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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 의자, 사다리 천장, 정원 초과 구명복…비욘드트러스트의 비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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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1호 02면

남자는 키오스크 앞에서 잠시 고민했다. 돈가스냐 제육덮밥이냐. 네덜란드에서 온 안톤 반 주트펀(70)이 저녁 식사로 택한 건 돈가스.

7년 만에 뱃길 뚫은 인천~제주 여객선

지난 1월 4일 일출 직전 제주도 30마일 밖에서 비욘드트러스트의 항해 지휘를 하고 있는 전승규 일등항해사. 비욘드트러스트는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후 7년 8개월 만인 2021년 12월 10일에 취항한 인천~제주 여객선이다. 앞의 왼쪽 계기가 레이더, 오른쪽 계기가 전자해도다. 김홍준 기자

지난 1월 4일 일출 직전 제주도 30마일 밖에서 비욘드트러스트의 항해 지휘를 하고 있는 전승규 일등항해사. 비욘드트러스트는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후 7년 8개월 만인 2021년 12월 10일에 취항한 인천~제주 여객선이다. 앞의 왼쪽 계기가 레이더, 오른쪽 계기가 전자해도다. 김홍준 기자

안톤처럼 승객들이 돈가스와 제육덮밥, 혹은 치킨과 자장면 사이에서 고민하는 동안 조타실의 고경남(50) 선장은 전자해도를 보며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기관실의 유주종(45) 일등기관사는 발전기 상태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정동경 본선 감독관은 다시 한번 화물실에 고정된 차량과 화물을 점검했다.

지난 3일 오후 6시 50분, 출항 10분 전 인천~제주 여객선 ‘비욘드트러스트’ 선상의 모습이었다.

승객이 돈가스 고를 때 조타실·기관실 초긴장
“좀 더 조입시다.”
시간을 돌려 출항 2시간 전, 트럭과 승용차·오토바이 수십 대가 선박 뒷문 램프를 통해 4층 갑판에 올랐다. 직원 수십 명이 승용차에는 4개의 벨트, 트럭에는 6~8개의 쇠사슬로 고정했다. 버팀목도 바퀴 밑에 끼웠다. 정동경 감독관은 “비욘드트러스트의 실시간 화물적재중량관리시스템(Block Loading System)은 화물 선적 중에도 선박 균형을 맞추고 복원력을 실시간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최초로 도입했다”고 밝혔다.

지난 1월 6일 오전 제주시 건입동에 위치한 제주항국제여객터미널 제 6부두로 비욘드트러스트가 입항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지난 1월 6일 오전 제주시 건입동에 위치한 제주항국제여객터미널 제 6부두로 비욘드트러스트가 입항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이 배는 선사인 하이덱스스토리지가 710억원을 들여 현대미포조선으로부터 지난해 11월 인도 받은 '신상' 여객선이다. 배수량 2만7000t으로 제주에 가는 여객선 중 최대다. 지난 12월 10일 취항하면서 세월호 사고 이후 폐쇄된 인천~제주 여객선 뱃길을 7년 8개월 만에 다시 열었다. 방현우 하이덱스스토리지 대표는 “안전과 고객서비스 만족을 최우선으로, 대한민국 제일의 연안 여객 카페리 선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금 헐렁하네요.”
오후 6시 20분. 윤석현(36)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운항관리자가 차량을 고박(固縛)한 쇠사슬을 당겨보면서 말하자 옆의 김상우(31) 운항관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쇠사슬은 다시 조여졌다. 윤 운항관리자는 “뱃길이 다시 열린 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경각심과 사명감을 불어넣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지난 1월 3일 오후 비욘드트러스트에서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운항관리자가 바이크의 고박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지난 1월 3일 오후 비욘드트러스트에서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운항관리자가 바이크의 고박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1~4층 화물 갑판에 트럭·승용차 등 차량 88대, 컨테이너 45개가 들어섰다. 차량 화물 중 오토바이는 7대. 자전거는 20대였다. 카라반·트레일러 등 캠핑 관련 차량 3대도 단단히 고정됐다.

