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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폭력 피해자에 '왜 따라갔나' 신문…헌재 결정 우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 진술녹화 증거능력 폐기처분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19세 미만 성폭력 범죄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진술한 영상을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있게 한 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뉴스1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19세 미만 성폭력 피해자 진술녹화 증거능력 폐기처분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19세 미만 성폭력 범죄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진술한 영상을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있게 한 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뉴스1

“거기에 왜 따라갔습니까."
“아저씨 성기가 커요? 작아요?”
“싫으면 옷을 내리지 못하게 바지를 잡았어야지.”
“못 알아듣겠어요. 너 발음이 좋지 않구나.”

김지은 대구해바라기센터 부소장은 10일 법원 내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회장 오경미 대법관)' 주최로 열린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 영상녹화진술 관련 실무상 대책’ 긴급토론회에서 이처럼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들이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받은 질문들을 소개했다. “해바라기센터(아동형)에 16년 동안 근무하면서 수많은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을 만났다”고 자신을 소개한 김 부소장은 이 질문들에 대해 “어떠냐”며 “미성년 피해자에게 적절한 질문으로 생각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변호인은 피고인(성폭력 가해자)의 형량에 성폭력 피해 유형이 영향을 미치니 강간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성기나 손가락 등 삽입 유무에 대해 집중적인 질문을 할 것”이라며 “이러한 질문은 성인 피해자에게도 힘든 과정인데 아동과 청소년에게는 더욱 어렵고 힘든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지난달 23일 헌법재판소가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의 영상녹화 진술을 곧바로 증거로 인정하는 성폭력처벌법 30조 제6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선고하면서, 이에 대한 실무상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기존 조항은 미성년자 대상 성폭력 피고인이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검사가 신뢰관계인이나 진술 조력인을 증인으로 부르고, 재판부는 진술 조서(피해자가 13세 미만일 경우 속기록)와 영상 녹화물을 증거로 써서 심리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피해자가 법정에서 가해 피고인을 대면하지 않아도 됐었다. 하지만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성폭력 피해 아동들은 보완 입법이 이뤄질 때까지 피고인 측이 반대신문을 요구하면 법정에 직접 나와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헌재 결정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오정희 서울고검 검사는 “헌재는 수사 초기 단계에서 피해자 증언에 대해 증거보전절차를 활용하면 피해자의 반복 진술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이는 재판과 수사 절차의 차이를 간과한 견해로 보인다”며 “수사 실무상 사안이 중할수록 기초 수사가 필요한 만큼 수사가 일단락된 후에 별도로 증거보전절차 진행해야 할 가능성 크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결국 피해자 증언 횟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피고인이 증거보전절차에서 신문하지 못한 것이 있다며 재차 증인신문 하게 해달라고 요청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오선희 변호사는 “아동 피해자는 낯선 법정에서 성인들인 판사·검사·변호사 등에 둘러싸여 교호신문 방식(법원이 직접 증인 신문을 하지 않고 원고인 검찰과 피고인인 변호사가 번갈아 신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증인신문에 노출돼 피해를 각인하는 반복 회상과 반복 진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아동·청소년 피해자들의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 부소장은 “반드시 피해 아동·청소년이 법정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공간적 안전과 심리 정서적 안정을 확보해줘야 한다”며 “법정에서는 상담사, 법의 간호사, 심리치료사 등 피해 아동·청소년이 지지할 수 있는 전문가나 부모가 동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동현 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부장판사)은 “피해자를 반대신문에 노출하는 것은 2차 가해로서의 본질을 지닐 수 있다"며 "심리 후 피고인의 방어권 남용이었음이 밝혀진다면 추가 피해를 준 결과가 되므로 양형에서 불리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 증인신문 전 당사자들 사이에 공론화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오 변호사는 판사·검사·피의자·피해자 변호사가 피해자 친화적 장소(보호시설 등)에 모여 질문을 정리한 뒤 전문 수사관에게 묻게 하고, 이를 바깥에서 지켜보며 녹화와 추가 질문을 하는 북유럽 모델을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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