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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돈없어 30대 딸·아들 당뇨·비만약도 중단, 탈모가 왜 먼저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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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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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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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이예순(62)씨 가족은 당뇨병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날 처지다. 본인, 딸(34), 아들(32)이 당뇨병 환자이다. 이씨는 30년 전에, 딸은 15세에, 아들은 5년 전에 당뇨병에 걸렸다. 남편(67)만 아니다. 이씨와 자녀들의 공통점은 비만이다. 자제하지 못하는 병적 식욕이 비만을 불러왔다. 딸은 중학생 시절부터, 아들은 20대 중반부터 무섭게 살이 쪘다. 딸은 키 150㎝에 몸무게 120㎏, 아들은 178㎝에 115㎏이다. 체질량지수(BMI, 키의 제곱으로 몸무게를 나눈 값)가 각각 53, 36으로 초고도비만(35 이상)이다.

이씨는 “둘 다 뚱뚱하다 보니 정규직으로 들어갈 수 없어 계약직과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고 말한다. 딸은 대학병원의 1년 계약직이 된 후 유니폼을 큰 사이즈로 수선해서 입었다. 아들은 공장 밤일자리를 얻어 밤낮이 바뀐 생활을 했고, 불규칙한 식사로 인해 살이 더 쪘다. 그나마 딸은 10년 전 위 절제수술을 받고 살이 크게 빠졌고 당뇨병이 좋아졌다. 하지만 병적인 식욕이 되살아났고, 먹고 토하기를 반복했다. 지난해 재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비만약(식욕억제제)을 함께 먹으면서 살이 빠졌고, 당뇨병도 호전됐다. 이씨는 아들에게도 같은 약을 먹였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살이 빠지고 혈당 수치가 거의 정상에 가깝게 떨어졌다.

2030 청장년 당뇨병 환자 급증
취업난·투잡으로 생활습관 엉망
당뇨병 환자 3명 가족의 하소연
“혈당측정기·비만약 건보 더 급해”

하지만 이씨는 아들의 약을 포기했다. 석 달 치 약값이 120만원(당뇨약 일부 포함)이 넘었다. 비만약이 건강보험이 안 된다. 남편의 노동일 수입으로 집세·병원비·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카드 돌려막기를 하다 아들 약을 끊었다. 아들의 당화혈색소 수치가 10.7%(6.5%가 기준)로 치솟았다. 이씨는 “탈모 건보가 문제가 아니다. 혈당측정기는 비싸서 쓸 엄두를 못 낸다”며 “당뇨약과 비만약부터 건보를 적용해야 한다. 이게 제일 급하지 않으냐”고 하소연한다. 이씨는 “속 터진다”며 한숨을 쉬었다.

당뇨병 환자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당뇨병 환자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30 청장년 세대의 당뇨병이 급증하고 있다. 1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0년 20대 당뇨병 진료 환자는 3만5005명으로 2016년보다 47.1% 증가했다. 80세 이상(52.5% 증가)에 이어 증가율이 가파르다. 같은 기간 30대도 25.5% 증가했다. 40대(12.5%), 50대(15.3%)보다 높다.

20대에 걸리면 40대 합병증 우려

당뇨병은 60대, 50대가 많이 앓는 중년 질환이다. 동국대 일산병원 오상우 가정의학과 교수는 “당뇨병은 평생 간다. 20대에 걸리면 평생 약 먹고 조절하며 살아야 하고, 합병증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조영민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최근 20대 당뇨병 환자가 크게 증가하는데, 비만에다 덜 움직이고 운동을 덜 하고, 스트레스가 커진 게 원인”이라며 “20대 당뇨병 환자는 다른 연령대보다 병의 진행이 빠르다. 인슐린을 써야 하는 시기가 빨리 온다. 그러면 40대 초반에 합병증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취업난 스트레스, 야간 알바, 투잡(두 개 알바) 등으로 20, 30대가 생활습관을 관리할 시간이 없다. 이런 불안정한 생활이 비만으로, 당뇨병으로 이어지고, 당뇨병에 걸려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병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당뇨병 환자 중 비만 비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당뇨병 환자 중 비만 비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당뇨병 합병증은 무섭다. 발가락 등의 하지 절단까지 발병 후 14년 6개월 걸린다. 당뇨환자 1만명 중 433명이 협심증·심근경색 등에 걸린다.

11일 서울성모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 순환기내과 추은호 교수, 인천성모병원 심장혈관내과 최익준 교수팀이 심혈관 중재시술(PCI)을 시행한 급성심근경색(AMI) 환자 1만719명을 분석했더니 38%가 당뇨병 환자였다. 실명으로 이어지는 망막 질환, 신장병도 문제다. 부산 동구 범일연세내과 이동형(투석전문의) 원장은 “당뇨병에 걸린 지 25년 넘으면 신장합병증이 온다”며 “말기 신장병 환자의 절반이 당뇨 때문이다. 투석하거나 장기이식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만약 석 달에 50만원

비만율 변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비만율 변화.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국당뇨협회에 따르면 연속혈당측정기(실시간 측정기)와 혈당측정검사지에 건보가 안 돼 각각 월 20만원, 1만5000원가량을 부담해야 한다. 비만약은 석 달에 50만원 든다. 대한당뇨병학회의 ‘팩트시트 2020’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의 53.2%가 비만 환자이다. 2016년(48.6%)보다 4.6%포인트 늘었다. 비만은 위 절제술만 건보가 된다. 고도비만(BMI 30이상)이면서 당뇨병·고혈압 등을 앓거나 초고도비만(BMI 35 이상)만 해당한다. 대한당뇨병학회 원규장 이사장(영남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탈모 못지않게 당뇨병·비만약 건보가 급하다. 고도비만 환자부터 비만약 건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상우 교수는 “20, 30대 당뇨병 환자 관리는 탈모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건보 우선순위, 재정 원칙, 형평성 등을 고려하면 탈모 치료에 건보를 먼저 적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의료적으로 필요성이 높은 병에 먼저 건보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당뇨협회 진행근 부회장은 “젊은 당뇨병 환자의 병세가 악화하지 않게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 당뇨병 환자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