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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 자율주행차 달린다는데…“기술 검증 어렵고 인프라도 미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현대기아차가 공개한 자율주차 콘셉트 영상 이미지. [사진 현대기아차]

현대기아차가 공개한 자율주차 콘셉트 영상 이미지. [사진 현대기아차]

“올해 양산하는 차종의 ‘자율주행 레벨3’ 기술은 차질 없이 준비되고 있고, 양산에도 차질이 없을 것이다.”

조성환 현대모비스 사장은 지난해 10월 한국자율주행산업협회 출범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11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연말 출시 예정인 2023년형 G90부터 레벨3을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기능이 ‘고속도로 파일럿’인데, 현대차그룹이 개발 중인 조건부 자율주행 기술이 적용된다.

경기도 화성시 새솔동 인근 도로에서 자율협력주행차가 사각지대 상황을 가정해 운행하고 있다. [뉴스1]

경기도 화성시 새솔동 인근 도로에서 자율협력주행차가 사각지대 상황을 가정해 운행하고 있다. [뉴스1]

제네시스, 연내 레벨3 양산 목표

현대차의 고속도로 파일럿이 주목받는 이유는 지금까지 자율주행을 선언하면서 국내에 등장했던 차량보다 한 차원 수준이 높은 기술이라서다. 미국자동차공학회(SAE)는 자율주행 기술을 0~5단계로 구분한다. 레벨2까지는 운전자는 주행 환경을 좌우한다면, 레벨3부턴 기계 시스템이 차량 운행을 통제한다. 〈그래픽 참조〉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에서 자율주행차 사업을 담당하는 웨이모 등 일부 기업은 레벨4 자율주행 기술을 일부 도로에서 제한적으로 시현한 적이 있다. 현대차 아이오닉5도 지난해 서울모빌리티쇼에서 레벨4 기술 시범 서비스를 선보였다. 하지만 양산 차종은 2단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자율주행 기술 분류. 그래픽 김영옥 기자

자율주행 기술 분류. 그래픽 김영옥 기자

한때 ‘완전자율주행(FSD)’이라는 브랜드명을 앞세웠던 미국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능(오토 파일럿)도 마찬가지다. 오토 파일럿은 모든 운전 상황을 운전자가 통제하는 레벨2다. 윤영한 한국기술교육대 메카트로닉스공학부 교수는 “테슬라가 주장하는 ‘레벨2.5’는 마케팅 용어일 뿐, 기술적으론 레벨2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독일 법원은 테슬라가 주행 보조 기능을 ‘자율주행’으로 허위 과장했다고 판결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같은 사안을 조사 중이다. 이날 사전계약을 시작한 쌍용자동차 코란도 이모션 역시 ‘자율주행 패키지’ 선택이 있지만 기술 수준은 2단계 이하다.

올해부터 레벨3 차종 쏟아져 

올해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레벨3으로 ‘점프’하는 기점이 될 수 있어서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자율주행 기술(드라이브 파일럿)은 지난해 말 세계 최초로 레벨3 수준의 기술승인 규정(UN-R157)을 통과했다. UN-R157은 유엔 유럽경제위원회가 제정한 자동차 관련 국제 기준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 중 세계 최초로 조건부 자율주행 시스템에 대한 국제적 인증을 획득했다. [사진 메르세데스-벤츠]

메르세데스-벤츠는 전 세계 자동차 제조사 중 세계 최초로 조건부 자율주행 시스템에 대한 국제적 인증을 획득했다. [사진 메르세데스-벤츠]

일본 혼다 등 일부 완성차 업체가 자국에서 레벨3 기술을 승인받은 적은 있지만, 유엔 기준을 충족한 건 벤츠가 최초다. 이 규정을 충족한 차량은 운전자 개입 없이 차량 시스템이 특정 환경에서 최고 시속 60㎞ 이내로 주행이 가능하다. 운전자가 스티어링휠에서 몇 초간 손을 떼면 경보음이 울리는 대신, 운전석에서 전화를 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벤츠 측은 “올 상반기 출시 예정인 대형세단 S클래스에 드라이브 파일럿을 최초로 적용하고, 전기차(EQS) 적용도 검토하고 있다”며 “다만 독일 연방자동차운송당국(KBA)에서 조건부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한국 출시 여부는 미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독일 BMW의 대형세단(7시리즈)·전기차(i7)와 미국 포드 링컨의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내비게이터), GM 캐딜락의 크로스오버유틸리티(CUV) 전기차(셀레스틱) 등이 내년까지 레벨3 기능을 선보인다는 목표를 밝혔다.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 전망 그래픽 김주원 기자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 전망 그래픽 김주원 기자

“정책·입법·교통 인프라도 갖춰야” 

자동차 메이커가 신기술을 확보한다고 해서 레벨3 자동차가 도로를 누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자율주행차가 교통법규를 준수하려면 신호등이나 도로교통 정보를 인식해야 한다. 센서·라이다 등이 교통신호 제어기·통신기지국과 정보를 주고받으려면 무선 통신기술도 중요하다. 만약 주행 중 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가 어느 정도 비율로 보상할지도 문제다. 정책·입법적 측면과 교통·환경 인프라, 소비자 수용성까지 사회적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회계·컨설팅 전문기업인 KPMG가 지난해 발표한 자율주행차 도입 준비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 7위 수준이다. 국가 차원에서 자율주행차 표준을 발표한 싱가포르(1위)나 운전자 없는 버스 노선을 신설한 노르웨이(3위) 등이 앞서가고 있다. 한국은 광대역 이동통신 속도나 4세대(4G) 통신망 등 인프라 측면이 상대적으로 우수했다.

자율주행차 도입 준비지수. 그래픽 김영옥 기자

자율주행차 도입 준비지수. 그래픽 김영옥 기자

자율주행차 관련 입법과 제도 정비도 갖춰야 한다. 지난 2020년 자율주행차 상용화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지만 레벨3 상용화 관련 제도는 여전히 미비하다. 이경수 서울대 차량동력학·제어연구실 교수는 “올해 안에 레벨3 자율주행차가 등장하더라도 기술을 검증하는 제도나 시스템이 없는 상황”이라며 “인프라와 연계한 자율주행 시스템 안전성 검증·평가 시스템과 관련 법 제도를 조속히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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