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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통화’ 방송 일부 허용, 수사 관련 내용 등은 금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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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1호 05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의 7시간 통화녹음 중 수사 관련 사안과 일상적인 대화 등은 방송하지 못한다는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법원이 ‘조건부 방송 허가’를 내림에 따라 일부 인용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통화 내용이 오는 16일 전파를 타게 될 전망이다.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수석부장 박병태)는 14일 김씨가 MBC를 상대로 낸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김씨가 법원에 방송을 금지해달라고 신청한 내용 중 수사 중인 사안, 언론사 내지는 사람에 대한 불만 표현, 일상에서 지인과 대화하며 나올 수 있는 내용 등 사적인 부분을 제외하라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김씨와 관련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발언은 향후 김씨가 수사 내지 조사를 받을 경우 진술거부권 등을 침해할 우려가 커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방송 내용이 진실이 아니거나, 목적이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며, 피해자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힐 우려가 있는 경우에 대해 예외적으로 방송의 사전금지가 허용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씨의 통화녹음 중 일부가 “사회의 여론형성 등에 기여하는 내용”이라며 “단순히 사적 영역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사실상 김씨를 공적 인물로 인정한 것이다. 또한 “대통령 후보자 배우자의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견해나 정치적 견해는 유권자에게 알려져 투표의 판단자료로 제공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하는 것”이라며 보도에 공익적 목적이 있다고 판단했다.

14일 김기현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의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7시간 통화 녹취록 보도를 예고한 MBC의 서울 마포구 상암동 사옥을 항의 방문해 출입을 막는 노조원, 경찰 등과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14일 김기현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의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7시간 통화 녹취록 보도를 예고한 MBC의 서울 마포구 상암동 사옥을 항의 방문해 출입을 막는 노조원, 경찰 등과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이날 열린 심문기일에서 김씨 측은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촬영 담당 A씨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김씨에게 접근해 답변을 유도했고, 답변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공유했다”며 “누구에게나 가장 약한 부분인 가족, 그리고 연약한 여성의 인격과 명예를 짓밟으면서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MBC 측 변호인은 “영부인은 대통령의 지근거리에서 가장 손쉽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고, 우려되는 점이 있기 때문에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 보도는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앞서 김씨는 지난해 8월 초부터 6개월간 A씨와 총 53차례에 걸쳐 7시간가량 통화를 나눴다.

법원의 결정으로 김씨의 통화 녹음이 대선 정국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국민의힘은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이양수 선거대책본부 수석대변인은 성명서를 내고 “선거를 앞두고 공영방송이 불순한 정치 공작 의도를 가진 불법 녹취 파일을 방송한다는 것은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언론의 기본을 망각한 선거 개입의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수석대변인은 추가 입장문을 통해 재판과정 중 다뤄진 김씨 관련 발언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김씨는 수개월 전 발언을 구체적으로 기억할 수 없어 MBC 측이 반론을 요청한 3개 발언과 쪽글로 도는 6개 발언에 대해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는데, 법원이 이 중 2개 발언은 방송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5개 발언은 MBC 측에서 ‘방송 내용에 없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김씨 측 입장에선 2개 발언만 방송을 타게 된 셈이다.

하지만 여기엔 맹점이 있다. 가처분 신청 재판 과정에선 9개 발언만 논의가 됐지만, 실제로 MBC가 확보해 방송을 준비하고 있는 발언은 이보다 훨씬 많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 씨의 발언 들 중 법원이 명시적으로 방송을 금지한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 ‘김씨의 정치적 견해와 무관한 일상 대화’ 외엔 기본적으로 방송이 허용된다. 국민의힘 선대본부 관계자도 본지 통화에서 “실제 MBC 측이 어느 정도 수위의 김씨 통화 내용을 가지고 있고, 또 방송에 내보낼지는 전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를 반영하듯 당 내부에선 당혹스러워하는 기류가 곳곳에서 감지됐다. 익명을 원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닥치니 어디서부터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당 선거대책본부 인사들 사이에선 “대선이 두 달도 안 남았는데 폭탄이 터졌다”라거나 “지지율이 출렁이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 것 같다”는 우려가 계속 흘러나왔다. 이날 공개된 법원 결정문에는 방송할 수 있는 내용으로 ‘윤석열 후보의 정치 행보에 대해 김씨가 조력자 역할을 한 내용’ ‘여러 정치 현안과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밝힌 견해’ 등을 거론한 문구가 등장한다. 민감한 내용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뜻이다. 당 일각에선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 등 강력한 대응이 오히려 일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홍준표 의원은 법원 결정 전 “그냥 해프닝으로 무시하고 흘려 버렸어야 했을 돌발 사건을 가처분 신청해 국민적 관심사로 만들었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이날 지방유세 일정으로 창원을 방문한 윤 후보는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 “지금 할 얘기가 없다”고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국민 상식에 부합하는 결정”이라는 입장을 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김씨의 방송 금지 청구를 사실상 기각한 것”이라며 “국민의힘은 MBC의 방송편성권을 침해하려 한 언론탄압에 대해 분명하게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내부적으로는 여론 동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기류도 감지됐다. 방송이 강행된 이후 자칫 사생활 침해나 여성 인격 비하 논란으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였다. 익명을 요청한 초선 의원은 “‘윤석열은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해 온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더 굳혀 지지율 추가 반등을 막는 수준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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