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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정완 논설위원이 간다

대선 공약으로 추진된 ‘정치공항’…제2의 무안공항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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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새만금 신공항 건설 강행 논란 

이용객이 적어 만성적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군산공항의 외관. 정부는 군산공항 바로 옆에 8000억 원을 들여 새만금 신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주정완 기자

이용객이 적어 만성적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군산공항의 외관. 정부는 군산공항 바로 옆에 8000억 원을 들여 새만금 신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주정완 기자

지난 7일 오전 11시40분쯤 전북 군산공항 여객터미널. 오전 두 번째 비행기가 떠난 뒤 공항 안은 적막한 모습이었다. 한국공항공사가 운영하는 종합안내센터에는 아무도 없는 빈 의자만 놓여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간이매점 겸 커피숍이 있었지만 손님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공항 안은 조명을 줄인 탓에 한낮인데도 어두침침했다. 이용객이 적은 상황에서 전기요금을 아끼려는 노력으로 보였다. 공항 밖에 대기하는 택시는 한 대도 없었다. 버스 안내문을 보니 배차 간격은 1~2시간으로 긴 편이었다. 그나마 일부 버스 노선은 운행을 중단했다.

현재 군산공항에선 하루 네 번씩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 저비용항공사(LCC)인 제주항공과 진에어가 운영하는 군산~제주 노선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검색하니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좌석은 여유 있는 상황이었다. 주말 항공권 요금은 편도 2만원대에 불과했다. 그만큼 승객이 없어 요금 할인을 많이 해준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 전북공약, 예타 면제
무안공항 1시간반 거리에 신공항

연 85만 수요 예측 ‘뻥튀기’ 논란
환경영향평가 두 차례 보완 통보

찬성 측 “이동권 보장, 물류 거점”
반대 측 “예산 낭비, 갯벌 파괴”

이렇게 기존 공항 시설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8000억원을 들여 신공항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군산공항 바로 옆에 지으려고 하는 ‘새만금 신공항’이다. 201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가 지역공약의 하나로 제시했다. 정부는 2019년 1월 국무회의에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는 23개 사업에 새만금 신공항을 포함했다.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하기 전에 경제성이 있는지, 없는지 따져보는 절차(예비타당성 조사)를 생략하겠다는 의미다.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낸다는 장점은 있지만 지역 민원을 내세워 경제성이 낮은 사업을 무분별하게 추진할 우려가 있는 방식이다.

비용 대비 편익 분석 0.479에 불과

신공항 예정부지에 속한 수라갯벌에 바닷물이 들어온 모습. 신공항 찬성 측은 밀물과 썰물이 없기 때문에 갯벌이 아니라고 본다.

신공항 예정부지에 속한 수라갯벌에 바닷물이 들어온 모습. 신공항 찬성 측은 밀물과 썰물이 없기 때문에 갯벌이 아니라고 본다.

경제성으로만 따지면 새만금 신공항은 대규모 적자가 뻔히 예상되는 사업이다. 국토교통부는 2019년 6월 ‘새만금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아주대 산학협력단과 ㈜유신이 국토부에 제출한 용역보고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새만금 신공항의 비용 대비 편익 분석(B/C)은 0.479에 그쳤다. 예컨대 사업비로 1000억원을 투입했을 때 사회적으로 돌아오는 편익은 479억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통상 B/C가 1을 넘어야 사회적 편익이 비용보다 많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만하다고 본다. 그동안 국토부가 추진해온 신공항 사업 중 제주2공항은 B/C가 1.23, 흑산도 소형공항은 4.38이었다. 신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단체들은 새만금 신공항의 B/C가 0.479라는 것조차 과장됐다고 본다. 항공 수요조사부터 다시 해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 공동행동의 김지은 공동집행위원장(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은 “0.479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에 조사한 수치”라며 “그동안 변화한 상황을 고려해 다시 새만금 신공항의 비용편익을 분석하면 더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용역보고서는 2058년 기준으로 국제선(38만7000명)과 국내선(46만 명)을 포함해 84만7000명이 새만금 신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군산공항 이용객 수는 28만 명이었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30만6000명)과 비교하면 9%가량 줄었다. 용역보고서는 2058년 항공 여객수요가 2019년보다 50만 명 이상 증가한다는 가정을 담았다.

전북도는 경제성보다는 균형발전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대성 전북도 공항하천과 주무관은 “적자공항이 군산에만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전북 도민의 이동권 확보를 위한 공공재라는 시각에서 신공항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수라갯벌 보존해야” VS “갯벌 아닌 갈대밭”

주변 습지에 억새·갈대 등이 자라는 모습.

주변 습지에 억새·갈대 등이 자라는 모습.

