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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김부선 벽화 사고친 그들…"쥴리와 우린 결 다르다" [보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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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말, 영상에선 다 정치 얘기하면서, 그림은 왜 안 돼요?”

[보이스] 닌볼트·탱크시 작가 인터뷰

대선 후보 풍자 벽화로 논란을 낳았던 벽화가 닌볼트(43)와 탱크시(39)는 “그림이 다룰 수 있는 주제가 더 넓어졌으면 한다”며 이렇게 입을 모았다. 두 작가는 지난해 ‘쥴리’ 벽화 논란이 벌어졌던 서울 종로의 한 중고서점 벽면에 나란히 정치적 색채가 강한 벽화를 그려 논쟁에 뜨거운 기름을 부었다. 진보 성향의 닌볼트는 ‘전두환·개·사과’ 벽화를, 보수 성향의 탱크시는 ‘김부선’ 벽화(원제목 ‘찢’)를 각각 그렸다.

진보 성향의 닌볼트(43·왼쪽) 작가와 보수 성향의 탱크시(38) 작가가 지난 6일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진보 성향의 닌볼트(43·왼쪽) 작가와 보수 성향의 탱크시(38) 작가가 지난 6일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닌볼트 작가는 과거 한 언론사에서 그래피티 만평을 그렸다고 한다. 탱크시 작가는 “세상의 부조리를 탱크처럼 부숴버리겠다”며 영국의 가명 작가 ‘뱅크시’과 ‘탱크’를 합성해 작가명을 지었다고 한다. 둘은 왜 대선 후보들의 예민한 논란과 의혹을 벽화로 그렸을까. 지난 6일 닌볼트와 뱅크시를 만났다.

‘쥴리’벽화와 ‘전두환+김부선’ 벽화는 다르다

Q. 벽화 논란의 시작은 ‘쥴리’ 벽화였는데, 어떻게 봤나
닌볼트: 의혹만 갖고 과하게 그렸다. ‘쥴리’ 벽화는 전문 작가 그림이 아니다. 건물주가 의뢰해서 돈 받고 그린 그림이다. 작가의 철학이 아닌 건물주 의도만 담긴 그림이라 회의적으로 봤다. 흑색선전, 진상 같았다.

탱크시: 비방 목적의 선동 벽화라고 봤다. 우리 벽화와 결이 다르다.

지난해 7월 서울 종로구 관철동 종로 12길 한 건물 벽면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인 김건희 씨 비방 벽화가 걸려 논란이 일었다.

지난해 7월 서울 종로구 관철동 종로 12길 한 건물 벽면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 부인 김건희 씨 비방 벽화가 걸려 논란이 일었다.

Q. 두 사람 벽화와 ‘쥴리’ 벽화는 뭐가 다른가.
닌볼트: ‘전두환·개·사과’ 벽화는 상상력을 가미하지 않았다. 의혹만을 담기엔 진실성이 퇴색될 거라고 봤다. 윤석열 후보 장모 징역형, 손바닥 왕(王)자, 개·사과, 전두환 옹호 발언 등을 ‘더하기(+)’와 ‘등호(=)’만 써서 나열했을 뿐이다.

Q. ‘쥴리 벽화’ 빈자리 채운 건, 논란에 편승하려는 시도였나.
닌볼트: 전혀 아니다. 원래 ‘위드코로나’를 주제로 한 밝은 느낌의 시안이 이미 나와 있었을 때, 윤석열 후보가 전두환 옹호 발언을 하고 광주에 갔다. 광주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이 벽화를 그렸다. 어떻게 보면 사고를 친 거다.

그래피티 아티스트 닌볼트 작가는 '쥴리' 벽화가 걸렸던 자리에 윤석열 후보 논란을 네 컷으로 나눈 벽화를 걸었다. 왼쪽부터 장모 논란, 왕(王)자 논란, 사과 논란, 전두환 논란이다.

그래피티 아티스트 닌볼트 작가는 '쥴리' 벽화가 걸렸던 자리에 윤석열 후보 논란을 네 컷으로 나눈 벽화를 걸었다. 왼쪽부터 장모 논란, 왕(王)자 논란, 사과 논란, 전두환 논란이다.

탱크시: 네 컷으로 나눠 등호 붙여 그림을 풀어낸 건 신선하고 재밌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우파 진영을 깎아내리는 그림이라 마음에 썩 들진 않았다.

