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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 홀린 19세 스키여신…中국적 택하자 살해협박 받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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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중국의 스타 스키 선수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여전히 미국에서 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1일 19세의 중국 스키 선수 에일린 구(Eileen Gu)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의 중국 이름은 구아이링(谷爱凌)이다.

구아이링이 지난해 3월 미국 콜로라도주 아스펜에서 열린 프리스타일 스키 월드컵 대회에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구아이링이 지난해 3월 미국 콜로라도주 아스펜에서 열린 프리스타일 스키 월드컵 대회에서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에일린 구는 ‘설원의 곡예’로 불리는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다. 하프파이프(반 원통 모양 코스의 양쪽 끝을 오르내리며 공중회전 등), 슬로프스타일(테이블, 박스 등 여러 기물을 내려오거나 점프대에서 공중 동작), 빅에어(큰 점프대를 도약해 회전 등 공중 묘기) 등의 세부 종목에서 활약하고 있다.

구는 2020년 로잔 겨울 청소년 올림픽 하프파이프와 빅에어에서 금메달, 슬로프스타일에선 은메달을 따며 차세대 스키 스타로 떠올랐다. 지난해 프리스타일 스키 세계선수권대회에선 하프파이프와 슬로프스타일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이 대회 최초로 2개의 금메달을 딴 선수가 됐다. 빅에어에선 동메달을 땄다. 구는 다음 달 4일 개막하는 베이징 겨울 올림픽에서 3개 금메달을 딸 선수로 손꼽힌다.

루이비통 모델에서 스키선수로   

루이비통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스키 스타 구아이링. [사진 구아이링 인스타그램]

루이비통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스키 스타 구아이링. [사진 구아이링 인스타그램]

구는 실력과 함께 외모도 주목받았다.  키 1m 67㎝·체중 52㎏인 구는 패션 모델로도 활동 중이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 티파니 등에서 지난해 구를 모델로 발탁했다.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세계 최대 패션 행사 멧 갈라에도 참석했다. 보그, 엘르 등 패션 잡지에도 종종 등장했다.

학업성적도 뛰어나다. 지난 2020년 SAT(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1600점 만점에 1580점을 받아 스탠퍼드대에 합격했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학업을 1년 미뤘지만, 국제관계나 공공정책에 대해서 공부할 예정이다. 농구, 승마, 암벽 등반 등 다양한 스포츠를 섭렵했고, 클래식 피아노도 연주한다. 또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약 19만명, ‘엄친딸’이다.

구에겐 ‘국적 논란’이 따라다닌다. 그는 지난 2003년 9월 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 구이옌(谷燕)은 중국 베이징 출신으로 20대에 미국에 이민을 와 뉴욕 록펠러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대에서 MBA를 했다. 구이옌은 뉴욕 인근 헌터 마운틴 스키장에서 처음 스키를 탄 후, 스키에 푹 빠졌다. 구는 어머니를 따라 3세 때 스키를 시작했다. 그에게 재능이 보이자 그의 어머니는 구를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주 경계에 있는 레이크타호의 스키 학교에 보냈다.

“엄마의 나라 대표로 뛰겠다” 

지난 2019년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스폰서 레드불 행사에 나온 구아이링. [AFP=연합뉴스]

지난 2019년 1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스폰서 레드불 행사에 나온 구아이링. [AFP=연합뉴스]

구는 13세에 시니어 랭킹에 진입했고, 15세였던 2019년엔 미국 대표로 프리스타일 스키 월드컵 슬로프스타일에서 우승했다. 그런데 그해 6월 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앞으로 중국을 대표해 뛰겠다. 엄마가 태어난 곳의 젊은이들, 특히 어린 소녀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고 했다.

유망주 구의 중국 국적 선택은 중국에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스키 인프라가 부족하고 스키 인구가 적은 중국은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개최했지만, 주목할만한 스키 선수가 없었다. 그를 향한 중국 내 관심은 순식간에 커졌다.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 팔로워는 128만명이나 된다.

샌프란시스코에 살았던 구는 미국 국적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WSJ은 “그의 주요 스폰서인 레드불 홈페이지에 ‘구는 중국 국가대표가 되기로 선택하면서 미국 여권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귀화했다’고 소개돼 있다. 그런데 구가 미국 여권을 정말로 포기한 것인지 확인하는 e메일을 보낸 후, 이 내용이 삭제됐다”고 전했다. 이어 ”왜 이 내용이 삭제되었는지 묻자, 레드불 측은 ‘구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을 위해 뛰는 것을 기대한다’고 하고 국적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중국의 국적법은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다.

미·중 갈등 속에 “살해 협박” 메시지도  

미국에서 중국 국적 선택은 논란을 빚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지난해 3월 인터뷰에서 구는 “중국, 미국 스키연맹과 이야기하면서 몇 달을 고민해서 선택했다. 발표 이후 끔찍한 말이 담긴 수백통의 DM(다이렉트 메시지)을 받았다”며 “살해 협박 내용도 있었다. 15세였던 나에겐 정말 힘든 경험이었다”고 했다.

최근 미·중 갈등이 깊어지며 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특히 지난해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의 인권 문제,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 성폭행 폭로 후 실종설 등이 불거지면서 미국 내 여론이 더 나빠졌다. WSJ 기사에 달린 300여개 댓글 중엔 비판과 응원이 엇갈린다.

구는 국적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 있으면 미국인이고, 중국에 있으면 중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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