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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금리로 인플레 못 잡는다…통화량 절반 줄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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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강남규 기자 중앙일보 기자
스티브 행키(左), 제롬 파월(右)

스티브 행키(左), 제롬 파월(右)

거의 40년 만이다. 1981년 이후 처음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 11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한해 전보다 6.8% 올랐다. 곧 발표될 12월치는 7%를 웃돌 전망이다. 예측대로라면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저성장) 시대인 1970년대 말 이후 가장 높을 듯하다.

사정이 이쯤 되자 요즘 미국 월가 사람들이 특유의 호들갑을 떨며 “인플레이션이 추악한 얼굴(ugly face)을 들기 시작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기준금리 인상 시점을 예측하기 바쁘다. 이재에 밝은 이들의 전형적인 기민함이다.

원로 통화론자 스티브 행키의 경고
“공급사태로 물가 오르는 것 아니다
총통화 증가율 13%, 돈 많이 풀린 탓
물가 2% 맞추려면 6.3%로 낮춰야

금리 인상은 물가 안정적일 때 효과
파월, 금리 패닉 빠지면 신흥국 불행
1997년 한국처럼 외환위기 가능성”

미 12월 물가 7%대 40년만에 최고 전망

파월은 폴 볼커 이후 40여년 만에 처음으로 인플레 파이터로 나서는 Fed 의장이다. 그 사이 미국뿐 아니라 글로벌 경제는 ‘대안정기(Great Moderation)’로 불렸다. 물가는 안정적이었다. 성장은 탄탄했다. 앨런 그린스펀과 벤 버냉키, 재닛 옐런 등은 물가보다 금융위기나 침체와 싸워야 했다. 더욱이 2008년 위기와 2021년 팬데믹 직후엔 디플레이션을 막는 일이 더 급했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고 했다. 파월은 팬데믹이 다 끝나기도 전에 인플레와 싸워야 한다. 잘 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확실하게 답해줄 수 있는 볼커는 2019년 숨을 거뒀다. 미 경제학회 인명록을 뒤졌다. 순간 한 노학자 이름을 발견했다.

미국 총통화(M2) 증가율과 물가

미국 총통화(M2) 증가율과 물가

바로 스티브 행키(80) 존스홉킨스대 교수(경제학)다. 볼커가 인플레 사냥을 벌인 1980년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멤버였다. 무엇보다 그는 대안정기에 뒷전으로 밀린 통화론자(monetarist)다.  모든 인플레이션은 돈이 많이 풀렸기 때문이라고 믿는 쪽이란 얘기다. 행키 교수와 이달 7일 줌(Zoom)으로 인터뷰했다.

1980년대 초 각광받다 소외를 겪어서인지, 행키 교수는 “이제야 통화주의자가 부활할 듯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파월이 수요가 늘고 글로벌 공급 사태 때문에 물가가 오른다고 진단하는데, 그렇지 않다. 모든 물가 상승은 통화량 급증 때문이다. 그가 요즘 양적 완화(QE) 줄이기(테이퍼링)를 하고 있는데도, 총통화(M2) 증가율이 13%를 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물가가 뛰는 것은 자연스럽다.”

파월이 올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할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목소리를 높이며 파격적인 진단을 내놓았다.

“볼커가 80년에 기준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은 게 아니다. 그는 통화량을 줄여 승리했다. 기준금리는 인플레를 억제하는 데 적절한 도구가 아니다. 금리 조절은 물가가 안정적일 때나 효과적이다.”

최근 한 세대 통화정책 상식을 깨는 말이다. 지금까지는 ‘기준금리 인상→시장 금리 상승→투자·소비 위축→물가 안정’이 상식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What is to be done).

1980년대 물가 잡은 볼커처럼 총통화 줄여야

행키 교수는 총통화(M2) 증가율을 낮출 것을 주문했다. 그는 “물가안정 목표치인 2%와 2000년 이후 미국의 평균 성장률 3%, 달러 유통속도 등을 바탕으로 계산한 최적의 M2 증가율은 6.3% 안팎”이라며 “지금 M2 증가율은 13%를 웃돌고 있다”고 지적했다. 절반 정도 낮춰야 하는 가혹한 작업이 파월 앞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런데 “파월은 관성대로 기준금리를 올리는 처방에 매달릴 것”이라며 “그 결과는 한국 등 신흥국의 불행”이라고 행키 교수는 경고했다. 오랜 기간 학계에서 소외된 이코노미스트의 관심 끌기용 발언일 수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왜 불행인지를 다그치듯 물었다. 그는 시나리오 하나를 제시했다.

“Fed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물가 오름세가 이어진다. 파월 등 Fed 책임자들이 패닉에 빠진다. 그들은 아주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더 올린다. 그 바람에 달러 가치가 급등하면서 외채가 많은 신흥국이 1997년 한국이 겪은 외환위기에 빠질 수 있다.”

글로벌 경제가 원로 통화론자의 전망대로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다만, 그의 진단 가운데 파월이 이끄는 Fed가 인플레와 싸우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대목은 설득력 있게 들렸다. “17세기 후반에 영국에서 시작된 중앙은행이 정책 패러다임을 바꾸는 과정은 울퉁불퉁했다”는 미 중앙은행 역사가인 존 우드 웨이크포레스트대 교수가 지난해 기자와 통화에서 한 말이 떠올라서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Fed가 인플레와 싸우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으면 한국 등 신흥국은 격통에 시달리기 십상이다. 국내 투자자뿐 아니라 정책 담당자가 Fed가 인플레 파이팅 과정에서 실수하거나 실패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하는 이유다.

강남규 기자

강남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