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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후진국형 ‘광주 아파트 붕괴’ 책임 엄중히 물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유병규 현대산업개발 대표가 12일 광주광역시 화정동 39층 주상복합아파트 공사장 외벽 붕괴 참사 현장 부근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번 사고로 인부 6명이 실종된 상태다. [프리랜서 장정필]

유병규 현대산업개발 대표가 12일 광주광역시 화정동 39층 주상복합아파트 공사장 외벽 붕괴 참사 현장 부근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번 사고로 인부 6명이 실종된 상태다. [프리랜서 장정필]

동절기 무리하게 공기 단축하려다 탈 났나

시공업체와 시·구청 공무원 등 수사해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39층 주상복합아파트 공사 현장 외벽 붕괴 참사는 후진국형 안전사고의 전형으로 보인다. 측면이 무너진 23~38층에서 작업하던 인부 6명이 실종된 만큼 설계와 시공 및 감리 과정에서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켰는지 철저하게 수사해 법적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할 것이다.

아파트 공사장 외벽의 찢긴 모습은 마치 항공기 테러를 당한 것처럼 참담해 보였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 어떻게 산사태 나듯 무너져 내렸는지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국토교통부와 사고 현장을 관찰한 전문가들은 콘크리트 타설을 위한 거푸집이 무너지고 타워크레인 지지대가 손상되면서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철근·시멘트 등 건축 자재를 정상적으로 사용했는지, 2020년 3월 착공한 이 아파트의 11월 입주 일정에 맞추려  콘크리트 양생이 더딘 동절기에 무리하게 공기 단축을 시도했는지 밝혀야 한다.

사고 아파트 시공사는 지난해 6월 광주시 서구 학동 재개발지구 철거 현장 붕괴 사고의 원청 업체와 같은 HDC현대산업개발이다. 지난해엔 철거 공사 중 5층 건물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숨졌다. 당시 사고는 하도급 업체의 철거 과정에서 발생했지만, 검찰은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들도 부실 철거에 관여했다고 판단해 재판에 넘겼다. 유병규 현대산업개발 대표는 어제 사과문을 내고 “있을 수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책임을 통감한다”며 머리를 숙였다. 7개월 만에 또 사고가 났는데 사죄로 끝낼 일은 아닌 듯하다.

사고가 발생한 지난 11일은 공교롭게도 ‘광주 철거 현장 붕괴 참사 재발 방지법’으로 불리는 건축물관리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날이었다. 건물 해체 작업자가 계획서대로 건축물을 해체하지 않고 공중의 위험을 발생하게 한 자에 대한 처벌 강화가 골자다. 마치 법 개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동일 업체의 광주 사업장에서 사고가 났으니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용자의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해 1월 제정됐지만 1년 유예돼 오는 27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이번 사고에는 적용이 어려운 상황이다.

광주시 재난안전대책본부는 긴급 현장 대책회의를 열고, 광주 지역 소재 현대산업개발의 모든 건축 및 건설 현장의 공사를 중지시켰다.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현대산업개발 현장소장을 입건하고 안전부장, 감리단 관계자, 타워크레인 기사 등을 상대로 이틀째 사고 경위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광주시청 공무원들과 업체의 유착 여부도 샅샅이 수사해 안전사고가 잦은 배경에 공무원의 봐주기나 관리감독 소홀이 있었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국토부와 총리실은 이참에 후진국형 사고가 계속 반복되는 근본 원인을 점검해 대책을 마련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