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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만원 아이언, 135만원에 당근 올려도 산다" 골프용품 대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듬성 듬성 비어 있는 아이언 전시대. 성호준 기자

듬성 듬성 비어 있는 아이언 전시대. 성호준 기자

10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AK 골프 본사 직영 샵의 진열대에는 빈 곳이 더러 있었다.

골프 인구 폭증에 공급은 줄어 #미국, 일본 업체 자국에 우선 배정 #아이언, 여성 용품이 특히 품귀

이 회사 성재현 영업 담당 상무는 “물건 입고가 안 돼 매대 몇 개를 치웠고, 2018년 형 재고품과 잘 안 팔리는 물건 등을 전시해놨지만, 그것으로도 남은 매대를 채우지 못했다”며 “골프존마켓이나 AK 골프처럼 대형 업체들도 물건을 구하기 어려운데 작은 업체들의 사정은 훨씬 더 나쁘다”고 말했다.

정 모 씨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아이언을 사려다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재입고 알림 신청하시면 상품의 재입고 시 알림으로 고객님께 안내해드립니다. 재입고 알림을 받으셨더라도 선착순 판매로 인해 조기 소진될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박 모 씨는 홀인원 기념 지인들에게 줄 선물용으로 골프공을 주문했으나 “한 달 반을 기다려야 한다”는 답을 들었다.

올 초 포털에서 연 젝시오 라이브 쇼핑에는 14만 명이 들어오는 기록을 세웠다. 지난해부터 용품사에서 예약 판매를 하면 대부분 하루 만에 마감되는데, 정작 약속한 날 물건이 들어오지 않아 실랑이도 생기고 있다.

골프용품 구하기가 어렵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골프 인구가 증가해 수요는 늘었는데 공급은 오히려 줄었다.

핑 골프의 김진호 부사장은 “중국과 베트남 등에 있는 부품 공장이 코로나 셧다운 등으로 인해 가동률이 떨어졌다. 커진 수요에 맞춰 공장 증설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 완료된 곳은 없다”고 말했다. 핑은 일손이 달려 미국 본사의 존 솔하임 회장이 물건을 직접 조립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브리지스톤 골프의 신용우 상무는 “샤프트를 만드는 일본의 철강 회사는 더 중요한 기간산업에 집중하려 골프용품 생산을 줄이기도 했다. 본사에서 그립이나 샤프트 등은 알아서 조달하라는 분위기라서 직접 구하러 다니고 있다. 요즘은 물건을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배당을 받는다는 표현이 맞는다”고 전했다.

비어 있는 골프화 진열대. 성호준 기자

비어 있는 골프화 진열대. 성호준 기자

아이언과 여성 클럽이 특히 부족하다. 신규 골퍼들은 우선 아이언이 필요한데 선호하는 브랜드, 스펙에 맞는 물건을 찾기 힘들다. 업체들은 여성 골퍼들이 이렇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지 못해 물건을 준비하지 못했다.

골프 열기가 가장 뜨겁게 달아오른 한국은 상대적으로 공급에서 소외됐다.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과 일본의 골프용품사들은 자국 소비자를 우선 배려한다. 또한 가장 큰 시장인 미국을 중시하기 때문에 물량을 우선 배정한다. 북미 시장이 활황이라 한국에 오는 물량이 적다”고 푸념했다.

악성 재고로 골치를 앓았던 몇몇 브랜드는 지난해 영업 실적이 좋았다. 인기 업체의 물건이 적어 수혜를 봤다.

중고채 가격도 확 올랐다. 골프 용품은 조금만 사용해도 50% 가까이 떨어졌는데 요즘엔 10~20% 내린 가격에도 잘 팔린다. 일본에서도 골퍼가 늘어 중고 물건 공급 루트가 사라졌다. 일부 국내 중고 인터넷 몰은 물건이 없어 업종을 바꾸기도 했다.

중고 거래 사이트인 당근 마켓에서는 2~3년 된 재고품이나 쓰던 물건이 신제품 가격에 나오기도 한다. AK골프 성재현 상무는 “아이언을 샵에서 115만원에 구해 당근 마켓에 135만원에 올리는 사람도 있다. 물건이 워낙 없으니 팔린다”고 말했다.

신제품 가격도 오른다. 원자재 가격과 물류비용이 올라 테일러메이드는 드라이버 기준 도매가를 약 9% 올렸다. 물건이 적어 할인 판매도 줄기 때문에 소비자가로는 20% 정도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핑 김진호 부사장은 “골프 유입 인구 증가세가 떨어지고 있다. 신제품이 대량 생산되는 6월 경이면 용품 수급이 균형을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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