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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벽붕괴 아파트, 입주 1년 밀릴듯…"계약 취소 소송도 고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1일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신축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외벽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프리랜서 장정필

11일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신축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외벽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11일 외벽 붕괴 사고가 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 공사 현장은 사고 수습에만 수개월이 소요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로 오는 11월로 예정된 입주가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 늦춰질 것으로 예상한다. 입주 예정 시기에 맞춰 기존 집 정리 스케줄을 잡았던 입주예정자들의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번 외벽 붕괴 사고는 스카이라운지 등 편의시설이 들어서는 39층 옥상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던 중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23∼38층 외벽이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는데, 사고 현장을 둘러본 전문가들은 겨울철 무리한 콘크리트 공사가 붕괴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2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신축 아파트 붕괴공사 현장에 실종자 수색을 위한 구조견이 투입됐다. 프리랜서 장정필

12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신축 아파트 붕괴공사 현장에 실종자 수색을 위한 구조견이 투입됐다. 프리랜서 장정필

12일 현장을 둘러본 조창근 조선대 건축학과 교수는 조심스럽게 사고가 난 건물 해체 후 재시공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조 교수는 "콘크리트로 연결된 건축물은 일부분이 한 번 충격을 입으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며 "저층부 정밀 조사를 해봐야지 알겠지만, 상황에 따라 재시공을 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밀 점검에만 수개월이 소요되고, 건물 해체 후 재시공을 한다면 당초 완공 예정일보다 최소 1년은 더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날 국토교통부는 학계 전문가 10명이 참여하는 건설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하면서 2개월간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원인 규명에 걸리는 시간만 최소 두 달인 셈이다.

사고 부위만 일부 재시공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 역시 입주 지연은 불가피하다. 최창식 한양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사진만 봤을 때는 저층부 등 주변의 피해가 커 보이지는 않는다"며 "현재 국내 기술력으로도 국부적 재시공이 어렵지 않지만, 주민들이 불안해하는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동훈 무한종합건축사무소 대표는 "안전 진단에 따라 철거 범위가 정해지겠지만, 부분 재시공을 해도 입주가 최소 6개월은 더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며 "입주예정일에 맞춰 이사 계획을 잡아놓은 수분양자들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12일 광주 아파트 사고 현장에서 수색견들이 투입되었다  프리랜서 장정필

12일 광주 아파트 사고 현장에서 수색견들이 투입되었다 프리랜서 장정필

이런 상황에서 사고 책임이 있는 시행사와 시공사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보상금을 부담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이 아파트의 시행사는 HDC아이앤콘스, 시공사는 HDC현대산업개발로 모두 HDC그룹 계열사다. 시행사가 청약 당첨자와 맺는 표준계약서를 보면 시행사가 입주예정일을 지키지 못할 경우 이미 낸 계약금, 중도금 등에 연체료율(업계 기준 17~18%)을 곱해 지체보상금을 지급하거나 해당 금액을 잔금에서 공제한다. 입주 지연이 길어질수록 지체보상금 규모도 커진다.

이 아파트는 현재 계약금(20%)과 중도금 3회(30%) 납부를 마친 상태다. 계약사항에 따라 나머지 중도금 2회(20%)를 더 납부한 것으로 가정하면 사고가 난 201동 하루 입주 지체보상금(연체료율 17% 기준)은 1900만원 수준이다. 6개월 미뤄지면 35억원, 1년이 미뤄지면 70억원가량의 보상금을 시행사가 부담해야 한다. 만약 2단지 아파트 316가구 전체의 입주가 지연될 경우 보상금 규모는 6개월 110억원, 1년 220억원 수준까지 올라간다.

'입주가 예정일보다 3개월 이상 늦어질 경우 계약 취소가 가능하다'는 조항도 있다. 입주 지연이 장기화하면 대규모 계약 취소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계약이 취소될 경우 청약통장이 되살아날 가능성도 있다. 국토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14조, 57조)에 따르면 사업 주체 파산, 입주자 모집승인 취소 등으로 이미 납부한 입주금을 반환받거나 해당 주택에 입주할 수 없게 된 경우 당첨자 명단에서 삭제된다. 이후 1년 이내에 청약 납입금을 다시 납입하면 기존 통장은 다시 되살아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표준계약서에는 '천재지변, 행정명령, 민원, 법원의 공사중지 결정 등 불가피한 사유로 입주가 지연될 경우 입주지체보상 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조항도 있다"며 "사고 당일 현장에 분 강풍 등이 원인으로 나타날 경우 수분양자와 시행사가 보상금, 계약 취소 등을 놓고 법적 다툼을 벌일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10개월 뒤 입주를 손꼽아 기다리던 입주예정자들은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이들은 온라인 카페와 메신저 등에서 현장에서 나오는 뉴스를 공유하며 대책 마련을 모색 중이다. 한 입주예정자는 "10대 건설사가 짓는 아파트가 이렇게 무너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했고, "제대로 다시 짓지 않으면 소송을 해서라도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또 다른 수분양자는 "단체로 계약 취소 소송을 할 사람이 있느냐"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날 입주예정자모임 임원들은 긴급회의를 열고 붕괴사고가 난 동뿐만 아니라 1~2단지 전체 동에 대한 철거 후 재시공을 요구하는 공문을 시행사에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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