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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커진 명품 소비에…백화점 VIP, 2억 써도 탈락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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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현대백화점의 2030 VIP 전용 라운지. [사진 각 사]

현대백화점의 2030 VIP 전용 라운지. [사진 각 사]

“올해는 탈락할 것 같아요.”

백화점 최상위 우수고객(VIP) 회원은 이맘때면 초조해진다. 지난해 백화점에서 얼마를 썼는지에 따라 VIP 등급이 다시 정해지기 때문이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약 4000만~5000만원을 더 소비해야 안정적으로 최상위 등급에 속할 전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보복 소비’로 명품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백화점마다 사상 최대 실적을 냈기 때문이다.

1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백화점의 VIP 등급 중에서 가장 높은 ‘트리니티’의 구매 실적은 1억원 후반대에서 2억3000만~2억4000만원으로 약 20%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리니티는 상대 평가제다. 백화점에서 소비를 많이 한 회원의 내림차순에서 상위 999명에게만 부여하기 때문에 매년 금액 하한선이 다르다. 이 때문에 연초마다 눈치 싸움이 벌어진다. 실적 합산의 마지막 월인 1월 담당 직원에게 등급 컷을 문의하고, 막판 스퍼트를 내는 경우도 있다.

롯데백화점의 ‘에비뉴엘’회원 전용 공간. [사진 각 사]

롯데백화점의 ‘에비뉴엘’회원 전용 공간. [사진 각 사]

롯데백화점의 우수고객(MVG) 제도에서 가장 높은 등급은 ‘에비뉴엘’과 ‘레니스’다. 레니스는 연간 1억원 이상으로 금액 조건이 명시돼있지만, 에비뉴엘의 선정 기준은 비공개다. 올해 초부터 롯데 MVG 회원 사이에서는 에비뉴엘 등급 기준이 2억원을 훌쩍 넘었다고 알려졌다.

현대백화점은 최우수 등급에 해당하는 ‘쟈스민블랙’을 연간 1억2000만원 이상 구매 고객으로 한정해 내년부터 적용한다고 밝혔다. 올해까지는 구매 이력이 연간 8000만~9000만원 이상인 고객이 쟈스민블랙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기준 금액이 30%가량 오르지만 실질적으로 부담이 커지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자사 카드가 아니면 실적의 5분의 1만 인정되는 등 제약이 많았지만 올해부터 결제수단에 상관없이 VIP 실적에 반영된다.

갤러리아백화점 대전 타임월드점의 VIP 라운지. [사진 각 사]

갤러리아백화점 대전 타임월드점의 VIP 라운지. [사진 각 사]

VIP 고객은 백화점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친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국내 백화점에서 VIP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신세계와 현대백화점이 약 32% 달한다. 롯데백화점은 27% 남짓이다. 올해 연 매출 1조원를 넘기며 백화점 ‘1조 클럽’에 들어간 갤러리아 명품관의 경우 연간 2000만원 이상 VIP 매출 비중이 명품관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백화점 최상위 VIP는 별도의 라운지를 이용하는 것은 물론 퍼스널 쇼핑(고객의 취향을 고려해 쇼핑을 도와주는 서비스), 명절 선물, 콘서트 등 문화공연, 할인, 발렛파킹(대리주차 서비스) 등의 각종 혜택이 제공된다. 단계가 높을수록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연간 백화점에서 1억원을 넘게 소비하는 고객이라면 최상위 등급 커트라인과 혜택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특히 백화점 최상위 소비자의 특징이 변하면서 VIP 운영 방침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 연예인이나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에 40대 이상이 많았다면 최근엔 유튜버나 일타 강사, 온라인 쇼핑몰 운영자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젊은 층의 비중도 급증했다. 백화점 명품 매출에서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신세계가 48.2%로 가장 높고, 롯데 45%, 현대 44.7%의 순서로 나타났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해외여행이 막히면서 나를 위한 명품 소비를 늘리다 보니 VIP 조건에 근접해진 소비자가 많아졌고, 이들도 한 번쯤은 최상위 등급에 속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기존 VIP 회원들 역시 그동안 누리던 혜택을 놓치고 싶을리가 없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구매 실적을 채우려 들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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