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입금된 코인 100억, 맘대로 썼는데…대법 판결 '충격' [더오래]

중앙일보

입력 2022.01.12 13:00

업데이트 2022.01.12 13:33

[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49)

비트코인이 최고가를 경신한 후 수차례 폭락과 폭등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의 시장거래가가 뉴스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것도 더는 놀랄 일이 아닙니다. 다만 암호화폐의 극심한 가격 변동성으로 인해 개인투자자가 피해를 보는 일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 와중에 지난해 3월 25일 시행된 개정 특정금융정보법은 암호화폐를 포함한 ‘가상자산’을 최초로 정의했고, 암호화폐 거래소와 같은 가상자산사업자에게 2021년 9월 25일 전까지 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을 획득하고 실명 확인이 가능한 입출금 계좌를 통해서만 거래하도록 강제했습니다. 사실상 암호화폐가 제도권 내로 편입됐다고 봐야 할 듯 보입니다.

이렇듯 가상자산은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왔지만 아직은 투자자 보호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가격 변동성까지 워낙 크다 보니, 가상자산를 둘러싼 분쟁 또한 적지 않은데요. 추가로 연구하거나 정비해야 할 제도가 많고, 대법원의 판례까지 나온 사건은 많지 않았습니다만 가상자산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판례와 실무는 점차 정립되어 가는 추세입니다.

법령상 몰수할 수 있는 은닉재산은, ‘몰수⋅추징의 판결이 확정된 자가 은닉한 현금, 예금, 주식, 그 밖에 재산적 가치가 있는 유형⋅무형의 재산’이다. 문제는 비트코인이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의 재산’인지 여부이다. [사진 pxhere]

법령상 몰수할 수 있는 은닉재산은, ‘몰수⋅추징의 판결이 확정된 자가 은닉한 현금, 예금, 주식, 그 밖에 재산적 가치가 있는 유형⋅무형의 재산’이다. 문제는 비트코인이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의 재산’인지 여부이다. [사진 pxhere]

2018년에는 비트코인을 형법상 몰수할 수 있는지가 문제 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범죄자가 음란물 유포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광고를 원하는 광고주로부터 받은 비트코인을 몰수할 수 있는지 관심을 모았는데요. 범죄수익은닉규제법령상 몰수할 수 있는 은닉재산은 ‘몰수⋅추징의 판결이 확정된 자가 은닉한 현금, 예금, 주식, 그 밖에 재산적 가치가 있는 유형⋅무형의 재산’입니다. 문제는 비트코인이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의 재산’인지 여부였습니다. 대법원은 비트코인을 몰수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대법원 2018. 5. 30 선고 2018도3619 판결). 물론 비트코인 거래가 활성화하고 가격도 훨씬 오른 현시점에서는 오히려 비트코인의 재산적 가치를 부인하는 것이 이상해 보이긴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상당히 논란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얼마 전 N번방 사건의 범인인 조주빈이 벌어들인 이더리움 또한 몰수되었습니다.

법률상 가상자산의 재산적 가치가 인정된 이상, 남을 속여 가상자산을 취득한 경우 사기죄가 성립됩니다. 암호화폐 열풍으로 이름조차 생소한 각종 코인이 연이어 공개 발행될 무렵, 신생 코인의 대가로 투자자들로부터 이더리움을 받았다가 코인이 문제가 되자 사기죄로 고소당한 경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도 투자자로부터 받은 이더리움을 재산상의 이익으로 보고 사기죄로 처리하고 있고, 대법원 또한 비트코인에 대해 ‘경제적인 가치를 디지털로 표상하여 전자적으로 이전, 저장과 거래가 가능하도록 한 가상자산의 일종으로 사기죄의 객체인 재산상 이익에 해당한다’고 명시적으로 판단하였습니다(대법원 2021. 11. 11 선고 2021도9855 판결).

