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큰손’ 장영자 출소 편지 "전두환 정권 희생양, 재심 신청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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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군사 반란자들 간 권력 쟁취의 산물’

‘단군 이래 최대 사기 사건’으로 불린 1982년 장영자‧이철희 부부의 6400억원대 어음 사기 사건에 대해, 사건 당사자이자 원조 ‘큰손’ 장영자(78)씨는 이렇게 정의했다. 장씨가 지난 9일 4번째 사기 혐의 수감에서 출소하며 ‘장영자의 출소의 변’이라는 제목의 8쪽 분량의 자필 편지를 중앙일보에 전해 왔다.

‘단군 이래 최대 사기 사건’으로 불린 6400억원대 어음 사기 사건의 장본인 장영자씨가 지난 9일 청주여자교도소를 출소하고 있다. 중앙포토

‘단군 이래 최대 사기 사건’으로 불린 6400억원대 어음 사기 사건의 장본인 장영자씨가 지난 9일 청주여자교도소를 출소하고 있다. 중앙포토

장씨는 편지에서 “이철희‧장영자 사건은 전두환‧노태우 하나회 그룹과 허삼수‧허화평 등의 보안사 세력 간 권력 투쟁의 과정에서 전두환이 처 이순자가 제공한 단초로 인해 현실 같지 않은 사건으로 비화됐다”라고 주장했다.

“하나회 권력 내놓게 하려 한 술수의 산물”

당시 영부인 이순자 여사의 작은 아버지 이규광씨가 이 사건에 연루되자 실세였던 두 허씨는 대통령 친인척의 공직 사퇴를 건의했다. 장씨는 이규광 씨의 처제였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은 이때를 기점으로 두 허씨를 5공화국 핵심에서 배제했다. 결국 그해 12월 둘은 청와대를 떠났다. 두 허씨는 전 전 대통령이 수장이던 군내 사조직 하나회의 멤버이면서 전 전 대통령의 ‘보안사 핵심 참모 5인방’에 속하기도 했다.

장씨는 “허삼수 일당의 전략은 전두환과 사돈이 되는 장영자‧이철희 부부를 마치 전두환 부부와 모종의 결탁이 있는 권력형 비리를 한 것으로 여론몰이하며 전두환 대통령을 압박해 하나회가 독식한 권력을 내놓게 하려는 천인공노할 술수의 산물”이라고 했다.

이어 “어음 사기라는 실체 없는 허수를 잔뜩 부풀려 몇천억원이라는 건국 이래 최대 어음 사기 사건으로 언론이 떠들게 해 일어난 여론을 무기 삼아 벌인 허삼수 일당의 권력투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사건이 이철희‧장영자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장씨 부부는 1982년 5월 이 사건으로 구속됐고 이듬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92년 3월 가석방됐으나 1994년 1월 140억원 규모의 차용 사기 사건으로 다시 구속되는 등 2018년 1월 구속을 마지막으로 네 차례에 걸쳐 구속 수감됐다.

어음 사기에 연루된 장영자씨가 1차 공판에 출두한 모습. 중앙포토

어음 사기에 연루된 장영자씨가 1차 공판에 출두한 모습. 중앙포토

“재심 신청…우리 부부 명예 회복할 것”

30대 후반에 처음 수감 생활을 한 이후 77세에 네 번째 석방이 된 장씨는 ‘큰 손’ 낙인을 갖게 된 40년전 사건에 대한 재심 의사를 밝혔다. 그는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해도 팩트는 변하지 않고 압도적인 증거와 증거물로 이제 재심을 시작할 것을 천명한다”이라고 적었다.

장씨는 어음 사기 사건뿐 아니라 자신을 감옥으로 이끈 다른 세 건의 사건에 대해서도 재심 신청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쿠데타 식으로 금융실명제를 실시한 김영삼 정권에서 1992년 가석방이 취소되고 자동 구속된 사건, 2000년 김대중 정권에서 이희호 여사의 지시로 신승남 당시 대검 차장이 총대를 메고 김대중 대통령이 특사로 해준 형집행정지를 취소해 자동구속된 사건, 적폐청산 기수인 윤석열 검찰에 의해 2018년 1월 구속된 사건을 동시에 재심을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큰손'으로 불렸던 장영자 씨가 배드민턴을 치는 모습. 중앙포토

'큰손'으로 불렸던 장영자 씨가 배드민턴을 치는 모습. 중앙포토

장씨는 “길고 길었던 어둠의 옥중 세월에서 깨닫게 된 진실은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한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다는 것”이라고 했다.

전직 국회의원,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낸 남편 이철희 씨(2014년 사망)에 대해 장씨는 “8‧15 광복이후 황무지와 다름아니었던 대한민국 안보 전선에 첩보 체계의 기틀을 마련한 자타가 공인한 전설”이라고 했다.

그는 “국가 안보 전선을 지켜온 남편 이철희의 명예와 그가 살아온 삶의 권위와 훼손된 품위를 회복케 하는 것이 지금 내가 살아있는 존재의 이유”라고 썼다. 이어 “우리 부부의 명예가 회복되는 날 정상인으로서 국민 여러분을 향한 진정한 속죄가 시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장영자의 출소의 변’ 편지 원본. 본인 제공

중앙일보가 입수한 ‘장영자의 출소의 변’ 편지 원본.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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