닌볼트: 나도 (탱크시가 그린) ‘김부선’ 벽화가 아름답진 않았다.

‘김부선’ 벽화 속 두 남녀…“보는 사람 판단에 맡겨” 

Q. 닌볼트의 ‘전두환’ 벽화에 맞불로 ‘김부선’ 벽화를 그렸는데, 어떤 의미였나
탱크시: 닌볼트 작가는 윤석열 후보 이슈를 여러 컷에 나눠 그렸다. ‘김부선’ 벽화는 캔버스 한 폭에 이재명 후보의 모든 이슈를 담았다. ‘아수라’ 백작이 여러 이슈가 상징적으로 담긴 작품을 찢는 컨셉이다.

탱크시 작가는 이재명 후보의 각종 논란을 한 폭의 벽화에 담았다. 상징과 은유를 통해 이 후보의 여러 이슈를 담아냈다. 탱크시 작가.

탱크시 작가는 이재명 후보의 각종 논란을 한 폭의 벽화에 담았다. 상징과 은유를 통해 이 후보의 여러 이슈를 담아냈다. 탱크시 작가.

Q. ‘김부선’ 벽화에 등장하는 철창 속 남녀는 누군가.
탱크시: 그건 따로 말하고 싶지 않다. 보는 사람들이 판단하면 된다.

닌볼트: 자기가 그렸는데 왜 말을 못하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는 그런 마음인가….

탱크시: 개인을 특정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 철창 안에 갇힌 사람들 정체는 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용대로 판단하라는 의도로 그렸다.

Q. 김부선 배우는 정치인 아니지 않나, 명예훼손 아닌가.
탱크시: 그분(김부선 배우) 의견에 힘을 싣기 위해 그렸다. 결코 폄훼·비방 목적의 벽화가 아니었다. 외설적이라든지, 인물 자체를 흉하게 그리지 않았다. 김 배우가 출연한 영화의 한 컷을 보고 그렸다. 또 오해가 있는 게 ‘김부선 배우를 특정하지 않았다’라는 말을 했다는데,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 김부선 배우 그린 게 맞다.

배우 김부선 씨는 탱크시 작가의 벽화를 수차례 훼손했다. 탱크시 작가는 훼손이 심하게 돼 섭섭했지만 참여 미술의 한 형태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배우 김부선 씨는 탱크시 작가의 벽화를 수차례 훼손했다. 탱크시 작가는 훼손이 심하게 돼 섭섭했지만 참여 미술의 한 형태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Q. 김부선 배우가 해당 벽화를 훼손하고 인증샷까지 올렸다. 탱크시 작가는 이를 “비상식적”이라고 비판했다.
탱크시: 내가 그런 말을 한 적 없다. 기획사 대표가 나를 대변한다며 이야기한 부분이 기사로 나갔다. 나는 오히려 (김 배우의) 작품 훼손도 참여 미술의 한 형태라고 생각했다. (훼손 과정이) 재밌었고 존중했다. 물론 너무 여러 번 심하게 훼손해서 아쉬운 부분은 있었다. 어쨌든 김 배우와 오해한 부분에 대해선 서로 사과했다.

두 작가는 대선 후보들의 논란들을 도심 한복판 약 13㎡ 크기 벽화에 가득 채웠다. 당연히 거센 비판과 공격이 뒤따랐다. 그간 하던 일도 더러 끊겼다고 했다. 새벽 3~5시까지 이어진 협박 전화는 물론, 물리적 위협에도 시달렸다고 했다. 두 작가 모두 “과격한 공격은 문제지만, (그림을 그렸으니) 욕이나 비판은 충분히 이해하고 감내한다”면서도 “정치 벽화 논란의 본질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정치 벽화는 왜 안 돼나. 여기가 북한인가”

Q. 생업 지장 받는데 그림 그린 목적은. 이슈화를 원했나.
닌볼트: 전혀. 여태껏 당연히 있어야 할 게 없던 것이 아닌가. 사람들이 말로, 글로, 영상으로 정치 얘기하고 정치에 이용하는데, 그림은 왜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으면 안 되나. 해외에선 흔한 일인데, 우리나라만 이상한 일이다. 드러난 의혹을 그림으로 표현만 했을 뿐 아닌가. 여기가 북한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지 않나. (우리나라) 벽화 보면 99%가 꽃·나무·구름·무지개 같은 밝은 그림이다. 괴기스럽거나 다양한 이야기를 시도해도 되지 않을까. 다른 문화·예술 영역보다 그림·벽화 분야는 다양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영역이 확장됐으면 한다.