현재 새만금 신공항 사업의 추진은 벽에 부딪쳐 있다. 환경부의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아직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공항 사업이 주변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지 점검하는 과정이다. 환경단체들은 신공항 예정부지에 속한 수라갯벌의 생태계 파괴 우려를 가장 큰 문제로 들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환경영향평가서를 보완하라고 국토부에 통보했다.

지난 7일 한승우 전북녹색연합 새만금살리기위원장의 안내를 받아 현장을 찾아갔다. 소금기 있는 땅에서 자라는 염생식물, 잎이 뾰족한 사초류 군락이 누렇게 변한 억새·갈대 등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뤘다. 겨울이라 물이 많지는 않았지만 군데군데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습지가 형성돼 있었다. 서쪽으로 한 시간쯤 걸어가자 얕은 바닷물에 잠겨있는 곳이 나왔다. 새만금을 남북으로 잇는 교각을 통해 바닷물이 들어오면서 예전 갯벌의 모습이 남았다고 한다. 멸종위기 1급 야생동물인 수달의 발자국도 볼 수 있었다.

한때 서울 여의도 면적의 100배가 넘었던 새만금 갯벌에선 이제 수라갯벌만 남았다고 환경단체들은 설명한다. 멸종위기 1급인 저어새를 비롯해 황새·흰발농게·금개구리 등 30여 종의 법정보호종이 있는 생태계의 보고라고 평가한다.

전북도는 수라갯벌이 이미 법적으로 갯벌의 지위를 상실한 곳이라는 입장이다. 법적으로 갯벌로 인정받으려면 밀물과 썰물이 있어야 하는데 새만금 방조제 건설 이후 이런 갯벌은 모두 사라졌다는 얘기다. 이 주무관은 “수라갯벌이라고 부르는 곳은 조수간만(밀물과 썰물)이 없는 갈대밭일 뿐”이라고 말했다.

반면 환경단체들은 수라갯벌의 보존 가치를 지난해 7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한 ‘한국의 갯벌’과 연계해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는 충남 서천갯벌과 전북 고창갯벌 등 다섯 곳이 올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갯벌은 멸종위기 철새들의 기착지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신공항 부지인 수라갯벌은 서천갯벌에서 고창갯벌로 이동하는 멸종위기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로서 역할을 하는 곳”이라며 “이런 중간 기착지가 사라지면 철새들의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활주로 짧아 장거리 국제선 운행 불가

전북 경제계에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편다. 전주상공회의소와 전북경영자총협회 등은 지난해 새만금 신공항 조기건설 추진연합을 결성했다. 추진연합은 성명서에서 “신공항은 새만금과 전북 발전을 위한 필수 기반시설”이라며 “글로벌 무역의 시대에 공항 없는 물류 거점은 성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김동창 전북경총 상임부회장은 “전북은 전국에서 최악의 교통 오지로 강원도보다도 교통 사정이 나쁘다. 철도·공항 같은 기반시설은 경제성을 떠나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공항 부지의 환경 문제에 대해선 “이미 갯벌로서 역할을 상실해 거의 육지나 마찬가지”라며 “부산 가덕도공항처럼 산을 깎을 필요도 없고 투자비도 훨씬 적게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신공항 반대 측은 구조적으로 물류 거점공항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애초에 활주로 길이가 짧아 대형 항공기를 띄울 수 없는 공항이란 지적이다. 국토부는 신공항 활주로 길이로 2500m를 제시했다. 전남 무안공항(2800m)이나 충북 청주공항(2744m)은 물론 기존 군산공항 활주로(2745m)보다도 짧다. 이 정도 활주로에선 C급 항공기만 띄울 수 있기 때문에 미주나 유럽행 국제선은 운행할 수 없다.

지방 공항의 적자는 이미 심각한 문제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기준으로 한국공항공사가 운영하는 전국 14개 공항 가운데 영업이익에서 흑자를 낸 곳은 김포·김해·제주·대구공항의 네 곳뿐이다. 군산공항을 포함한 나머지 10곳은 만성적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한 ‘표퓰리즘(표+포퓰리즘) 정치공항’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항공 수요조사와 경제성을 부풀려 일단 짓고 보자는 식으로 밀어붙인 결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정치공항의 대표적인 곳이 무안공항이다. 한때 텅 빈 활주로에서 인근 주민들이 고추를 말리는 모습이 알려지면서 ‘고추 말리는 공항’이란 오명을 얻었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무안공항에서 뜨고 내린 항공편은 88편, 여객 수는 7500여 명에 그쳤다. 공항 건설을 위한 타당성 조사에서 연간 이용객 수를 878만 명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새만금 신공항은 예비타당성 조사마저 생략했기 때문에 ‘제2의 무안공항’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현재 군산공항에서 무안공항까지는 자동차로 약 1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공항을 짓기 전에 예상 소비자를 철저히 분석하고 연계 교통편을 면밀히 계획해야 한다. 공항만 있으면 지역이 활성화할 것이라고 보는 건 잘못”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