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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간판이 뭐길래…두 오케스트라 팽팽한 신경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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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국립’으로 명칭 변경을 추진한다. [사진 코리안심포니 홈페이지]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국립’으로 명칭 변경을 추진한다. [사진 코리안심포니 홈페이지]

“‘국립’의 조건이 무엇인지 먼저 물어야 한다.” KBS교향악단 단원 노동조합이 7일 발표한 성명서 중 일부다. 노조는 “최근 서울의 한 공연장 상주단체인 오케스트라의 명칭을 ‘국립 교향악단’으로 변경하는 의견 조회 서면이 돌고 있다”며 “과연 해당 오케스트라가 ‘국립’의 명성에 어울릴만한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되물었다. 해당 단체는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이하 코리안심포니)다.

코리안심포니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으로 예산의 70%인 60억원 정도를 국비에서 지원받는다.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공연에 참여하며 연간 100여회 무대에 선다. 문체부 관계자는 “정부 예산이 계속 지원된 곳의 위상에 맞는 명칭으로 변경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코리안심포니’라는 이름에서는 공공 예술단체라는 점을 알 수 없어 7~8년 전부터 명칭 변경 제안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명칭 변경은 올 상반기에 예정이다. 코리안심포니와 KBS교향악단은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규모·연주력 등에서 한국 빅3 오케스트라다.

KBS교향악단은 코리안심포니 국립화 반대 이유로 역사성과 명분을 든다. KBS교향악단은 1956년 서울방송관현악단으로 출범했다. 69년 운영권이 국립극장으로 옮겨가면서 국립교향악단으로 바뀌었다. 운영권이 81년 KBS로 이관될 때까지 ‘국립’ 명칭을 썼다. 노조 측은 “대통령 해외순방, 국빈 방한, 올림픽 등 각종 국가 기념식에 KBS교향악단이 함께했다”며 “국가대표 교향악단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희로애락을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성호 공공운수노조 KBS교향악단 지회장은 12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뿌리를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며 “KBS교향악단은 지금도 ‘국립교향악단’ 도장이 찍힌 악보를 쓴다”고 말했다.

KBS교향악단이 ‘국립’ 명칭을 사용할 가능성은 현재로는 낮다. KBS교향악단은 현재 KBS로부터 연간 108억원의 지원금을 받아 운영한다. 2012년 재단법인으로 바뀌면서 연간 지원금을 확정했다. 다만 KBS는 2025년까지 교향악단을 지원키로 한 상황. 그 이후 교향악단의 위치는 불투명하다. 코리안심포니의 한 관계자는 “(KBS교향악단은) 정부기금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데, 옛 명분만 가지고 다른 오케스트라의 국립화를 방해하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코리안심포니 명칭이 ‘국립’으로 바뀌면 정부 지원도 늘어날 전망이다. 옛 정동극장이 지난해 ‘국립정동극장’으로 명칭을 변경한 경우와 같다. 1995년 국립중앙극장 분관으로 설립된 이 극장은 명칭에 ‘국립’을 추가한 뒤 재건축과 예술단 출범을 확정했다. 문체부와 코리안심포니는 ‘국립 교향악단’뿐 아니라 ‘국립 심포니’ ‘국립 오케스트라’ 등도 염두에 두고 있다. 다만 KBS교향악단의 반발이 관건이다. 조성호 지회장은 “국립 전환 논의의 장을 확대하고, 거기에 KBS교향악단을 중요한 지위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악계 한 원로는 “옛 연혁을 가지고 따지는 일은 불필요하다”며 “국립 교향악단이 된다면 다른 교향악단과 차별화되는 역할과 목적을 무엇으로 할지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북미처럼 정부, 방송국, 지역이 주도하는 오케스트라로 각각 특성과 체제를 갖춰 발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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