오후 6시 40분. 승객 204명 중 마지막으로 박희연(26·인천시)씨가 배에 올랐다. 그는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가는데, 귀가 갑자기 아파 비행기를 타면 탈 날까 봐 나 혼자 비욘드트러스트를 이용하게 됐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네덜란드에서 온 안톤은 ‘바람의 딸’ 한비야(66)씨의 남편이다. 2017년 11월 결혼했다. 그런데 그의 ‘짝’이 안 보였다. 안톤은 “비야는 지금 남수단에 있고 나는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를 하기 위해 이 배를 탔다”며 엄지를 척 세웠다.

강성길(39)씨 가족은 캠핑 트레일러를 끌고 왔다. 제주도로 캠핑 가는 거구나 싶었는데 웬걸. 강씨는 “제주도민인데, 서울에서 트레일러를 사서 끌고 내려가는 중”이라며 “어린아이들과 함께 이동하기에는 좁은 비행기보다 널찍한 배편이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셀프 화물 운송까지 겸한 독특한 가족여행이다.

지난 1월 3일 오후 비욘드트러스트 복도에 설치된 사다리 천장. 여객선이 기울거나 뒤집히는 등 긴급 상황에서 사다리나 손잡이로 사용하게 설계됐다. 정준희 기자

지난 1월 3일 오후 비욘드트러스트 복도에 설치된 사다리 천장. 여객선이 기울거나 뒤집히는 등 긴급 상황에서 사다리나 손잡이로 사용하게 설계됐다. 정준희 기자

지난 1월 3일 오후 비욘드트러스트 로비에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쇠사슬로 고정돼 있다. 정준희 기자

지난 1월 3일 오후 비욘드트러스트 로비에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쇠사슬로 고정돼 있다. 정준희 기자

5층과 6층 여객실마다 서랍에 구명복이 비치돼 있다. 비욘드트러스의 정원은 854명. 구명복은 이보다 많은 1320명분이 마련돼 있다. 여객실 창문 옆에는 비상시 망치로 깨고 탈출할 수 있도록 안내문이 붙어 있다.

복도 천장에는 둥근 나무 기둥이 일렬로 길게 이어진다. 비욘드트러스트 관계자는 “혹시 사고가 나서 선박이 기울어질 경우 사다리 역할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라운지 의자는 바닥과 쇠사슬로 연결돼 안정감을 높였다. 화재나 침수 등 안전사고 발생 시 정원의 승객이 30분 내로 선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해상탈출설비(Marine Evacuation System)도 설치돼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안전 제일…선장 손목에는 '세월호 기억 팔찌' 
“올 스테이션, 올 스탠바이!”
오후 6시 45분. 엔진이 힘을 쏟아내고 있었다. 유주종 일등기관사는 “출항할 때 선박이 좌우로 틀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출력이 더 필요하다”며 “이때 발전기 과부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밝혔다. 인천항과 한 몸으로 묶여있던 닻줄이 풀리자 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비욘드트러스트 5층에 마련된 안마 휴게실. 김홍준 기자

비욘드트러스트 5층에 마련된 안마 휴게실. 김홍준 기자

인천~제주 여객선 항로는 7년 8개월 만인 2021년 12월 10일에 배수량 2만7000t 비욘드트러스트가 취항했다. 지난 1월 3일 오후 비욘드트러스 5층에 마련된 오락실에서 한 가족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김홍준 기자

인천~제주 여객선 항로는 7년 8개월 만인 2021년 12월 10일에 배수량 2만7000t 비욘드트러스트가 취항했다. 지난 1월 3일 오후 비욘드트러스 5층에 마련된 오락실에서 한 가족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김홍준 기자

승객들은 3명의 요리사가 바삐 준비하는 저녁을 들거나, 배 후미의 선베드에 길게 누워 멀어져가는 인천을 바라보거나, 배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거나, 안마의자에서 몸을 풀기도 했다. 하지만 선장을 비롯한 34명의 선원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비욘드트러스트의 ‘머리’에 해당하는 조타실(휠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205도.” “205도. 옛 설(yes sir)!”

