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외면한 골든글로브 78년 고집, '깐부' 오영수가 꺾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2.01.10 14:49

업데이트 2022.01.10 19:03

1944년부터 실시된 골든글로브는 미국을 대표하는 시상식이다.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ollywood Foreign Press Association, 이하 HFPA) 회원(87명)이 영화와 TV 프로그램 부문으로 나누어 선정한다. 통상 아카데미, 미국배우조합상(SAG)과 함께 미국 3대 시상식으로 꼽힌다.

 오영수의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수상을 게재한 골든글로브 홈페이지 [골든글로브 홈페이지 캡쳐]

오영수의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수상을 게재한 골든글로브 홈페이지 [골든글로브 홈페이지 캡쳐]

'오징어 게임' 오영수가 ‘석세션’의 키에라 컬린, ‘더 모닝쇼’의 빌리 크루덥, 마크 듀플라스, ‘테드 라소’의 브렛 골드스타인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골든글로브 TV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일단 한국인이 사상 최초로 골든글로브에서 수상했다는 자체가 갖는 상징적 의미가 굉장히 크다"며 "지난해 '오징어 게임'이 일으킨 K콘텐트의 글로벌 열풍이 대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한국뿐 아니라 다른 비영어권 국가를 위해서 장벽을 허물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도 "백인 위주의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한국인이 주인공이 됐다는 것은 이제 K콘텐트가 미국에서도 주류 문화로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골든글로브 로고

골든글로브 로고

오영수의 수상은 그간 골든글로브를 둘러싼 '인종차별' 논란에 대해서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골든글로브는 그간 미국 외 작품에는 유난히 문턱이 높아 '벽'으로 인식됐다. 아카데미 작품상 등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나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를 주요 부문에는 올리지 않고 외국어영화상 후보로만 다룬 것이 대표적. 지난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윤여정은 후보에도 오르지 못하며 인종차별 논란이 확산됐다. 87명의 HFPA 회원 중 흑인 회원이 전무하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이런 논란 속에 샌드라 오가 2019년 골든글로브 TV드라마 부분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오랫동안 미국에서 활동한 미국-캐나다 국적의 배우라는 점이 한계로 꼽혔다.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재미교포 2세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는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사진 골든글로브 홈페이지]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재미교포 2세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의 '미나리'는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사진 골든글로브 홈페이지]

업친데덮친 격으로 지난해 2월에는 골든글로브 주최 단체인 HFPA의 부패 스캔들이 터졌고, 스칼렛 요한슨은 HFPA 회원들로부터 성차별적 질문을 받았다고 폭로해 파문이 일었다.
파장이 확산되자 톰 크루즈 등 할리우드 배우들은 트로피를 반납했고, 넷플릭스, 워너브러더스, 아마존 스튜디오 등은 시상식 보이콧 방침을 천명했다. 매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생중계했던 NBC도 올해는 중계하지 않아 수상자 발표는 주최 측이 온라인을 통해 텍스트로만 알렸다. 관객도 없고, 시상자도 불참하고 중계도 되지 않는 초라한 잔치로 전락한 셈이다.

2019년 '킬링 이브'로 골든글로브 TV드라마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샌드라 오. [사진 IMDb]

2019년 '킬링 이브'로 골든글로브 TV드라마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샌드라 오. [사진 IMDb]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그간 골든글로브는 백인 위주의 배타적이고 보수적 문화를 상징하는 최후의 보루와도 같았다"며 "오영수 배우의 수상은  골든글로브가 이제 문호를 넓히지 않으면 존립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고민이 반영된 결과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올해 전 세계적으로 '오징어 게임' 열풍이 강타했는데도, 작품상이나 남우주연상을 주지 않은 것은 골든글로브가 '고집'을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뉴욕타임스는 오영수의 이번 수상을 두고 '가장 놀라운 수상자'로 꼽기도 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을 연기한 오영수는 9일(현지시간) 미국 LA 베벌리힐스 힐튼 호텔에서 열린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드라마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연합뉴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을 연기한 오영수는 9일(현지시간) 미국 LA 베벌리힐스 힐튼 호텔에서 열린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드라마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연합뉴스]

한편 이번 시상을 계기로 한국 대중문화에서 노배우를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할 여지를 남겼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덕현 평론가는 "오영수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건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는 이전에는 스님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며 "한국 드라마는 나이 든 배우를 활용하는 방식이 천편일률이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연령에 의해 틀에 박힌 역할을 맡기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노년 배우도 얼마든지 개성 넘치고 매력적인 역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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