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른 지갑' 가진 그들 있다…샤넬·버버리도 달려간 제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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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브랜드 체험의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국내 여행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생겨난 변화다. 특히 해외여행을 즐겼던 MZ세대의 제주 나들이가 늘면서 본격 ‘소비문화지대’로 자리잡았다.

체험형 브랜드 매장의 잇따른 제주행

코오롱스포츠가 제주시 탑동에 선보인 체험형 매장, 솟솟 리버스 전경. [사진 코오롱스포츠]

코오롱스포츠가 제주시 탑동에 선보인 체험형 매장, 솟솟 리버스 전경. [사진 코오롱스포츠]

지난 10일 제주 탑동에 문을 연 아웃도어 브랜드 ‘코오롱스포츠’의 체험형 매장. 1970년대 지어져 횟집과 노래방 등이 들고나던 낡은 건물 그대로의 외벽에 ‘솟솟 리버스(RE;BIRTH)’라는 이름을 새겼다. 신규 매장이라고 하기엔 매장 곳곳에 시간의 흔적이 여실하다. 제주 바다에서 건져 올린 스티로폼 쓰레기와 부표를 활용한 매대에는 코오롱스포츠의 재고 상품을 다시 디자인한 ‘업사이클링’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매장 한편에는 낡은 옷이나 에코백 등 액세서리를 수선해 나만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실험실도 자리한다. 코오롱스포츠 총괄 디렉터 한경애 전무는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매장이라기보다 코오롱스포츠가 지향하는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공간으로 구현한 체험형 매장”이라고 소개한다. 공간에 들어와 이곳저곳을 탐색하면서 코오롱스포츠가 환경을 지키는 일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1970년다 건물의 구조를 바꾸지 않고 마감재를 최소화해 완성했다. [사진 코오롱스포츠]

1970년다 건물의 구조를 바꾸지 않고 마감재를 최소화해 완성했다. [사진 코오롱스포츠]

지난해 11월 한 달 제주를 여행했던 사람이라면 꼭 들렀을 ‘핫플(핫플레이스)’을 만든 이들은 다름 아닌 영국 브랜드 ‘버버리’였다. 서귀포시 방주 교회 인근, 너른 풀밭에 반짝이는 대형 거울 피라미드를 세워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이곳 역시 물건을 파는 곳은 아닌 체험형 매장으로 안쪽에는 미디어 아트와 버버리 제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옆에는 버버리 카페도 들어섰다. 제주의 아름다운 환경을 배경으로 브랜드를 보고 듣고 마시면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몰입형 체험 공간이었다.

제주 서귀포 인근에 선보인 버버리의 팝업 공간 '이매진드 랜드스케이프.' [사진 버버리]

제주 서귀포 인근에 선보인 버버리의 팝업 공간 '이매진드 랜드스케이프.' [사진 버버리]

서울 아닌 제주에 왜?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은 비수도권 최초의 매장으로 제주를 선택했다. 유지연 기자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은 비수도권 최초의 매장으로 제주를 선택했다. 유지연 기자

직장인 정소은(33)씨는 지난해 제주를 찾아 플리마켓(벼룩시장)이나 독립서점, 작은 편집숍 위주로 일정을 짰다. 자연환경도 좋지만, 제주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간직한 감각 있는 상점들을 방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정씨는 “여행지에서 들러보고 싶은 가게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이 익숙하다”며 “서울 한남동이나 성수동처럼 제주에도 감각적인 숍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브랜드가 제주를 주목한 배경에는 특히 놀 거리와 즐길 거리 등 체험형·소비형 여행을 즐기는 젊은 세대들의 방문이 늘어난 점이 주효했다.

제주시 탑동에 위치한 라이프스타일 뷰티 브랜드 '이솝'의 매장 전경. 유지연 기자

제주시 탑동에 위치한 라이프스타일 뷰티 브랜드 '이솝'의 매장 전경. 유지연 기자

제주가 본격적 소비문화지대로 자리 잡으면서 최근엔 소상공인 위주의 F&B(식음료) 브랜드뿐만 아니라 자본력 있는 기업들도 관심을 갖는 추세다. 가장 큰 이유로는 코로나19 이후 해외여행이 막히면서 제주를 찾는 국내 여행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점이 꼽힌다. 제주도관광협회 통계를 보면 지난해 약 1197만여명의 내국인 관광객이 제주를 찾았다. 이는 전년 1003만여명보다 19%나 늘어난 수치다. 관광 지출액도 증가했다. 한국관광공사의 ‘한국관광 데이터랩’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지역 관광 지출액은 2020년 8272억원 대비 4.53% 늘어난 8647억원으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큰 증가율을 기록했다.

