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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 영면…5·18 광장서 아들 곁으로

중앙일보

입력

“이한열을 기억하는 순간을 위해 부지런히 다녔던 거에요.”

11일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 노제·영결식

11일 오전 11시 광주광역시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고(故)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의 생전 영상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상영되자 좌중이 숙연해졌다. 영상 속 배 여사는 평범한 주부였던 자신이 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는지 곧은 목소리로 풀어나갔다.

민주주의의 어머니 영면

11일 오전 11시 광주광역시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배은심 여사의 노제에 생전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1일 오전 11시 광주광역시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배은심 여사의 노제에 생전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민주의 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 장례위원회와 고인의 유족은 이날 오전 10시 10분께 빈소가 차려진 조선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치고 5·18 민주광장으로 이동해 배 여사를 추모하는 노제와 영결식을 치렀다.

노제가 시작되기 전 배 여사의 생전 모습과 이한열 열사가 1987년 6월 9일 이한열 열사가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경찰의 최루탄에 피격하기 직전 모습이 상영됐다. 배 여사가 이 열사의 관을 붙들고 오열하는 모습도 함께 담겼다.

배 여사는 이 열사가 6월 항쟁 당시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숨진 뒤 민주화운동에 일생을 바친 ‘민주주의의 어머니’로 불린다. 1998년부터는 422일간 국회 앞 천막 농성 등을 통해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 등을 끌어냈다.

“아들 이름 한 번이라도 기억하라고…”

11일 광주광역시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배은심 여사의 노제에 영정사진과 국민훈장 모란장이 놓여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1일 광주광역시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배은심 여사의 노제에 영정사진과 국민훈장 모란장이 놓여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배 여사는 “아들이 죽어가는 걸 만져보고 살아있는 나 자신이 미웠다”는 마음속 응어리도 털어놨다. 또 “사람들 많은 곳에 가면 배은심이 가는 게 아니라 이한열 엄마가 오는 것”이라며 “사람들이 이한열을 기억하는 순간을 위해 부지런히 찾아다녔다”고 했다.

아들의 이름과 생전 모습을 기억해줬으면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이 배 여사가 아들을 잃은 슬픔에도 민주화운동에 앞장설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배 여사는 지난달 말까지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한 1인 시위를 이어나갔다. 민주유공자법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민주화운동 참가자를 유공자로 인정하고 교육·의료·취업 등 지원과 예우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민주유공자법 제정에 헌신

11일 배은심 여사의 빈소가 차려진 광주광역시 동구 조선대학교병원에서 고인의 영정을 실은 운구차가 노제가 열리는 5·18 민주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1일 배은심 여사의 빈소가 차려진 광주광역시 동구 조선대학교병원에서 고인의 영정을 실은 운구차가 노제가 열리는 5·18 민주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하지만 민주유공자법은 ‘운동권 특혜’ 논란이 일면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날 고인을 기리기 위해 단상에 선 이들은 죽음 직전까지도 민주 열사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헌신한 고인의 유지를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인순 연세민주동문회 회장은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해 1인 시위와 천막 농성을 하시고 지난 3일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신 뒤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다”며 “다시는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받는 가족이 생기지 않도록 해오셨고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남기시고 운명하셨다”고 말했다.

한동건 이한열 기념사업회 이사장은 “1987년 아들과 생이별한 뒤 같은 아픔을 겪은 이들을 위해 활동하셨다”면서 “이한열 기념사업회는 배 여사의 뜻을 계승해 민주유공자법 제정에 온 힘을 쏟겠다”고 했다.

생일에 떠난 민주의 어머니

11일 광주광역시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배은심 여사의 노제와 영결식이 열려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11일 광주광역시 동구 5·18 민주광장에서 배은심 여사의 노제와 영결식이 열려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배 여사가 영면에 든 11일은 고인의 음력 생일이었다고 한다. 유족들은 영정 앞에 고인을 위한 생일 케이크를 준비했다. 하지만 배 여사가 다신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슬픔에 흐느꼈다.

배 여사의 장녀 이숙례씨는 유족들을 대표 추모객들 앞에 서 “장례를 치르는 동안 수많은 분의 마음과 기억 속에서 만인의 어머니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며 “여러분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가슴 깊이 간직하며 어머니가 걸어오신 민주의 길로 다가서겠다”고 말했다.

배 여사는 남편 이봉섭씨가 안장된 광주 북구 망월동 묘역 8묘원에 안치된다. 이곳은 아들 이한열 열사가 안장된 망월동 민주열사묘역을 마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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