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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죽음' 정부지침은 면피용? '슬퍼할 권리' 박탈당했다 [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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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사망자의 존엄, 예우를 유지하며 유족의 뜻을 존중하는…"

보건복지부가 펴낸 '코로나19 사망자 장례관리 지침' 첫 페이지에 명시된 원칙이다. 감염 확산을 차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존엄한 죽음과 이별을 맞을 망자와 가족들의 권리도 존중돼야 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코로나 유행 초기인 지난 2020년 2월 이 지침을 만들고, 다음 해 2월 개정판을 내놨다. 하지만 2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지침 따로, 현장 따로' 다. '존엄한 죽음'을 규정한 원칙이 왜 현장에선 잘 적용되지 않는지 '임종 임박' 때부터 '사망 후'까지 단계별로 하나하나 살펴봤다.

임종 임박 시 “개인 보호구 착용하고 병실에서 환자 면회 가능”

평소 코로나19 환자 면회는 감염 우려 탓에 잘 이뤄지지 않는다. 지침에서 '환자가 임종이 임박했을 때'를 따로 명시한 이유이기도 하다. 환자가 임종에 가까워진다고 판단되면 의료기관은 즉시 가족들에게 알려야 한다. 또 가족들이 원하면 개인 보호구를 착용하고 병실에서 면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난해 2월 발행된 코로나19 사망자 장례관리지침 제2판. 단계별 조치사항 중 '임종 임박' 부분이 명시돼 있다.

지난해 2월 발행된 코로나19 사망자 장례관리지침 제2판. 단계별 조치사항 중 '임종 임박' 부분이 명시돼 있다.

하지만 취재진이 만난 유족들은 대부분 고인의 임종을 하지 못했다. 감염 우려가 가장 큰 이유다. 허윤정 아주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는 "'위험하다'는 이유로 임종 전 고인을 볼 기회는 거의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가족 중 한 명만 CCTV 화면 통해 가능’ ‘코로나 환자는 면회 불가능’ 등 정부 지침과 별개로 내부 규칙을 세워둔 의료기관도 있었다. 한 병원 측 관계자는 "보호구를 했더라도 여전히 감염 우려는 1%라도 있기 때문에 가족들이 병원에 우르르 들어오게 하는 것은 어렵다"며 "한 명이라도 면회하다가 확진자가 발생하면 곤란해진다"고 말했다.

부족한 의료진과 과중한 업무 부담도 지침이 현장에서 잘 적용되지 않는 이유다. 혈압, 산소농도 등 환자 상태를 확인해 가족들에 일일이 연락해야 한다. 박성훈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승압제를 많이 썼는데도 혈압이 떨어지거나 인공호흡기를 최대로 올리는데 산소농도가 떨어지는 등 하루 이틀 못 버티시겠다고 판단되면 가족들께 연락 드리고 오시라 한다"고 했다. 가족들이 병원에 오면 보호구 입는 법을 설명하고, 환자를 볼 수 있는 유리창 앞까지 안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선 주로 간호사들이 대부분의 일을 맡게 된다. "바쁜 의료진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박 교수는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경기도의 한 화장터에서 레벨D 방호복을 입은 직원들이 코로나19 사망자의 관을 옮기고 있다. [한국장례협회 제공]

지난해 12월 경기도의 한 화장터에서 레벨D 방호복을 입은 직원들이 코로나19 사망자의 관을 옮기고 있다. [한국장례협회 제공]

사망 시 “마지막 작별 고할 수 있도록 충분한 애도 시간 보장” 

임종을 못 지킨 유족들이 고인을 볼 수 있는 고인의 마지막 기회는 시신이 관에 담겨 밀봉된 이후다. 지침에서는 '충분한 애도 시간'을 필수사항으로 분류해 굵은 글씨로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선(先) 화장, 후(後) 장례’ 하에서 애도는 사치"라고 유족들은 말한다.

상황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코로나 사망자가 발생한 직후 이뤄지는 일반적인 과정을 살펴봤다.
먼저 위생 시트 위에 주검을 안치하게 된다. 시신을 씻기고 수의로 갈아입히는 염습은 생략한다. 입은 옷 그대로 다시 비닐백에 안치한다. 비닐백을 다시 시신낭(바디백)에 넣어 입관한다. 위생 시트부터 관까지 고려했을 때 밀봉은 네 차례 이뤄지는 셈이다. 과정마다 소독도 진행하게 된다. 이후 바로 화장장으로 이송한다.

유족들에게 고인을 볼 마지막 기회는 화장장이다. 일반 사망자들의 화장이 끝나는 오후 5시쯤, 화장 직전 고인이 있는 관 상자를 마주한다. 주어진 시간은 1분가량, 그것도 열 걸음 정도 멀찍이 떨어져서다. 관 주변에는 하얀 방호복을 입은 직원들이 돌아다닌다.

메르스 백서에 기반을 둬 만들어진 '선 화장, 후 장례' 원칙은 코로나 발생 초기부터 2년 넘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신에도 체액이 나오는 메르스와 달리 코로나의 경우 입 안 체액 정도를 제외하고는 시신에 바이러스가 있을 가능성 거의 없다고 말한다. 이혁민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 교수는 “산 사람의 비말은 기침 혹은 말을 하면서 전파 쉽지만, 죽은 사람은 비말 통한 코로나 감염이 거의 없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3월 ‘시신으로부터 코로나 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증거 없다’며 매장도 무방하다는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사망 이후 “선 화장 때 장사비용 지원” 

정부는 '선 화장' 지침을 따른 코로나 사망자 유족들에게 장례지원비 1000만원을 지급한다. 감염병예방법 제20조의2에 따르면 감염병 차단과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장사 방법을 제한할 수 있는데, 코로나의 경우 장사방법을 장례에 앞서 진행하는 화장으로 정해 놓았다.

코로나19 일별 사망자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코로나19 일별 사망자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하지만 장례지원금 지급에 앞서 유족들이 안전하게 애도할 수 있는 환경 마련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른다. 박채원 한성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유족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이 죄책감"이라며 ”마지막으로 손 한번 못 잡아 드리고, 얼굴 한 번 못 본 유족들의 아픔이 현금 보상만으로 치유될 수 있겠느냐”고 했다. 한 사람의 죽음에는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등 여러 부분이 고려돼야 하는데, 장례비 지원만으로 이 모든 것들이 충족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박 교수는 "일반 죽음도 그렇지만, 특히 코로나로 인한 죽음은 '내가 잘 못 해드렸고, 부족했다'는 죄책감이 트라우마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미리 장례를 간소하게라도 하고 화장할 수 있는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며 "특히 우리나라는 임종을 지켜야 한다는 전통까지 있는데 얼굴 확인조차 못 하는 상황이면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유리 벽을 만드는 등 안전장치를 갖추고 간소하더라도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코로나가 장기화하고 있는데 정부가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은 기계적 행정 편의주의가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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