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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핵심 기관 건드리자 또 쐈다…北, 美 제재 8시간만에 맞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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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신문은 12일 국방과학원이 전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진행한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를 성공시켰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뉴스1]

북한 노동신문은 12일 국방과학원이 전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진행한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를 성공시켰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14일 오후 미사일을 발사했다. 지난 5일과 11일에 극초음속 미사일을 각각 발사한 데 이어 올해 들어 벌써 세번째로, 미국의 제재에 반발해 '더 강력하고 분명한 반응'을 예고한 지 반나절 만이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오후 2시 41분쯤과 2시 52분쯤 북한이 평안북도 의주 일대에서 동북쪽 동해 방향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쐈다고 밝혔다.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의 비행거리는 약 430㎞이며 고도는 약 36㎞였다.

이날 발사는 미국의 독자 대북제재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차원의 추가 조치 제안에 반발하며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발표(오전 6시 3분)한 지 약 8시간 30분 만에 이뤄졌다. 미국이 제재 카드를 활용해 압박에 나선다면 북한 역시 무력시위 수위와 빈도를 높여 '강 대 강'으로 맞서겠다는 신호일 수 있다.

실제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이 기어코 이런 식의 대결적인 자세를 취해나간다면 우리는 더욱 강력하고도 분명하게 반응하지 않을수 없다"고 밝혔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이미 '강 대 강, 선 대 선'을 대미 관계의 원칙으로 제시한 바 있기 때문에 미국의 언행 수위에 따라 맞대응하는 방식을 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2017년 ‘국가핵무력 완성’을 기념해 발행한 우표. [조선의오늘 캡처]

북한이 2017년 ‘국가핵무력 완성’을 기념해 발행한 우표. [조선의오늘 캡처]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지난해 9월부터 따지면 벌써 여섯번째다. 국제사회의 규탄에도 '핵무력 완성'을 외치며 무차별 핵·미사일 도발을 이어갔던 2017년의 데자뷰같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북한은 2017년에 핵실험과 함께 24차례에 걸쳐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다.

한 전직 외교관은 "당시 북한은 외부에서 어떤 압박과 회유가 들어와도 자신들이 정해 놓은 시간표만 따라서, 핵무력 완성의 데드라인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이날 담화에서도 "국가방위력 강화는 주권국가의 합법적 권리"라며 지난 5일과 11일에 진행한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가 자신들의 국가방위력 강화를 위한 계획에 따른 정상적인 활동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향후에도 '정상적인 무기개발'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이어가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얻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어차피 코로나19로 인해 제대로 대외정책을 전개할 수 없을 때를 노려 핵능력 고도화를 이루어 놓겠다는 복합적인 계산이 깔려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언젠가 이뤄질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대비해 최대한 몸값을 높이고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놓겠다는 의도로 볼 여지도 있다.

인권 제재엔 조용, 이번엔 왜

북한이 이번 제재에 유독 반발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세계 인권의 날'인 지난해 12월 10일 내놓은 첫 대북제재에서 북한 중앙검찰소와 사회안전상 출신인 이영길 국방상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이 아닌 인권 유린과 관련한 제재였는데, 북한은 이와 관련해 별다른 반응 없이 넘어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7년 8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소재를 개발·생산하는 국방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를 시찰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7년 8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소재를 개발·생산하는 국방과학원 화학재료연구소를 시찰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하지만 미국이 이번 제재에서 정조준한 것은 한국의 국방과학연구소(ADD)격인 국방과학원이었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활동한 국방과학원 소속 북한 국적자들이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부품을 조달했다고 구체적 제재 근거를 밝혔고,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개인·기관도 제재) 적용까지 경고했다.

국방과학원은 북한 무기체계 개발의 핵심 기관이다. 따라서 이번 제재로 해당 분야에 실질적인 타격이 예상되자 북한이 무력시위로 맞선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이 유엔 안보리 추가 조치까지 요구하는 카드를 꺼내자 안보리에서 확실한 우군인 중국을 등에 업고 강력한 반응을 내놓은 측면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강력, 분명 반응" 계속되나

북한이 예고한 강력하고 분명한 반응이 여기서 끝날지, 더 수위 높은 도발이 나올지도 관심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일 대성공을 선언한 극초음속 미사일은 지난해 1월 8차 당 대회에서 직접 제시한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의 핵심 5대 과업 중 하나다.

이제 이 중 남은 것은 ▶초대형 핵탄두 생산 ▶1만5000㎞ 사정권 안의 타격 명중률 제고 ▶수중 및 지상 고체발동기(고체연료 엔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핵잠수함과 수중발사 핵전략무기 보유 등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올해 이와 관련된 무기체계 개발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해 1월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제8차 당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공개한 수중발사탄도미사일(SLBM)인 북극성-5형 ㅅ의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지난해 1월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제8차 당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공개한 수중발사탄도미사일(SLBM)인 북극성-5형 ㅅ의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당장 내달 16일 80주년을 맞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광명성절)이나 3월 한·미 연합훈련 등이 북한이 무력 시위를 벌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베이징 겨울 올림픽 기간(2월 4~20일)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 대선(3월 9일) 등을 고려해 수위 조절을 한다면 열병식을 통해 신형 전술무기들을 선보이는 방식도 가능해 보인다.

다만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고강도 도발에는 북한도 신중할 가능성이 크다. 기존의 유엔 안보리 결의에서 이미 이런 고강도 도발시 자동으로 추가 제재를 가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또 김 위원장이 2017년에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만큼 추가 실험을 할 경우 핵 능력에 대한 신뢰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고위 탈북자는 "북한이 이미 2017년에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기 때문에 핵실험을 추가로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며 "추가 실험을 강행한다면 핵무력 완성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정나라 겨냥 안해" 여지 남겨

다만 북한이 대화 등을 염두에 두고 나름대로 수위를 조절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미사일 시험발사가) 국가방위력 현대화 위한 활동일뿐 특정 나라나 세력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라는 기존 주장을 반복하며 여지를 남겼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1일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에서 모니터를 바라 보며 웃고 있다. 동행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맨 왼쪽) 등이 발사 성공에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1일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에서 모니터를 바라 보며 웃고 있다. 동행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맨 왼쪽) 등이 발사 성공에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담화를 대남·대미 대응을 총괄하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명의가 아닌 '외무성 대변인' 명의로 발표한 것도 눈길을 끈다.

또 일반 주민들이 보는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는 해당 담화를 게재하지 않았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부총장은 "담화 주체가 외무성 대변인이고 내용에서 미국을 직접 거명하고 있지만 거친 표현은 없다"며 이를 "'중강도' 반발"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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