샤넬은 지난해 3월 제주 신라호텔 내에 '샤넬 인 제주' 팝업 스토어를 열어 운영했다. [사진 샤넬]

샤넬은 지난해 3월 제주 신라호텔 내에 '샤넬 인 제주' 팝업 스토어를 열어 운영했다. [사진 샤넬]

서울, 그것도 이름난 랜드마크나 쇼핑객들이 모이는 번화가가 아니면 볼 수 없었던 브랜드 매장들이 제주로 향하는 이유다. 지난해 3월에는 프랑스 ‘샤넬’이 제주 신라호텔에 제주 최초의 팝업 매장(임시 매장)을 열어 화제가 됐다. 서울 매장보다 재고가 많다는 소문이 돌면서 예약제로 운영되었던 팝업 부티크는 늘 예약 완료 상태였다고 한다.

한 달 살기와 국제 학교, ‘소비력’ 남달라

제주는 2000년대 후반 올레길로 주목받은 후 꾸준히 매력적인 여행지로 자리 잡아 왔다. 몇 년 전부터는 ‘한 달 살기’ 등 머무는 여행이 트렌드가 되면서 정주 인구가 아닌 관계 인구가 늘어났다. 단순 관광객뿐만 아니라 일정 기간 머무는 사람들이 늘면서 한 번 들르고 마는 관광지 외에도 라이프스타일 관련 상점이나 문화 콘텐트가 생겨났다.

제주 원도심 도시 재생 사업 일환으로 만들어진 '제주끄티' 전경. 로컬 브랜드가 입점해있다. 유지연 기자

제주 원도심 도시 재생 사업 일환으로 만들어진 '제주끄티' 전경. 로컬 브랜드가 입점해있다. 유지연 기자

그중에서도 제주시 탑동·건입동 인근은 변화의 중심지다. 2020년 5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바이 아라리오’가 들어서면서 젊은층 사이에서 제주를 여행하면 꼭 들러야 하는 명소로 거듭났다. 전 세계 10곳에서 운영되는 디앤디파트먼트는 서울 이태원점 이후 제주에 두 번째 한국 매장을 열었다. 지역의 디자인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편집숍이자 숙박 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부산 영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도시 재생 스타트업 ‘RTBP’가 제주에 선보인 ‘끄티 탑동’도 인근이다. 방치되어 있던 유휴지를 재생한 건물에는 지역 먹거리 브랜드, 전시 공간 등이 자리한다. 코오롱스포츠의 ‘솟솟리버스’도 지척이다. 솟솟리버스 관계자는 “매장을 열고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20대 방문객 수가 많고, 브랜드 공간에 대한 이해도가 남달라 놀랐다”고 귀띔했다.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바이 아라리오 내부. 제주의 지역성이 빚어낸 물건과 먹거리, 생활용품과 가구를 소개하는 편집숍 겸 숙박 시설이다. 유지연 기자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바이 아라리오 내부. 제주의 지역성이 빚어낸 물건과 먹거리, 생활용품과 가구를 소개하는 편집숍 겸 숙박 시설이다. 유지연 기자

제주에 라이프스타일 콘텐트가 늘어난 데는 소비력 있는 인구 유입이 한몫했다. 브랜드 컨설팅 전문가 최원석 필라멘트앤코 대표는 “최근 3~5년 사이 제주·부산 등에 서울에서 카페 등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맛본 창업자들이 대거 내려가 자신만의 가게를 내면서 지역 콘텐트가 풍성해졌다”며 “특히 제주는 관광객뿐 아니라 국제 학교 등으로 소비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많아 관련 비즈니스가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주 한림의 오래된 예식장을 개조해 만든 바&레스토랑 '넥스트도어.' 유지연 기자

제주 한림의 오래된 예식장을 개조해 만든 바&레스토랑 '넥스트도어.' 유지연 기자

다만 지나치게 소비 위주로 흐르는 것은 우려되는 점이다. 제주만의 지역색을 살려 개발해야 의미 있는 ‘문화 발신지’ 역할을 할 수 있다. 애초에 브랜드가 제주를 주목하는 데에는 제주만의 특색 있는 환경이 한몫했다. 김철우 RTBP 대표는 “젊은 여행객들이 제주 탑동 일대로 모여드는 이유는 바다와 항구 등 제주만의 역사·문화적 자산 때문”이라며 “유행따라 대량 소비되기보다는 제주의 정체성을 잘 녹여내고 주민들도 함께하는 지역 생태계를 구축한다면 여행지에서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를 찾아 경험하고 싶어하는 MZ세대들에게 지속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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