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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 기대도 추운데…우리라도 붕괴 현장 들어가겠다" 한파속 속타는 가족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2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신축 공사 현장. 전날 오후 39층 아파트 상층부 외벽이 갑자기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도로 건너 광주종합버스터미널 '유스퀘어'가 보인다. 프리랜서 장정필

12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신축 공사 현장. 전날 오후 39층 아파트 상층부 외벽이 갑자기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도로 건너 광주종합버스터미널 '유스퀘어'가 보인다. 프리랜서 장정필

실종자 가족 "언론 앞에서만 사과…진정성 없다"

"(실종자) 가족들이 밤새 떤 천막이 지척이다. 말 한마디 없이 언론 앞에서만 사과한다고 될 일이냐."

12일 오전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신축 공사장. 전날 아파트 건물 상층부 외벽이 무너지면서 연락이 두절된 하청업체 직원 6명 중 1명의 가족 A씨가 울분을 토했다. 이날 오전 10시쯤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 유병규 대표이사가 임직원들과 함께 사고 현장을 찾아 공개 사과한 것을 두고서다.

유 대표는 이날 "HDC현대산업개발의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불행한 사고로 인해 피해를 보신 실종자분들과 가족분들, 광주시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린다"며 "현재는 실종자 수색과 구조가 급선무이며 소방본부와 국토교통부, 광주광역시 및 서구청 등 유관 기관과 긴밀히 협조해 실종자 수색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 조치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수사기관의 조사와 국토교통부 등의 사고 원인 규명에도 성실히 임하겠다"고 했다.

12일 오전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 현장에서 전날부터 뜬눈으로 밤을 지샌 실종자 가족들이 소방당국 등에 수색 재개를 요구하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2일 오전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 현장에서 전날부터 뜬눈으로 밤을 지샌 실종자 가족들이 소방당국 등에 수색 재개를 요구하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오죽하면 우리라도 보내달라고 하겠나" 울분 

그러나 A씨는 "실종자 가족들은 현대산업개발 측이 오늘 사과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며 "어젯밤에 현대산업개발 관계자가 우리를 찾아와 '수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만 말하고 갔는데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종자가 사고 당일 아침에 분명히 출근했고 오전에도 통화했다"며 "31층에서 작업을 했다고 하는데 그곳에 있는지, 없는지 만이라도 알고 싶다. 오죽하면 우리라도 (사고 현장에) 들여 보내달라고 하겠느냐"고 했다.

추가 붕괴 우려 때문에 전날 오후 8시쯤 수색을 중단했던 소방당국은 이튿날인 12일 오전 11시20분쯤 드론 2대와 구조견 6마리를 현장에 투입하는 등 실종자 수색을 재개했다.

유병규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가 12일 오전 광주 서구 화정동 신축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 현장 부근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유병규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가 12일 오전 광주 서구 화정동 신축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 현장 부근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최저 기온 영하 5.7도…"생사라도 확인해 달라"

그러나 수색이 재개되기 전까지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 현장 인근에 설치된 임시 천막에서 밤을 지새며 애를 태워야 했다. 28층에서 작업하다 연락이 끊겼다는 실종자 가족 B씨는 "이런 혹독한 한파 속에 난로에 기대 버티는 우리도 힘든데 실종자들은 얼마나 춥고 절망했겠느냐"고 했다.

광주기상청에 따르면 12일 광주 지역 최저 기온은 영하 5.7도를 기록했다. 또 다른 실종자 가족 C씨는 "드론으로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는데 실종자들이 있던 공간 만이라도 확인해 달라"며 "생사도 모른 채 무작정 수색 결과만 기다리기가 너무 힘겹다"고 했다.

광주광역시와 소방당국이 12일 오전 11시20분쯤 구조견과 구조대원 등을 전날 외벽 붕괴 사고가 일어난 건물에 투입해 수색 작업을 재개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광주광역시와 소방당국이 12일 오전 11시20분쯤 구조견과 구조대원 등을 전날 외벽 붕괴 사고가 일어난 건물에 투입해 수색 작업을 재개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광주시장 "추가 붕괴 막기 위해 타워크레인 해체 검토" 

앞서 이용섭 광주시장(광주시 재난안전대책본부장)은 이날 오전 사고 현장 브리핑에서 "마음 같아서는 어젯밤에 바로 구조팀을 현장에 투입하고 싶었다"며 "하지만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야간에 투입하는 것은 또 다른 안전사고 발생의 우려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오늘 아침 날이 밝자마자 국토안전관리원을 중심으로 드론을 띄워 현장을 샅샅이 살핀 후에 사고 현장 내부 지하에서 꼭대기층까지 안전 상황을 점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전 11시쯤 안전점검팀은 내부의 경우 지하에서 꼭대기까지 수색 작업을 하는데 문제가 없으며, 외부는 일부 붕괴 우려가 있어 안전 보완 작업이 필요하므로 우선 드론 등을 이용해 열화상 카메라와 구조견을 활용해 수색이 가능하다고 최종 결정하고 광주시 재난안전대책본부에 의견을 전달했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추가 붕괴 사고를 막기 위해 시공사와 타워 크레인 전문가 등이 현재 타워 크레인 해체 여부 등 안전성 확보 방안을 강구 중"이라고 덧붙였다. 140여m 규모의 타워 크레인은 붕괴 사고가 일어난 아파트 외벽을 따라 수직 형태로 설치돼 있다.

12일 오전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외벽 붕괴 현장 인근 상가 입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2일 오전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외벽 붕괴 현장 인근 상가 입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옥상서 콘크리트 타설 중 23~38층 붕괴 

이번 사고는 전날 오후 3시47분쯤 39층 옥상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23~38층 외벽이 갑자기 무너지면서 발생했다. 이 사고로 아파트 외벽에서 떨어진 잔해가 인근 주차장을 덮쳐 차량 20여 대가 파손되거나 매몰됐다. 소방당국은 도로변 지상 컨테이너 등에 갇혀 있던 3명을 구조하고, 1층에서 잔해물에 맞은 1명을 병원으로 이송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공사에 참여한 22개 하청업체 노동자 394명 중 사고 당일 388명의 소재는 파악했으나, 나머지 6명은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경찰은 실종자 가족과의 연락 등을 통해 이중 4명이 사고 당일 실제 작업에 투입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소재와 조난 여부 등을 파악 중이다.

12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신축 공사 현장. 전날 오후 아파트 외벽이 무너지면서 지상에 주차된 차량 20여 대가 매몰되거나 파손됐다. 프리랜서 장정필

12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신축 공사 현장. 전날 오후 아파트 외벽이 무너지면서 지상에 주차된 차량 20여 대가 매몰되거나 파손됐다. 프리랜서 장정필

인재 가능성도…"강풍에 크레인·거푸집 못 견뎠을 가능성"  

사고 원인을 두고서는 인재(人災) 가능성이 제기됐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39층에는 평소에도 바람이 상당했을 것이고, 사고 당일에도 강풍이 불어 타워 크레인 지지물과 거푸집 등이 풍압을 견디지 못하고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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