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곤경에 처했다. 재임 시절 이라크 파병 결정으로 “기사 작위를 박탈하자”는 국민청원이 벌어지는 가운데, 이번엔 카자흐스탄 독재자의 ‘검은돈’과 연결됐다는 입소문에 휩싸였다.
8일 가디언 등은 최근 블레어 전 총리가 11년 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맺은 끈끈한 관계가 다시 회자되며,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졌다고 전했다. 매체는 “블레어는 나자르바예프와 독재 정권의 대외 이미지 세탁에 도움을 준 서방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라고 전했다.
퇴임 후 컨설팅 기업을 운영하던 블레어 전 총리는 2011년 카자흐스탄에서 발생한 반(反) 정부 봉기 후, 나자르바예프에게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한 이미지 세탁 방법에 대해 조언했다. 이를 대가로 블레어는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1300만 달러(약 157억원)의 고액 수수료를 챙겼다. 당시 시위에서 나자르바예프 정권은 시민 14명을 사살하는 등 강경 진압으로 일관해 국제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앞서 블레어는 퇴임 후 15년 만에 가터 훈장(Order of The Garter) 수상자로 임명됐다. 그러나 최근 기사 작위 박탈에 대해 100만명 이상의 영국 국민이 서명하는 등 여론은 악화일로에 있다.
카자흐 독재자, 영국 부동산 8600억원 사들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차남인 앤드류 왕자도 함께 거명됐다. 나자르바예프 집권 기간 그의 일가와 엘리트 측근이 사들인 영국 부동산 가운데 앤드류 왕자의 부동산이 포함됐다는 점 때문이다. 앤드류 왕자의 저택인 버크셔의 수닝힐 공원은 나자르바예프의 사위인 티무르 쿨리바예프가 지난 2007년 1500만 파운드(약 244억원)에 사들였다.
앞서 영국 싱크탱크 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는 지난달 카자흐스탄의 정치 엘리트는 1998년부터 4년간 총 5억3000만 파운드(약 8600억원) 가치의 호화 부동산 34곳을 샀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존 헤더쇼 교수는 “런던은 카자흐스탄의 정치 엘리트에게 매우 중요한 곳”이라며 “여기에는 (나자르바예프 일가와) 토니 블레어, 앤드류 왕자 등과의 개인적 관계도 포함된다”고 했다. 또 “영국 내 카자흐스탄 부동산의 대부분은 나자르바예프의 일가나, 그의 고위 측근이 소유”라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독재자의 영국 내 부동산은 수년 전부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영국 범죄수사국(NCA)은 나자르바예프의 맏딸 다리가 나자르바예바와 손자 누랄리 알리예프가 최소 8000만 파운드(약 1305억원) 상당의 런던 부동산을 소유한 것으로 확인하고, 출처를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영국 법원이 기각해 무산됐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는 총리 시절인 2016년 런던에서 열린 반부패 정상회의에서 역외 부동산에 대한 비밀 소유권을 종식하겠다고 했지만, 이후에도 영국의 외국인 부동산 소유자 등록 법안은 도입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