오후 8시 조타실. 고경남 선장의 지시에 김태련(61) 조타수가 힘차게 대응했다. 조타실은 암흑이었다. 폭 15m, 높이 2.5m 정도 되는 시커먼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전자해도·레이더 등 계기들만 식별 가능할 정도의 빛을 내고 있었다. 고 선장은 “야간 운항 시에는 육안으로도 바다를 살펴봐야 하기에 조타실을 어둡게 한다”고 밝혔다.

지난 1월 3일 비욘드트러스트 조타실에서 야간 항해 지휘를 하고 있는 고경남 선장. 비욘드트러스트는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후 7년 8개월 만에 인천~제주 여객 항로를 다시 열었다. 김홍준 기자

지난 1월 3일 비욘드트러스트 조타실에서 야간 항해 지휘를 하고 있는 고경남 선장. 비욘드트러스트는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후 7년 8개월 만에 인천~제주 여객 항로를 다시 열었다. 김홍준 기자

인천항을 떠난 배는 서수도를 지나고 있었다. “입각 50%!” “입각 50% 상태입니다.” 고 선장의 외침에 삼등항해사가 답했다. 비욘드트러스는 프로펠러 회전력으로 속도를 올리는 다른 선박과 달리 프로펠러 각도로 스피드를 조절한다. 각도를 줄여 속도를 늦추라는 지시였다. 14노트까지 속도가 떨어졌다.

서수도 끝단 폭은 0.7마일에 불과하다. 고 선장은 “맹골수도(전남 진도, 폭 2.4마일)도 힘들지만, 서수도를 통과하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고 털어놨다. 비욘드트러스는 세월호가 지나던 맹골수도를 통과하지 않는다. 16㎞를 더 돌아가 제주로 향한다. 왕복 기준으로 운항 시간은 40분, 유류비용은 200만원이 더 든다. 고 선장은 망원경을 이용해 바다를 살폈다. 서수도를 통과할 때까지 취재를 멈춰야 했다. 긴장의 15분이었다.

“앞의 배에 우현 추월 콘택트.” 비욘드트러스트는 22노트까지 속도를 높였다. “자동항법 전환” “자동항법 전환. 옛 설!” 배 엔진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렁업(rung up) 상태가 됐다.

# 편의점에서 캔맥주 하루 300개 팔려
“부르릉, 부르릉, 부르릉 ….”
오후 9시 비욘드트러스트의 ‘심장’인 기관실. 두 대의 엔진이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유주종 일등기관사는 귀마개를 끼고 있었다. 그는 “엔진 소음으로 인한 ‘직업병’인 난청에 안 걸리려면 써야 한다. 우리 몸은 소중하니까”라며 웃었다. 기존 선박은  발전기에 과부하가 걸리면 30여 초간 모든 전력이 나가는 ‘블랙아웃’을 거친 뒤 보조 발전기가 돌아간다. 비욘드트러스트는 블랙아웃 상황 없이 자동으로 다른 발전기가 켜진다. 한번 운항에 드는 중유는 80~90t. 비욘드트러스트는 탈황·탈질소 저감장치로 오염을 최소화한다.

지난 1월 3일 오후 비욘드트러스트의 엔진이 굉음을 내며 힘차게 작동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지난 1월 3일 오후 비욘드트러스트의 엔진이 굉음을 내며 힘차게 작동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지난 1월 3일 오후 비욘드트러스트 기관실에서 기관사가 제어반을 통해 선내 기관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지난 1월 3일 오후 비욘드트러스트 기관실에서 기관사가 제어반을 통해 선내 기관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얼얼해진 귀를 감싸 쥐고 다시 5층 라운지. 맥주를 마시는 일행이 꽤 있었다. 선박 관계자는 “하루에 캔맥주만 300개 정도 나가는 것 같다”고 밝혔다. 승객 일부는 오락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4일 오전 7시 다시 조타실. 제주항 30마일 앞. 추자도를 지났다. 해가 뜨는 7시 25분에야 커튼을 거뒀다. 전승규(43) 일등항해사는 “제주 앞바다에 어망이 많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 선장이 조타실로 ‘출근’했다. 그의 왼쪽 손목에 ‘세월호 기억 팔찌’가 보였다. 고 선장은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1명이라도 남기지 않겠다는 각오”라고 말해 왔다.

