 비롯한 정치학자와 연구자들이 이 문제에 천착한 산물이다. 한국에선 왜 40대 대통령이 나오지 않는가. 청년정치의 기반은 왜 이다지도 취약할까.

한국의 정치사를 돌아보면 젊은 리더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63년 46세에 취임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19번의 대선 중 40대에 당선된 경우는 총 4건이다. “군사쿠데타 같은 특수한 정치적 행위의 결과라 민주적 정통성에 의문이 따르는 경우”(143쪽)이긴 하지만 말이다.

각국의 3040 정치인들. 저마다 각국 최연소 기록을 세우며 해당 직책에 올랐다. 괄호 안의 숫자는 현재 나이다. 부패 혐의를 받은 쿠르츠 전 총리는 지난해 10월 사임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AP·AFP·EPA·로이터=연합뉴스]

각국의 3040 정치인들. 저마다 각국 최연소 기록을 세우며 해당 직책에 올랐다. 괄호 안의 숫자는 현재 나이다. 부패 혐의를 받은 쿠르츠 전 총리는 지난해 10월 사임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AP·AFP·EPA·로이터=연합뉴스]

저자 이상호는 고령화사회를 한 원인으로 본다. 전 국민을 나이순으로 세웠을 때 딱 중간인 중위연령은 1970년에 18.5세였으나 2020년엔 43.7세로 훌쩍 뛰었다. 나이가 훈장인 문화에선 30~40대에게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며 리드하는 역할이 돌아오기 어렵다는 뜻이다.

또 다른 저자 이현출은 청년 정치를 막는 한국 특유의 현상으로 캠프 정치와 팬덤 정치, 룸펜 정치인의 난립을 꼽는다. 캠프정치란 “대선 후보의 사조직에 불과한 캠프가 헌법에 명시된 공조직인 정당을 압도하는 현상”(175쪽)이다. 젊은 시절부터 정당에서 차근차근 기반을 쌓으며 성장하기보다는 후보나 캠프에 줄을 대 자리를 얻는 게 훨씬 빠른 정치 입문의 길이다.

2021년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 선거에 여당이 당규를 무시하고 후보를 낸 것을 공개 비판한 초선의원들은 정치 팬덤의 비난 문자폭탄에 시달렸다. 이현출은 “예비 정치인이 기성 정치 개혁의 원대한 꿈을 가지고 정치에 발들이는 순간 맞닥뜨리는 팬덤 광풍은 좌절감을 안겨준다”고 진단한다. 정치 룸펜, 혹은 선거 브로커들은 유권자를 동원하는 대가로 금품이나 공천을 요구하는 등의 어두운 면을 갖고 있으며, 신인에겐 또 다른 진입 장벽이 된다.

공동저자 8명은 이런 식으로 한국의 정치사, 인구 구조, 법과 제도, 정당 시스템부터 해외 사례까지 두루 훑는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건 제왕적 대통령제, 정치 신인의 진입을 막는 기득권 중심의 제도와 정치 문화의 폐해다. 취약한 청년 정치의 기반은 결국 한국 정치 후진적 면면의 총합인 셈이다. 대안으로는 피선거권 연령을 낮추고 선거기탁금 장벽을 낮추거나 없애는 것, 청년할당제, 정당법의 연령 제한 철폐, 정치 교육과 인재 육성 등을 제안했다.

젊음이 만능은 아닐 터다. 그러나 저자 허태회는 청년세대의 과소대표는 “사회 발전을 추동하는 집단의 역동성이 상실되고 있다는 의미”(214쪽)라고 해석한다. 선진국의 건강한 정당 시스템에서 배출한 여러 젊은 리더들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 사회도 바라는 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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