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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처럼 쫄딱 망할 수 있다” 한국 반도체 위기론의 근거

중앙일보

입력

“반도체 격변기에 우리가 앞서 나가지 못하면 앞으로 10~20년, 늦어도 30년 안에는 일본처럼 쫄딱 망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이병훈 포스텍 전자전기공학과 교수)

“대전환의 시대에 기술 패권이 결국 국가의 장래를 결정한다.”(유지범 나노기술연구협의회 회장)

11일 열린 ‘나노·반도체 종합연구소 설립 타당성 검토 산·학·연 토론회’에서 이 같이 한국 반도체 ‘위기론’이 불거졌다.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공급망 불안이 가중되고, 주요 국가가 대대적인 반도체 투자로 기술 선점에 나서면서 한국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서밋에서 반도체 핵심 소재인 웨이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서밋에서 반도체 핵심 소재인 웨이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게다가 반도체 공급의 기초 단계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는 일본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형곤 대외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한국이 반도체 소재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곳은 일본(38.5%)으로 중국(20.5%)보다 높았다. 반도체 소부장 중 국가별 의존도 역시 일본(40.7%)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형곤 연구위원은 “반도체 산업은 기술장벽이 높고, 일부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단기간에 점유율을 변화시키기 어렵다”며 “소재 역시 자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데 원천 기술 의존도가 높아 오랜 과제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책 반도체 전문 연구소가 부재하고, 인력 공급이 부족하며 연구개발(R&D) 인프라가 약하고 원천 기술이 취약하다는 게 국내 반도체의 취약점”이라고 지적했다.

채명식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은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정 기술은 보유했지만 설계 기술은 미흡하다”며 “미국 대비 기술 수준은 80%, 기술 격차는 1.7년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산업 수요 대비 인력이 양적 질적으로 부족해 중소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업체)는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이 미적대는 사이 미국과 중국은 정부 주도로 ‘기초 체력’을 다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미국 혁신 경쟁법에 따라 반도체 산업에만 520억 달러(약 62조원)를 투입한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반도체 굴기(崛起)’를 추진 중이다.

11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나노ㆍ반도체종합연구소 설립타당성 검토 산학연 토론회'에 참석한 산학연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11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 '나노ㆍ반도체종합연구소 설립타당성 검토 산학연 토론회'에 참석한 산학연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전문가들은 국가 주도의 종합적인 인력 양성·연구개발 기관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병훈 교수는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선점하는 국가가 미래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며 “반도체 기술은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국가 간 경쟁, 나아가선 국가연합 간의 경쟁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나노·반도체 종합연구소 설립을 통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분산된 인적 자원과 인프라를 국가 차원에서 새롭게 구조화하고 단계별 R&D를 통해 반도체 전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교수)은 “기업의 기술 수준이 앞서나가다 보니 연구소와 대학에 인력 양성만을 바란다”며 “R&D 없는 인력 양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기업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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