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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국가수사본부 출범 1년, 초라한 성적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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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종민 변호사, 바른사회운동연합 공동대표

김종민 변호사, 바른사회운동연합 공동대표

검·경 수사권을 조정한 지 만 1년이 지났다. 수사권 조정에 맞춰 ‘한국형 FBI(미국 연방수사국)’를 표방하며 경찰청에 국가수사본부(국수본)가 출범했고,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면서 형사 사건의 1차 수사종결권이 경찰로 넘어갔다.

그 와중에 검찰에는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의 직접 수사권만 남았다. 검찰을 무력화하려는 권력의 이해관계와 맞아 떨어지면서 경찰의 숙원인 수사권 독립이 사실상 달성됐다. 하지만 수사와 정보를 독점한 거대 경찰 권력이 탄생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을 기반으로 하는 중국 공안 유사한 체제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고소사건 처리기간 8.7일 더 걸려
훼손된 형사사법 시스템 고쳐야

공수처 신설과 함께 문 정부가 내세운 이른바 ‘검찰개혁’의 상징인 수사권 조정을 시행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손에 잡히는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국수본은 출범 1년에 즈음해 주요 범죄 특별단속 성과를 자랑했지만, 과거에도 해오던 것일 뿐이다. 1차 수사종결권 확보 이후 약 46만 명이 피의자 신분에서 조기에 벗어났다고 홍보했지만, 사기 등 고소 사건은 과거보다 처리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있다. 전문 법률가조차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절차가 복잡해졌다.

지난 6일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검·경 수사권 조정이 제도 안착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했지만,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2021년 평균 사건 처리 기간은 61.9일로 전년보다 8.7일이 증가했다. 경찰관 1인당 사건 보유 건수도 17.9건으로 지난해(15건)보다 19.4%, 최근 3년 평균보다 25.7% 증가했다. 사건 적체가 심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불송치 결정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1년 넘게 수사해온 복잡한 고소 사건을 무혐의 결정하면서도 불송치 결정문은 2~3장에 불과해 어떤 근거로 그런 결정을 했는지 변호사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다.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도 문제다.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 비율이 2020년 경찰청 집계 기준 4.1%에서 지난해 9.7%로 증가했다. 국수본은 수사 절차가 정당하고 적절했는지 점검하겠다며 수사심사관-책임수사지도관-경찰 사건심사 시민위원회로 이어지는 3중 심사체제를 도입했지만, 절차만 복잡하고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검찰의 무고 인지 사건 건수도 급감했다. 검찰은 고소 사건을 무혐의 처분할 때 의무적으로 무고 판단을 하고 혐의가 있으면 인지한다. 지난해 10월까지 검찰의 무고 인지 사건은 160건이었는데 전년 동기(706건)보다 대폭 줄었다. 월평균 16건으로 지난해(58.8건)보다 72% 감소했다. 경찰이 1차 수사종결권 행사를 통해 무혐의 결정을 했으면 당연히 무고 여부를 검토하고 수사를 해야 할 텐데 무고 인지 통계조차 없어 블랙홀에 빠진 형국이다.

국수본의 중대 범죄 수사 실적도 기대에 못 미친다. LH 신도시 투기 의혹 수사에 1560명이 투입돼 10개월 동안 수사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다. 대장동 비리 의혹은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이상 자금 흐름 첩보를 경찰이 검찰보다 5개월 먼저 입수하고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아 뭉개기 의혹만 키웠다. 그 와중에 인천 층간 소음 살해, 서울 송파구 신변 보호 가족 살인 등 민생치안엔 구멍이 뚫렸다.

공수처 출범과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 1년을 돌아보면 권력이 밀어붙인 검찰개혁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부패와 경제 범죄 등 주요 범죄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응 능력이 현저히 훼손됐고 자칫 형사사법 시스템이 근본부터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감지된다. 범죄자가 활개 치고 피해자가 눈물짓는 사회로 갈 수는 없다. 이제 고장 난 형사사법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은 차기 정부의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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