가상자산도 일반적인 물건처럼 강제로 집행할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우리 민사법상에는 가상자산 자체를 압류할 수 있는 근거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A가 B에게 비트코인을 빌려주고, B가 비트코인을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개인 전자지갑에 보관했다고 봅시다. 이때 A가 B를 상대로 재판에서 이겼다 해도 B의 전자지갑 내에 비트코인을 처분할 수 없습니다. 민법상 비트코인은 형체가 없는 가상의 화폐로서 지폐나 동전처럼 일정한 형체가 있는 유체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거래소에 보관된 비트코인의 경우에는, B가 거래소에 청구할 수 있는 반환청구권을 집행해 비트코인을 받아올 수는 있습니다. 실제로 법원 실무도 거래소에 보관된 가상자산에 대한 (갑)압류 신청은 받아주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최근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의 거래소 가상지갑으로 이체받아 보관하고 있던 비트코인 200개를 자신의 다른 계정으로 임의로 이체하면서 문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착오 송금’의 경우와 유사한데요. 대법원은 자신의 은행 계좌에 착오로 송금한 돈을 사용·처분한 경우 횡령죄를 인정한 적이 있었고(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891 판결 등), 다만 2심까지는 이와 동일한 취지에서 A씨에게 배임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가상자산은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왔지만 아직은 투자자 보호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가격 변동성까지 워낙 크다 보니, 가상자산를 둘러싼 분쟁 또한 적지 않다. [사진 pixabay]

가상자산은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왔지만 아직은 투자자 보호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가격 변동성까지 워낙 크다 보니, 가상자산를 둘러싼 분쟁 또한 적지 않다. [사진 pixabay]

하지만 대법원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대법원 2021. 12. 16 선고 2020도9789 판결). 대법원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은 재산상의 이익에는 해당하지만, 법률에 따라 법정화폐에 준하는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거래에 위험이 수반되므로, 형법까지 적용하면서 법정화폐와 동일하게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정책적인 판단을 덧붙였습니다. A씨가 받은 비트코인 200개를 1 코인당 5000만 원으로만 치더라도 무려 100억 원입니다. 한마디로 돈벼락을 맞은 것이지요. 물론 A씨가 형사적으로 무죄라도 민사적 책임까지 면제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A씨가 거래소에 보관된 비트코인을 현금화해 써버렸거나 개인 지갑에 이체해 놓았다면 거래소 입장에서도 위 비트코인을 압류할 수 없고 답답한 상황이겠지요.

만약 A씨에게 이체된 비트코인이 원래는 B씨의 것이었는데 B씨가 요청하지도 않은 오거래로 A씨에게 잘못 이체된 것이라면 거래소는 B씨에게 손해배상을 해줘야 할 겁니다. 문제는 어떻게 손해배상을 해야 할 것인지입니다. 최근 실제로 이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B씨는 2018년 11월 자신의 계정 잔고에 표시된 5.03개 비트코인을 빗썸에서 다른 거래소로 송금하기 위해 주소록에 저장된 주소로 출금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B씨가 요청하지 않은 다른 주소로 출금됐고, 거래소는 B씨에게 이메일을 통해 다른 주소에 대한 출금 요청이 등록됐고 출금이 완료됐다고 통보했습니다. 이후 거래소 측은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안내하기도 했지만, 결국 배상방법을 놓고 의견이 엇갈렸고, A씨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문제는 오출금 당시 비트코인 시세는 510만 원 정도였는데, 재판이 2심 재판 끝날 될 당시인 2021년 10월에는 이미 5000만 원을 넘겼다는 겁니다. 1심은 오출금 무렵의 시가인 1억 원만 지급할 것을 판결했지만, 2심은 비트코인 자체를 원물로 반환하고 그것이 어렵다면 변론종결일의 시가인 5000만 원 이상을 지급할 것으로 판결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1. 12. 8. 선고 2021나2010775). 아이러니하게도 거래소로부터 비트코인을 원물로 돌려받을 때까지 강제로 ‘존버(힘들게 버팀을 뜻하는 속어)’할 수밖에 없었던 B씨 입장에서 오출금이 오히려 행운이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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