지난 1월 4일 오전 제주도까지 약 20마일 남은 지점에서 비욘드트러스트 고경남 선장과 김태련 조타수가 제주도를 향해 운항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지난 1월 4일 오전 제주도까지 약 20마일 남은 지점에서 비욘드트러스트 고경남 선장과 김태련 조타수가 제주도를 향해 운항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5층 드라이버룸 휴게실에는 6명의 트럭 기사들이 있었다. 대부분 수도권 지역 탁송 운전사들이다. 비욘드트러스트 취항 후 4번째 탑승이라는 장명관(49)씨는 “제주 갈 때는 건설 자재, 올라갈 때는 식료품을 싣는다”며 “지난 8년간 이용했던 화물선과는 달리 침실과 샤워실이 잘 돼 있어 피로가 풀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접안 때 다른 배가 자리를 옮길 때까지 빙빙 돌다 보니 시간이 돈이자 생명인 우리는 초조하고 불편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오전 9시 40분. 한라산에 간다는 김연일(65)씨, 자전거 일주를 한다는 김효진(71)씨 등 204명이 제주 땅을 밟았다. 뒷문 램프가 다시 열렸고 기자와 같은 방에 묵었던 차지성(39)·김학민(33)씨가 오토바이를 몰고 제주항을 벗어나 곧바로 제주 라이딩에 나섰다.

지난 1월 4일 오전 제주항에서 비욘드트러스트 승객 중 한 명이 인천에서부터 실려온 자신의 오토바이를 몰고 곧바로 제주 일주에 나서고 있다. 정준희 기자

지난 1월 4일 오전 제주항에서 비욘드트러스트 승객 중 한 명이 인천에서부터 실려온 자신의 오토바이를 몰고 곧바로 제주 일주에 나서고 있다. 정준희 기자

지난 1월 4일 비욘드트러스트에서 내린 오토바이 라이더들이 제주도 일주를 위해 제주항을 벗어나고 있다. 비욘드트러스트는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후 7년 8개월 만인 2021년 12월 10일에 인천~제주 여객 항로를 열었다. 김홍준 기자

지난 1월 4일 비욘드트러스트에서 내린 오토바이 라이더들이 제주도 일주를 위해 제주항을 벗어나고 있다. 비욘드트러스트는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침몰 후 7년 8개월 만인 2021년 12월 10일에 인천~제주 여객 항로를 열었다. 김홍준 기자

지난 8년간 수도권에서 제주로 차량을 갖고 내려가기 위해서는 목포·완도·여수 등까지 운전해서 배를 이용해야 했다. 아니면 인천에서 화물선에 차량을 먼저 보내고 사람은 시간에 맞춰 비행기편으로 가는 방법이 있었다. 자전거도 화물선에 먼저 실어 보내거나, 비행기로 '함께' 가려면 분해한 뒤 짐칸에 싣고 다시 조립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지난 1월 4일 오전 제주시 건입동에 위치한 제주항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한 비욘드트러스트에서 승객들이 자전거를 끌고 하선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지난 1월 4일 오전 제주시 건입동에 위치한 제주항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한 비욘드트러스트에서 승객들이 자전거를 끌고 하선하고 있다. 정준희 기자

차량을 갖고 가는 게 렌트보다 저렴하다고 판단하는 관광객이나 제주 일주를 꿈꾸는 자전거·오토바이 라이더들에게 인천~제주 여객선 재취항은 단비와도 같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수도권과 직접 연계되는 제주 뱃길이 다시 열리면서 공항에 한정되었던 수도권의 관광 수요 잠재력을 회복할 것”이라며 “다만 해양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남아 있으니, 선박과 승객 안전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전 10시 30분. 사진기자와 함께 승객 중 가장 마지막으로 제주항을 빠져나갔다. 자전거를 몰고 가는 안톤이 보였다. “헤이, 안톤~.” 택시 안에서 불렀다. 안톤은 다시 한번, 엄지 척!

