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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대선 앞두고 ‘민주당 추경’ 수용한 문 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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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회 중앙지방협력회의에 참석해 의사봉을 두드리며 개회를 알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회 중앙지방협력회의에 참석해 의사봉을 두드리며 개회를 알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기존 예산 있는데 “초과세수 활용” 지시

“중립 의무 망각한 관권 선거” 논란 자초

대통령선거를 두 달도 남겨놓지 않은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요구를 사실상 받아들였다. 문 대통령은 어제 참모회의에서 “예상보다 더 늘어난 초과 세수를 활용해 방역 장기화에 따른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덜 수 있는 방안을 신속하게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또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여력을 갖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4일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설 전에 25조~30조원 규모의 추경이 실현 가능한 목표”라고 요구한 데 이어 민주당이 그제 대선 공식 선거운동 시작(2월 15일) 하루 전인 다음 달 14일 추경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한 걸 수용한 셈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집중적 지원이 필요해졌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다. 정부가 이미 손실을 본 55만 명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선지급 후정산’ 방식으로 설 전에 500만원을 지원하기로 한 데 이어 14일 추가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2월에, 그것도 대선이 임박해 추가로 예산을 마련해야 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인가엔 대단히 회의적이다. 올해 예산이 집행되기 시작한 게 며칠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잉크도 마르기 전이다. 소상공인 손실 보상 예산이 2조원 책정돼 있고, 4조원 가까운 예비비도 있다. 기존 예산부터 쓰는 게 상식이다.

기획재정부가 빌미를 제공하긴 했다. 기본 중의 기본이랄 수 있는 세수 전망치를 두 번 고치고도 또 틀려서 다시 수정했다. 지난해 본예산 기준 세입 전망치보다 60조원가량 더 걷힌다고 한다. 횟수도, 오차율도 역대 최고치다. 이러니 돈을 쓰고 싶어 하는 당·청에 “편성된 예산을 집행하는 게 우선”(홍남기 경제부총리)이라고 한들 먹히겠나. 기재부가 버틸 듯하다 물러서는 악순환이 이번에도 반복될 듯하다. 개탄스러운 일이다. 초과 세수가 2월 추경의 명분일 순 없다. 기술적으로 초과 세수는 4월 결산 과정을 거쳐 세계잉여금으로 처리한 후에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2월에 추경을 한다는 건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돈이 남아 추경한다면서 당장 돈을 빌리는 꼴이다. 왜 이런 무리한 일을 하나.

결국 대선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다. 정부는 코로나를 이유로 선거를 앞두고 여러 차례 돈 뿌리기 추경을 했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전 국민 재난지원금 14조3000억원을 나눠줬고, 지난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도 15조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했다. 이번에도 “정치적 중립 의무를 망각한 관권 선거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그래놓고 기재부 성과집엔 “빠른 채무 증가 속도, 고령화 등 재정 여건을 감안할 때 건전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