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개 호스피스 문 닫아, 76세 말기폐암환자 고통 속에서 응급실서 사망

중앙일보

입력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호스피스 병동 모습. 뉴시스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호스피스 병동 모습. 뉴시스

공공병원 21곳의 호스피스 병동이 문을 닫는 바람에 말기환자가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데가 코로나19 병동으로 전환하면서 말기환자가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길이 막혔다. 특히 서울의 호스피스 절반이 문을 닫는 바람에 응급실에서 숨지거나 인천으로 실려가기도 한다.

'선(先) 화장-후(後) 장례'라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방역수칙 때문에 코로나19 확진자 6120명이 가족 얼굴도 못보고 생을 마감하고 있는 가운데, 비(非) 코로나 환자도 비참한 최후를 맞고 있다.

 '좋은공공병원 만들기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13일 코로나19 발생 이후 21개 호스피스병동이 문을 닫았다고 밝혔다. 서울시 산하 5개 병원(동부·북부·서남·서북병원, 서울의료원)과 서울적십자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등 서울에서 15곳 중 7곳(130개 병상)의 호스피스 병동이 문을 닫았다.

 또 경기도의료원 안성·의정부·파주병원, 일산병원, 군산·김천·남원·마산·순천·안동·천안·포항 의료원 등의 호스피스기관이 문을 닫았다. 충북대병원, 칠곡경북대병원 등 대학병원도 마찬가지다. 화순전남대병원은 이달 들어 19개 호스피스 병상을 12개로 축소했다. 전국 88곳 중 21곳이 문을 닫았다.

 지난달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공립병원 코로나19 동원령을 내리면서 국립중앙의료원 호스피스병동이 지난달 31일 문을 닫았고, 화순전남대는 이들 들어 축소했다.

 서울에서는 서울성모·은평성모·여의도성모·고대구로 등 8개 병원의 140개 병상만 남았다. 이 중 간병비를 안내는 데는 2곳뿐이다. 나머지는 보호자가 간병하거나 하루 최소한 10만원을 들여 간병인을 둬야 한다. 저소득층 말기환자가 갈 데가 사라졌다.

 폐암 환자 유모(76)씨는 서울대병원에서 지난해 11월 말기 진단을 받고 호스피스 이용을 권고 받았다. 집 근처는 물론 서울시립병원 호스피스가 모두 문을 닫아 여의도성모병원 등을 알아봤으나 2주 이상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슴 통증과 전신 쇠약 증세가 너무 심해져 기다릴 수 없어 수소문 끝에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외래 환자로 방문했다. 하지만 입원을 기다리다 8일만에 집 근처 중소병원 응급실에서 숨졌다.

 서울 마포구 정모(61)씨는 말기 전립샘암 때문에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서울적십자병원 등 가까운 공공병원 호스피스기관을 알아봤지만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고, 고대구로병원 등은 3주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인천의 관동대 국제성모병원에 입원해서 고용량의 마약성 진통제로 버티다 인천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긴 후 7일만에 임종했다.

 운동본부는 13일 '대안없는 호스피스 병동 폐쇄를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서 "코로나 환자 진료도 중요하지만 말기암 환자 역시 우선 보호받아야 할 중증환자이며, 이들이 삶의 마지막을 잘 정리하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는 곳이 호스피스 병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꼭 그렇게 호스피스병동의 환자까지 내보면서까지 공공병원을 쥐어짜야만 했나. 어차피 죽을 사람들이니 전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고 쉽게 본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운동본부는 "국립대학병원 호스피스병동 폐쇄·축소 시도를 즉시 중단하고 지역사회 말기암 환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것을 촉구한다"며 "대표적인 미충족 필수의료 중 하나인 말기환자의 돌봄을 위한 호스피스·완화의료 인프라 확대를 위한 수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인천성모병원 김대균 가정의학과 교수는 "서울 호스피스기관이 안 그래도 부족한데, 코로나19 때문에 절반이 없어졌다. 공공의료기관이 코로나를 핑계로 '돈 안 되는' 호스피스 서비스를 중단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말기환자의 존엄한 생의 마무리를 위해 더이상 호스피스서비스를 악화시켜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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