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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500 : 4만...생존을 위한 드라이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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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포뮬러 1 포스터. [넷플릭스]

포뮬러 1 포스터. [넷플릭스]

대박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 이전에 ‘위기의 시즌’이 있었다. 1986년 미국에서 ‘위기의 시즌(A Season On The Brink)’이라는 책이 200만 부 넘게 팔렸다. 바비 나이트라는 논란의 명감독이 지휘하는 인디애나 대학 농구팀의 한 시즌을 취재해서 낸 책이다.

인디애나 대 나이트 감독은 한국 야구의 김성근 감독처럼 집요한 데다 폭력적이기까지 한 인물이었다.

상대적으로 무명 선수를 모아 훌륭한 성적을 냈지만, 경기 중 코트로 의자를 집어 던지고 선수들에게 “언론에서 떠드는 얘기에는 귀를 닫으라”고 악을 쓴 사람이었다.

놀랍게도 그가 한 기자에게 팀의 훈련부터 이동, 경기 중 라커룸 작전지시까지 모든 취재를 허가했다. 책에는 라커룸에서의 욕설, 선수들 간의 포지션 갈등, 잔인한 체벌 등도 묘사됐다.

폭력적인 감독에 대한 논란은 많았지만, 팬들은 대학 농구의 장막 뒤까지 이해하게 됐다. 이 책으로 인해 미국에서 최고 인기 이벤트 중 하나인 대학 농구 ‘3월의 광란’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계기도 됐다고 본다.

이 책은 요즘은 흔한 ‘인사이드 NBA’ 같은 프로그램의 계기가 됐을 것이다. 또한 무제한 접근권을 받아 한 팀을 취재하고 책이나 다큐멘터리, 영화 등으로 만드는 새로운 장르의 효시가 됐다.

넷플릭스의 자동차 경주 포뮬러 1 다큐멘터리도 그 중 하나다. 네 시즌 째 촬영하고 있다.

더 래스트 댄스 포스터. [ESPN]

더 래스트 댄스 포스터. [ESPN]

2020년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마이클 조던의 전성기를 다룬 ESPN,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더 래스트 댄스’도 공전의 히트를 했다.

시즌 중 성적 때문에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팀이 기자나 방송팀에 프리 패스를 주는 건 쉽지 않다.

조던은 1997~1998년 촬영은 하되, 본인이 허락해야 방송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는 20년 동안 이 필름 공개를 거절하다가 2016년에야 허락했다.

F1 관계자들도 처음엔 촬영팀을 귀찮아했지만, 나중엔 "왜 나는 찍지 않느냐"며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도 이 바람에 동참한다. 올해 저스틴 토머스, 더스틴 존슨, 브룩스 켑카 등 스타 22명이 넷플릭스에 일상을 공개키로 했다.

극도의 멘탈 스포츠인 선수들의 고민을 볼 기회여서 골프에 대한 대중의 이해가 깊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메이저대회도 협조하기로 했는데 특히 전통을 중시하는 마스터스의 태도 변화가 놀랍다.

마스터스는 TV 화면이 지저분하게 보인다며 로프 내에 선수, 캐디 외에는 못 들어가게 했는데 넷플릭스 촬영팀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1986년 발간된 책 위기의 시즌. [중앙포토]

1986년 발간된 책 위기의 시즌. [중앙포토]

진짜 위기의 시즌은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가 겪고 있다. 지난해 KPGA와 KLPGA가 같은 시간 경기를 할 때 포털 시청자 수가 500명과 4만 명으로 80배 벌어진 적도 있었다.

KPGA의 경쟁력이 그 정도로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 보여주지 못할 뿐이다. 그런데 선수들이 솔직하게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창피하다고 생각하는 일도 많다.

넷플릭스가 KPGA 다큐멘터리를 찍자고 하지 않을 것이다. 투어의 ‘인사이드’는 선수들이 보여줘야 한다.

참고로 넷플릭스 F1 다큐멘터리의 부제목은 '생존을 위한 드라이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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