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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 지키려 끝까지 조종간 잡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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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고 심정민 소령은 이날 사고로 순직했다. [연합뉴스]

고 심정민 소령은 이날 사고로 순직했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추락 사고로 순직한 F-5E 전투기 조종사가 민가를 피하기 위해 조종간을 끝까지 놓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공군은 “사고 조사 결과 고 심정민(28, 대위에서 1계급 특진 추서) 소령이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이런 행동을 했던 정황이 포착됐다”고 밝혔다. 사고기 추락 지점은 주택 몇 채가 있는 마을과 불과 100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당일 사고기는 수원기지를 이륙한 지 1분여 만에 항공기 좌우 엔진 화재 경고등이 켜지는 긴급 상황을 맞았다. 심 소령은 상황을 보고하고 긴급 착륙을 시도했지만, 이번엔 조종 계통에 문제가 생겼다. 이내 기체는 말을 듣지 않고 급강하했다는 게 공군의 설명이다.

공군 관계자는 “당시 심 소령이 조종간을 끝까지 놓지 않은 채 가쁜 호흡을 한 정황이 비행 자동 기록 장치에 고스란히 담겼다”고 전했다. 심 소령은 마지막 관제탑 교신에서 비상탈출을 뜻하는 ‘이젝트(Eject)’를 두 번 외쳤지만, 탈출에 실패했다.

지난 11일 경기도 화성의 한 야산에 추락한 F-5E 전투기 잔해 모습. [사진 공군]

지난 11일 경기도 화성의 한 야산에 추락한 F-5E 전투기 잔해 모습. [사진 공군]

심 소령은 공군사관학교 64기로 지난 2016년에 임관해 5년간 F-5 기종을 조종해왔다. 현재 수원·강릉기지에서 운용 중인 80여 대의 F-5E/F 전투기는 1970년대부터 도입하기 시작한 노후화 기종이다. 이번 사고기는 1980년대 초·중반 대한항공이 국내에서 면허 생산했던 ‘제공호(KF-5E)’라고 공군은 밝혔다.

심 소령은 지난해 11월 호국훈련 유공으로 표창을 받는 등 기량이 뛰어난 조종사였다. 생도 시절 우수한 성적으로 비행훈련을 마쳤으며, 매사 헌신적이어서 주변의 신망이 두터웠다고 한다. 공군 관계자는 “비행 기량은 물론 어렵고 궂은일에도 솔선수범하는 동료였다”고 말했다. 심 소령은 결혼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신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SNS를 통해 심 소령을 애도했다. 문 대통령은 “끝까지 조종간을 붙잡고 민가를 피한 고인의 살신성인은 ‘위국헌신 군인본분’의 표상으로 언제나 우리 군의 귀감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심 소령의 영결식은 14일 오전 9시 공군 제10전투비행단에서 엄수된다.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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