탱크시: 누구나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이다. 그게 왜 제약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Q. 왜 사람들이 유독 ‘정치 벽화’에 더 예민했을까.
닌볼트: 무의식적인 검열이 있다고 본다. ‘재밌다’, ‘반대한다’ 가볍게 의견을 냈으면 하고, 관대하게 다른 의견을 받아들였으면 한다.

탱크시: 글이나 말, 영상과 달리 그림은 시각적으로 한 번에 각인된다. 설명이 흘러가지 않고 한방에 박혀 메시지가 세다. 그래서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이재명·윤석열 그린 벽화 속 숨겨진 이야기

Q. 이후 아예 ‘벽화 배틀’을 진행했다. 그림들이 다소 얌전해졌던데.
닌볼트: ‘전두환·개·사과’ 벽화 2탄을 그리고 싶었는데, 안 좋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부담을 느꼈다. 긍정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지난해 12월 탱크시 작가와 닌볼트 작가는 '히어로'라는 주제로, 각자가 지지하는 대선후보를 응원하는 '벽화 배틀'을 진행했다.

지난해 12월 탱크시 작가와 닌볼트 작가는 '히어로'라는 주제로, 각자가 지지하는 대선후보를 응원하는 '벽화 배틀'을 진행했다.

탱크시: ‘히어로’라는 주제로 지지 후보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 근데 단순히 찬양하거나 열광하는 내용은 아니었다. 난 윤석열 후보에 대한 그림을 그렸다. 작가 뱅크시의 ‘Snow’ 작품을 차용했다. 작품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면, 강렬하게 타오르던 촛불이 꺼져가며 재와 그을음이 날린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는 그게 눈인 줄 알고 두 팔 벌려 혀를 내민다. 이런 잘못된 상황을 막아줄 건 망가진 ‘파란’ 우산이 아닌, 윤석열이 든 ‘빨간’ 우산이란 걸 표현했다.

닌볼트: 꺼져가는 촛불이 국민의힘인 줄 알았다. (웃음) 파란 우산은 또 찌그러트려 놓고…굳이 그렇게 해야 했나

탱크시: (파란 우산은) 망가졌다.

닌볼트 작가는 탱크시 작가와의 '벽화 배틀'에서 이재명 후보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아이언 명(明)' 벽화를 작업했다.

닌볼트 작가는 탱크시 작가와의 '벽화 배틀'에서 이재명 후보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아이언 명(明)' 벽화를 작업했다.

닌볼트: 내가 그린 건 ‘아이언 명(明)’이다. 영화 ‘어벤저스-엔드 게임’에서 아이언맨이 자신을 희생해 세상을 구하는 그 장면을 오마주했다. 근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아이언 명’이 피를 흘리고, 엄지손가락엔 인피티니 스톤(극 중 절대 능력을 갖추는 데 필요한 6개 보석)이 빠져 있다. 아직 대통령이 아니라서 겸손했으면 좋겠다는 의미 담았다. 또 ‘파란’ 태양이 지구에서 떠오르며 붉은빛을 걷어낸다는 걸 표현했다.

탱크시: (아이언 명이) 지구 부수러 오는 그림인 줄 알았다.

두 작가에게 ‘정치’만큼 무서운 건 코로나 19 사태였다. 두 작가 모두 “평소보다 일감이 8~90% 줄었다”고 했다. 예술인 코로나 지원금 등을 신청했느냐고 묻자 “신청 방법이 어렵고, 주변에 받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Q. 코로나 등 개인적 상황 힘든데, ‘정치 벽화’ 계속 그릴 건가.
탱크시: 사실 나서기 쉽지 않지만은 않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앞으로도) 사회적 이슈를 말할 창구로 그림을 활용할 생각이다.

닌볼트: 계속할 생각이다. 정치·사회적 이야기를 담은 그림을 그려 이 영역을 더 확장하고 싶다. 곧 벽화를 걸 예정이다. 작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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