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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세린 클라크의 문화산책

알래스카 눈 치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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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조세린 클라크 배재대 동양학 교수

팬데믹으로 고국을 방문하지 못한 채 한국에서 내리 2년을 보내고, 최근에야 고향 알래스카에 왔다. 높다란 얼음 산맥 사이를, 또 델타 변이와 오미크론 변이의 틈을 비껴 날아온 먼 여행길이었다. 겨울 휴가를 맞으면 나는 보통 크리스마스, 새해, 조카 생일, 내 생일로 이어지는 네 번의 행사를 치른다. 고향에 도착한 이후 전등과 장식을 달고, 준비한 선물을 교환하고, 2022년 새해맞이 다짐을 하고, 코로나19로 가장 가까운 이들만 모이는 생일축하 파티 메뉴를 계획하는 등, 해마다 관례처럼 행사들로 바빴다.

하지만 이번엔 가장 일정하게 지킨 것은 눈 치우기였다. 지난 몇 년 동안 내 고향이 속한 북부 온대 다우림 지역은 기후 변화에 따른 온도 상승으로 장맛비가 내리는 ‘엘니뇨’ 겨울을 보냈다. 그런데 올해에는 내 어릴 적을 생각나게 하는 ‘라니냐’ 겨울이 찾아왔고, 눈이 350㎝까지 쌓여 창문을 덮었다. 날마다 영하 18도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며 앞마당을 쓸어야 했다.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윈터 원더랜드’가 따로 없었다.

2년 만에 방문한 고향땅
350㎝까지 쌓인 하얀 눈
눈 치우며 가까워진 이웃
가족들 모이는 새해 소망

팬데믹 때문에 동네에는 눈을 치우고 제설기를 수리해줄 일꾼이 부족했다. 도로들은 갓길 사이로 난 1차선 협곡이 됐고, 그 협곡은 실제 산맥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높았다. 때때로 제설차가 눈더미를 실어 날랐지만 치운 눈을 버릴 곳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쓰레기차·연료공급차는 눈 쌓인 도로를 통과할 수 없었다. 주민들은 각자 알아서 눈을 치워야 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거리두기 이전의 사회적인 활기를 되찾았다.

지난 연말 폭설로 하얗게 덮힌 미국 알래스카 주택가 풍경.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연말 폭설로 하얗게 덮힌 미국 알래스카 주택가 풍경. [로이터=연합뉴스]

눈 덮인 길 어디에선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나타나 헛바퀴 도는 자동차를 밀어주고, 다른 사람 몫의 눈까지 치워 길을 틔웠다. 우리 고향에서는 대개 낯선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하지 않는다. 이미 어느 정도 서로 아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예전에 인사를 나눈 사람에게 실수로 자기소개를 또 하게 될까 싶어 굳이 이름을 말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하물며 눈 치우기 문화 속에서는 그런 격식이 자리를 잡을 틈이 없다. 그런 순간에는 이름과 정치관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서로를 위해 조용히 눈을 치우고 나를 뿐이다.

오늘 아침처럼, 눈더미 속에 홀로 나와 있는 날도 있다. 나를 둘러싼 (내 키를 한참 넘긴) 하얀 벽은 생각을 펼쳐 놓는 빈 칠판이 된다. 오늘도 눈을 치우면서 팟캐스트에서 나오는 진 타가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알래스카 주노 출신인 배우 겸 작가 타가반은 ‘소개’를 주제로 이야기했다. 그는 우리가 바위, 나무 같은 자연물과 조우하는 순간을 소개의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생각을 인위적인 물건과 악덕으로도 확장했다. 그는 우리가 ‘함께 걷는’ 것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소개는 관계를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술 한 병을 예로 들었다. “술병에게 ‘너는 누구니?’ 라고 물어보세요. ‘너는 누구와 함께 다니니? 너는 누구와 함께 걷니?’ 그렇게 묻다 보면 어쩌면 술의 혼은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나는 부끄러움, 슬픔, 어둠, 자살, 폭력과 함께 걷는다’고요. 술의 패거리들은 그런 것들입니다. 그들이 당신 속에 있으면 좋겠습니까? 우리는 소개를 할 때마다 관계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나는 들고 있던 삽을 내려다보며 농담으로 물었다. “너는 누구니?” 삽은 성실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는 막강한 장애물을 뚫고 말끔한 길을 내는 조각가다. 하지만 혼자서 그 일을 할 수는 없다.” 나는 이 대답을 새기며 새해 목표를 정했다. 새삼 삽에 대해 각별한 애정이 생겨, 내 가야금이 질투할 정도로 삽자루를 쓰다듬었다.

알래스카의 시인 존 스트레일리는 “오늘이 새해라고들 하지만,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겨울 아침 같다. 순간의 가냘픈 막은 차가운 공기로 인해 제자리를 갖는다. 그리고 나는… 앞날을 볼 수 없다”라고 말한다. 어떤 면에서 새해는 다른 날과 다름없겠지만, 시간이 한참 지나면 다른 날이 될 것이다. 부모님은 몸이 더 약해지신 것 같고, 조카들의 목소리는 변성기가 와서 한층 낮아졌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순간과 미래의 슬픔 사이에 쳐진 가냘픈 막이 점점 얇아지고 있음을 감지하고, 제자리를 잡고 있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몇 주 후면 나는 눈이 없는 대전으로 향할 것이다. 내 소망은 전 세계에 활개 치는 바이러스가 2022년 ‘검은 호랑이’의 발톱에 산산조각이 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한국에 계속 살면서, 필요할 때는 자유롭게 알래스카 가족들을 방문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