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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조선시대에도 거리두기·자가격리···역병 속 우리 일상 한눈에

중앙일보

입력

2019년 12월 발생 이래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를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19. 이렇듯 집단적으로 생기는 전염병을 예전에는 흔히 역병(疫病)이라고 했어요. ‘널리 유행하는 병’으로 전염성 질병을 아우른 말이죠. 지금 우리가 코로나19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과거 사회 역시 각종 역병으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내곤 했는데요. 오래전부터 우리 삶에 비집고 들어온 역병과 이를 쫓아내려는 노력을 기록과 유물을 통해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2월 28일까지 선보이는 ‘역병, 일상’ 특별전을 통해 158건 353점의 전시자료와 영상을 살펴볼 수 있어요.

전시장을 가득 채운 우리 역사 속 다양한 역병 기록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우리 역사 속 다양한 역병 기록들.

전시장에 들어서면 하얀 벽면 가득 역병에 관한 기록이 빼곡하게 나타납니다. 역(疫)·여역(癘疫)·역질(疫疾)·돌림병 등 다양한 용어로도 표현되고, 두창(痘瘡)·홍역(紅疫) 등 병명으로 나타나기도 하죠. ‘전염병이 크게 돌다’‘성안에 역질이 번지다’ 등 눈에 확 들어오는 큰 글자 아래로는 300여 개에 달하는 옛 기사가 줄줄이 이어지죠.
특히 조선 시대 역병에 대한 인식과 치료법 등이 기록돼 의학사적으로 매우 귀중한 『묵재일기(默齋日記)』와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는 관람객에게 최초 공개되는 자료예요. 조선시대 문신인 묵재 이문건이 1535년부터 17년간 쓴 『묵재일기』 중 1556년 부분을 보면 인근 마을에 두창이 창궐한 상황이 기록돼 있죠. 『노상추일기』는 무신인 노상추가 1763년부터 67년간 쓴 것인데요. “두창을 앓던 아이가 결국 죽었으니 비참하고 슬픈 마음을 어찌하겠는가”라며 1778년 역병으로 아이를 잃은 참담함이 절절하게 쓰였어요.

천년이 넘도록 이어진 두창에 대한 공포는 두창(마마)을 손님이자 신으로 여기게 했다. 마마신을 달래 떠나보내는 마마배송굿 관련 유물들.

천년이 넘도록 이어진 두창에 대한 공포는 두창(마마)을 손님이자 신으로 여기게 했다. 마마신을 달래 떠나보내는 마마배송굿 관련 유물들.

조선시대는 역병 중에서도 두창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았습니다. 두창에 관한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나타나는 만큼 우리 민족을 오래 괴롭힌 병이기도 하죠. 두창은 특히 소아·어린이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인데요. 천년이 넘도록 이어진 두창에 대한 공포는 병이 되도록 순하게 있다 가길 바라며 손님이자 신으로 모시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두창은 천연두를 한방에서 이르는 말로, 당시 일상적으로 ‘마마(媽媽)’라고도 불렀는데요. 두창에 걸린 지 12일째 되는 밤부터 13일이 되는 날 마마신을 달래 짚말에 태워 보내는 마마배송굿을 하기도 했죠. 짚말 등 마마배송굿 관련 유물과 함께 손님굿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1821년엔괴질(怪疾)이라 불린 콜레라가 조선 땅을 휩쓸었죠. 당시 민간에서는 쥐에게 물린 통증과 비슷하다고 해서 몸 안에 쥐신이 들어왔다고 하거나 쥐통이라고 불렀어요. 그리하여 나온 처방이 대문에 쥐를 쫓는 고양이 그림을 붙이는 거였죠. 전시장 한쪽 벽에 펼쳐지는 검은 고양이의 쥐 쫓는 영상과 함께 고양이 부적 등 관련 유물을 살펴볼 수 있어요. 이 이색 처방은 19세기 프랑스 인류학자 샤를 바라가 쓴 『조선기행』에도 수록됐죠.

콜레라가 조선 땅을 휩쓸었을 당시, 민간에서는 쥐에게 물린 통증과 비슷하다며 쥐통이라 부르고 대문에 쥐를 쫓는 고양이 그림을 붙이곤 했다.

콜레라가 조선 땅을 휩쓸었을 당시, 민간에서는 쥐에게 물린 통증과 비슷하다며 쥐통이라 부르고 대문에 쥐를 쫓는 고양이 그림을 붙이곤 했다.

조선 사람들은 역병이 발생하면 부적을 붙이거나 굿을 하는 것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지인의 집으로 피접(避接·병을 앓는 사람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요양하는 것)을 가거나 집 안 외딴곳에 스스로를 격리하곤 했어요. 시간이 지나 두창을 예방하는 접종법, 종두가 나오자 이를 강조하는 선전가를 부르고 지침서를 발간하기도 했는데요. 지금 우리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백신 접종을 장려하고,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 자가격리 생활을 하는 것과 비슷하죠. 또 비위생적인 환경에선 여러 가지 병에 걸리기 쉽다며 손 씻기와 청결을 강조하는 포스터와 함께 목욕탕의 중요성이 실린 독립신문도 눈길을 끕니다.

오늘날 예방접종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종두법을 시행하는 사업 지침서.

오늘날 예방접종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종두법을 시행하는 사업 지침서.

18세기 기록에는 마을에 역병이 돌자 집안의 혼례를 연기하는 것을 논의하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코로나19로 결혼식을 연기하거나 일가친척만 소규모로 하는 것과 맞닿아 있죠. 전시는 현재 우리가 마주한 역병, 코로나19와의 일상도 덤덤하게 보여줍니다. 코로나19로 격리 생활을 하게 되면 2주간 나온 쓰레기는 지정된 폐기물 봉투에 모으고, 별도 인력에 의해 수거되는데요. 그때 사용하는 폐기물 봉투부터 격리 동안 그린 그림일기, 2020년 2월 대구 거점 병원으로 지정돼 누적 입원확진자 2297명을 치료한 계명대 대구동산병원 의료진이 받은 응원 편지까지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어요. 코딩 알고리즘을 통해 코로나19의 일상을 풀어볼 수도 있죠.

근현대로 넘어오며 비위생적인 환경에선 병에 걸리기 쉽다며 손 씻기와 청결을 강조하게 됐다.

근현대로 넘어오며 비위생적인 환경에선 병에 걸리기 쉽다며 손 씻기와 청결을 강조하게 됐다.

전시를 기획한 나훈영 학예연구사는 “코로나19로 어려운 상황에서 전시 자료 수집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다시’‘함께’‘같이’였다”며 “다시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역병을 끝내고 일상을 회복할 것임을 보여준다”며 마지막 공간을 소개했어요. 인천 계산 1동 자율방범대의 마을 방역활동, 전남 순천의 권분운동에 참여한 라일락봉사단, 천 마스크 제작 재능기부를 이끌어낸 개인 등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담겼죠. 이러한 모습은 전시장에 흐르는 노래 ‘당연한 것들’과 어우러져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역병, 일상'
장소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 1

기간 2월 28일(월)까지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5시(4시까지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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