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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파워’ 공공노조…‘조직력·경영 참여’ 양손에 쥐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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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근로자 대표가 공공기관 이사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담은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이 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시행 시기는 법 공포일로부터 6개월 이후로, 올해 하반기부터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등 131개 공공기관은 근로자 대표의 추천이나 동의를 받은 비상임 이사 1명을 이사회에 선임해야 한다. 그는 이사회에서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임기는 2년이며, 이후 1년 단위로 연임이 가능하다.

한국에서 공공부문 노조의 힘은 막강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민간부문 노조조직률은 11.3%에 불과하다. 하지만 공공부문은 69.3%에 달한다. 공무원 노조조직률도 88.5%다. 노동운동의 중심에 공공부문이 있음을 짐작게 하는 통계다. 막강한 조직력으로 투쟁을 통한 협상력의 우위에 있던 공공부문 노조가 이젠 경영상 결정을 내리는 이사회까지 진출하게 됐다.

노동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노총은 “공공부문 노동이사제는 노사 간 갈등을 줄이고 사회적 비용도 줄어드는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며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선과 사회적 가치 실현이라는 ‘진짜 공공기관 개혁’을 견인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도 “노동이사제가 노사가 공동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구조적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노사 협상을 넘어 경영 관련 공동 결정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노동계는 수년 전부터 노동이사제에 목을 맸다. 경영에 직접 참여해 노동자의 권익을 챙기겠다고 했다. 노동자는 ‘기업의 이해 관계자’라는 논리를 내세우면서다. 이 주장대로라면 지역 주민이나 소비자 등 이해 관계자가 줄줄이 이사진에 포진해야 한다.

반면 재계는 그간 계속해서 노동이사제 도입을 반대해 왔지만 결국 국회가 기업 요구를 묵살한 것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한 유사 법안이 이미 발의된 상황에서 공공부문의 법안 통과가 일반기업으로까지 확산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한 5개 경제단체는 “갈등적 노사관계 환경에서 공공부문의 노동이사제 도입은 노사관계 힘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공공기관의 방만한 운영과 도덕적 해이가 더욱 조장될 것”이라며 “민간기업에까지 확대될 경우 이사회 기능을 왜곡시키고 경영상 의사결정의 신속성을 저하하는 등 경쟁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영은 급변하는 환경에 즉각 대응해야 기업을 살리고 성장할 수 있다. 경영계가 특히 걱정하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이사회가 임금인상과 같은 근로조건 개선에만 몰두하는 또 다른 노사 협상장으로 변질하지 않을까, 중요한 경영상 결정을 해야 하는 이사회마저 노조에 휘둘릴까 우려한다.

학계도 경영계와 같은 걱정을 한다. 지난해 5월 전국 4년제 대학 경제·경영학과 교수 200명을 대상으로 인식조사를 한 결과 61.5%가 ‘노동이사제가 민간기업에 적용되면 경쟁력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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