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약 3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기업이 있습니다. 선박 엔진을 만드는 곳인데요. 당연히 배를 많이 만들어야 엔진도 잘 팔릴 텐데 2018년~2020년 전 세계적으로 선박 발주 수요가 부진. 일감이 없으니 더 싸게 수주를 하고, 엔진도 제값 받기 힘들고. 뭐 이런 사이클의 반복이었죠. 다행히 조금씩 숨통이 트이는 중! 오늘은 HSD엔진입니다. 구독자 ‘ape***@naver.com’님께서 제안해 주셨습니다.
HSD엔진은 1983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엔진사업부에서 출발한 회사입니다. 외환위기 직후 한국중공업 분리 과정에서 삼성중공업, 대우중공업(현 대우조선해양) 엔진 부문을 모아 HSD엔진으로 재탄생. 조금은 특이한 HSD는 이 세 업체의 영문 이니셜 첫 글자를 따서 만들었다네요. 중간에 두산엔진으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었는데 현 CEO가 대우조선해양 출신인 걸 보면 여전히 다양한 DNA가 회사에 남아 있는 듯.
이름은 생소해도 꽤 건실합니다. 세계 2위 선박용 디젤엔진 생산설비를 보유했죠. 디젤엔진 중에서도 저속 엔진(배 전체에 딱 1개 들어가는 메인 엔진)이 주력인데요. 크기가 엄청나게 큰 데다 기술 난이도도 높은 편! 메이저 조선사 중에도 엔진은 사다 쓰는 곳이 많습니다.
조선업 활기에 수주 급증…흑자 전환할 듯 #친환경 듀얼엔진 덕에 장기 전망도 Good!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 이슈는 불안
실제로 엔진 자회사가 없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HSD엔진의 주 고객인데요. 두 회사가 수주하는 선박의 엔진 중 70% 정도를 공급한다고 보면 됩니다. 얼마 전 앤츠랩에서도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데 현대중공업은 자체 브랜드 ‘힘센엔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침체에 빠졌던 조선업계에 활기가 돌기 시작한 건 코로나발 물류 대란 덕입니다. 지금도 진행형인데요. 특히 극심한 건 컨테이너선! 모자라면 만들어야죠. 지난해 국내 조선업체의 수주물량 중 컨테이너선의 비중은 39%에 달했는데, 이는 최근 5년 평균(14%)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나비효과? LNG선은 물론, 경기 둔화로 걱정하던 탱커선 신규 수주도 각각 전년 대비 19%, 14% 증가했죠.
주 고객이 오랜만에 일감 걱정 없는 시기를 맞으면서 HSD엔진도 함께 웃게 됐습니다. 지난해 신규 수주액이 1조원을 돌파했고, 2020년 말 7300억원까지 줄었던 수주 잔고는 2021년 3분기 말 1조2037억원으로 증가.
잘 팔릴 땐 가격도 제값을 받을 수 있으니 수익성도 좋아지는데요. 계약 시점과 매출 인식 사이의 시차를 고려할 때 올해 2분기부터 지난해 수주 효과가 반영되기 시작할 듯. 흑자 전환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멀리 보아도 매력이 충분합니다. 선박 노후화가 첫 번째 포인트! 사실 조선·해운업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10년 이상 유례없는 침체기를 겪었는데요. 차든 배든 때가 되면 바꾸고 그래야 하는데 경기가 안 좋으니 다들 좀 미뤘습니다. 2013년 이후로 선박 노후화(평균 선령 상승)가 꾸준히 진행 중인데요. 그래 봐야 천년만년 탈 순 없죠. 꾸준한 교체 수요를 기대할 수 있는 대목!
또 하나는 규제의 변화. 요즘 새 차 고르실 때 ‘전기차로 바꿔야 하나?’ 고민 한번씩들 하실 텐데요. 배도 그렇습니다. 바야흐로 ESG의 시대. 국제해사기구(IMO)가 설계 효율 규제(EEDI), 최대 출력 규제(EEXI) 등을 의무화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요. 한 마디로 온실가스(GHG) 배출량을 줄이라는 거죠. 자연히 친환경 엔진 수요도 커지는 중.
HSD엔진의 주력 제품이 바로 이중연료(DF, Dual fuel) 엔진! 2013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죠. 말 그대로 기름과 LNG를 번갈아 쓰도록 만든 건데요. 자동차로 치면 하이브리드카 느낌? LNG 선박은 당연히 DF엔진을 쓰는데 최근엔 컨테이너선 같은 상선에서도 많이 탑재하죠. HSD엔진이 지난해 수주한 엔진 중 절반이 DF엔진이었는데요. 기존 엔진보다 가격이 10~15%가량 비싸기 때문에 당연히 수익성 UP!
HSD엔진은 얼마 전 새 주인을 맞았습니다. 선박 부품업체 인화정공인데요. 지난 11월 기존 최대주주인 사모펀드로부터 지분 33.45%를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 사실 2018년 이 사모펀드가 두산중공업으로부터 지분을 인수할 때 이미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했던 터라 예정된 수순이었달까요. 부품-엔진 수직계열화에 성공했으니 다양한 형태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겠죠?
업황 회복은 반가운 일이지만 약간 걸리는 부분도. 사실 선박 엔진 쪽은 원천 기술을 MAN-ES와 WinGD 메이저 두 곳이 거의 가지고 있습니다. 일부 예외가 있지만 대부분 엔진 제조사가 이들에게 로열티를 지불하고, 라이선스 생산하는 형태. DF엔진도 디젤엔진 기반이라 상황은 비슷합니다. 통상 엔진 가격의 5% 이상을 라이선스 비용으로 쓰죠. 많이 팔아도 돈을 많이 남기긴 쉽지 않다는 의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합병 건도 리스크 요인. EU 집행위원회가 ‘기업결합 불허’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는데 조만간 발표를 할 거 같네요. 사실 두 회사가 합치는 건 HSD엔진 입장에선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주 고객인 대우조선해양이 현대중공업(자체 엔진 보유) 쪽으로 가면 아무래도 매출이 감소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합병 리스크는 이미 주가에 반영된 측면이. 합병이 불발될 경우 도리어 호재로 작용할 수 있죠. 회사 측은 혹 대우조선해양 쪽 매출이 감소해도 중국에서 메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나타내는 중. 실제로 수주잔고 중 중국의 비중이 현재 45%까지 상승! 가급적 자국 엔진을 쓰려던 중국 조선사도 친환경 압박에 HSD엔진을 많이 찾는다고 하네요.
결론적으로 6개월 뒤:
근데, 회사 이름은 좀 바꿔야 하지 않을까?
※이 기사는 1월 7일 발행한 앤츠랩 뉴스레터의 일부입니다. 건강한 주식 맛집, 앤츠랩을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