안톤 "4월에 아내 비야와 다시 제주도 자전거 일주"

"사실은 돈가스에 맥주도 한 잔 했죠."

네덜란드에서 온 안톤 반 주트펀(70)이 제주도를 찾은 건 이번이 여섯 번째다. 그가 자전거를 배에 싣고 제주도를 찾은 건 이번이 처음. 안톤은 "맥주 한 캔 마시고, 이층침대에서 8시간 동안 푹 잤다"고 밝혔다.

지난 1월 4일 오전 한비야씨의 남편 안톤 반 주트펀이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부터 몰고 온 자전거와 함께 비욘드트러스트에서 하선 준비를 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1월 4일 오전 한비야씨의 남편 안톤 반 주트펀이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부터 몰고 온 자전거와 함께 비욘드트러스트에서 하선 준비를 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안톤은 '바람의 딸' 한비야(66)씨와 2002년 아프가니스탄 구호현장에서 처음 만났다. 안톤이 한씨의 상관이었다. 둘은 2017년 11월 결혼했다. 이 ABC(Anton Biya Couple)는 ‘336’이라는 룰을 정했다. 1년 중 네덜란드에서 3개월, 한국에서 3개월을 함께 지내고, 나머지 6개월은 각자 지낸다는 것. 현재는 ‘한국에서의 함께 3개월’인 상황이다. 남편이 네덜란드 사람이라서일까. 이 둘은 무조건 50:50 '더치페이'를 원칙으로 삼는다. 집을 살 때도, 음식 계산을 할 때도 반반이다. 함께 낸 책 인세 수입 절반은 기부하고. 나머지 절반은 부부가 갖되 이를 50:50으로 나눈다. 안톤의 '반쪽'인 한비야씨는 지금 남수단에 있다.

지난 2017년 11월 결혼한 '바람의 딸' 한비야(오른쪽)씨와 안톤 반 주트펀이 2020년 여름 네덜란드 순례길을 걷고 있다. 안톤은 네덜란드 출신으로, 한비야씨가 구호활동을 할 당시 '보스'였다. [사진=푸른숲]

지난 2017년 11월 결혼한 '바람의 딸' 한비야(오른쪽)씨와 안톤 반 주트펀이 2020년 여름 네덜란드 순례길을 걷고 있다. 안톤은 네덜란드 출신으로, 한비야씨가 구호활동을 할 당시 '보스'였다. [사진=푸른숲]

안톤은 비욘드트러스트에서의 14시간 30분이 지루하지 않았을까. 그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며 "네덜란드에 닉센(niksen)이란 단어가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지낸다는 뜻이다. 그렇게 보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밝혔다.

안톤은 자전거를 몰고 제주도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았다. “눈은 바다를 끊임없이 보고, 얼굴은 바람을 맞이하며, 귀는 바람 소리를 들으니 마음은 저절로 고요해지더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이번 자전거 투어에서 꼽은 곳은 함덕해수욕장과 성산 일출봉, 서귀포에서 바라본 눈 쌓인 한라산이었다. 그는 “해녀를 본 건 정말 소중한 경험”이라며 웃었다.

지난 1월 6일 제주도 서귀포에서 바라본 한라산. 전날 내린 눈이 산을 하얗게 덮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1월 6일 제주도 서귀포에서 바라본 한라산. 전날 내린 눈이 산을 하얗게 덮고 있다. 김홍준 기자

'3·3·6' 중 한국에서의 3개월이 지속하는 4월에 제주도를 다시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비야와, 자전거를 갖고 비욘드트러스에 다시 올라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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