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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글로브 오영수, 단박에 인터뷰 거절 "내일 연극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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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일 한국인 배우 최초로 미국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오영수(78)는 인터뷰 제안을 단박에 거절했다. “내일 연극이 있다. 그 준비가 나에게 더 중요한 일”이라면서다. 그는 지난 7일부터 서울 대학로 TOM 1관에서 공연하는 연극 ‘라스트 세션’에 출연하고 있다.

그는 모든 에너지를 공연 중인 무대에 쏟고 있었다. 자신의 수상 소식도 기자의 전화를 받고서야 알았다. 그에게 발표가 났다고 전하자 한참 말을 잇지 못하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한테 ‘괜찮은 놈’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2014년 국립극단의 '템페스트'에 출연한 오영수. [사진 오영수]

2014년 국립극단의 '템페스트'에 출연한 오영수. [사진 오영수]

그는 반세기 넘는 세월을 연극배우로 살았다. 1967년 극단 광장에 들어가며 연기를 시작했다. 제대한 뒤 취업을 준비하던 중 극단 단원이었던 친구를 따라 내디딘 발이었다. 1968년 연극 ‘낮 공원 산책’으로 데뷔했고, 이후 극단 성좌ㆍ여인ㆍ자유 등을 거쳤다. 얼떨결에 시작한 배우 생활이었지만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는 동안 '연기파 배우'란 수식어가 붙었다. 1987년부터 2010년까지 국립극단의 간판 배우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출연한 연극은  ‘피고지고 피고지고’ ‘리어왕’ ‘파우스트’ ‘3월의 눈’ 등 200여편에 이른다.

일반 대중과의 접점은 많지 않았다. 영화 ‘동승’(2002),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봄’(2003), 드라마 ‘선덕여왕’(2009), ‘무신’(2012) 등에 출연했지만, 주로 스님 역의 조연에 머물렀다.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한마디를 하더라도 생명력 있는 역할인가”다. 지난달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영화나 TV에 출연을 안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적당한 제안이 별로 없었다”고 했다.

10일 오후 배우 오영수가 출연 중인 연극 '라스트 세션' 포스터가 서울 대학로 극장 앞에 붙어 있다. 연합뉴스

10일 오후 배우 오영수가 출연 중인 연극 '라스트 세션' 포스터가 서울 대학로 극장 앞에 붙어 있다. 연합뉴스

연극계에서 그는 명품 배우로, 살아있는 역사로 통했다. 동아연극상 연기상(1979), 백상예술대상 연기상(1994) 등을 수상했다. 호흡과 기력을 중심에 놓는 그의 연기 세계는 정확한 발음과 생생한 표정 류의 차원을 뛰어넘는 깊이가 있었다. 멋을 부리지 않는 담백한 연기로 관객을 설득시켰다. 국립극단 시절 선배 배우 장민호(1924∼2012)와 20여년 함께 무대에 서며 배운 “인생을 이야기하는 배우”가 그의 목표가 됐다.

그가 주연을 맡았던 ‘3월의 눈’ 연출가 손진책은 그에 대해 “조미료 안 치는 배우”라고 했다. “뭔가를 만들어내려 하지 않고 거기 놓여지려고 한다. 놓여진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연기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오영수만의 독특한 연기”라며 “자기 신념과 연기 철학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백양성의 욕망’ ‘따라지의 향연’ 등의 작품에 그와 함께 출연했던 배우 박정자(80)는 그를 “무대를 통해 자신을 담금질하고 또 이겨내고 그 불길 속에서 타오르는 배우”라고 평했다. 또 “한 작품에 접근해가는 과정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공부도 굉장히 많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9월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된 ‘오징어 게임’에서 1번 참가자이자 게임 설계자인 오일남 역으로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우린 깐부(딱지치기ㆍ구슬치기를 할 때 한 팀이나 동지를 뜻하는 속어)잖아”라는 유행어를 남기며 ‘깐부 치킨’ 광고 제안도 받았지만 “작품의 의미가 흐려질 우려가 있다”며 거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징어 게임’ 출연은 황동혁 감독의 오랜 구애 끝에 성사됐다. 2003년 개봉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그의 노승 연기에 매료된 황 감독이 영화 ‘남한산성’(2017) 때 그에게 캐스팅 제의를 했다. 하지만 스케줄이 맞지 않아 출연은 불발됐고, 황 감독은 다음 작품인 ‘오징어 게임’ 시나리오를 들고 2019년 다시 그를 찾아왔다. 당시 그가 출연 중인 연극 ‘노부인의 방문’ 공연장까지 찾아와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 배우 최초로 미국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오영수. [골든글로브 홈페이지 캡처]

한국인 배우 최초로 미국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오영수. [골든글로브 홈페이지 캡처]

‘오징어 게임’ 이후 오영수는 MZ세대까지 열광시키는 대중스타로 거듭났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첫 경기의 시구자로 나섰는가 하면, 새해 출발을 알리는 타종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엔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출연해 “진정한 승자는 하고 싶은 일을 최선을 다해서 어떤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 “젊었을 땐 예쁜 꽃을 보면 꺾어 오지만, 나이가 들면 그 자리에서 본 뒤 그대로 두고 온다” 등 한길 인생에서 깨우친 진리를 전하며 감동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백인들의 잔치’라는 골든글로브까지 석권했지만, 그의 일상생활은 별 변화가 없다. 매일 아침 평행봉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한다. 경기도 성남 집에서 공연장인 서울 대학로까지 왕복 3시간을 지하철로 이동하며 대사를 외운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가족들과 함께 식사할 때’, 가장 좋아하는 말은 ‘아름답다’”라는 그는 10일 골든글로브 수상 발표 이후 넷플릭스를 통해 공식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다.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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