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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10%가 지구 멸망 부추긴다, 멋지게 입은 더러운 이 산업 [패션, 지구촌 재앙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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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해 12월 21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위치한 헌옷수출업체 유창트레이딩. 하루 중고 옷 28t이 분류돼 새 삶을 얻는다. 장진영 기자

지난해 12월 21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위치한 헌옷수출업체 유창트레이딩. 하루 중고 옷 28t이 분류돼 새 삶을 얻는다. 장진영 기자

지난달 21일 경기도 광주의 헌 옷 수거ㆍ수출 업체 유창트레이딩. 1만3223㎡(약 4000평) 부지 공장 건물 두 곳에선 천장까지 6~7m 높이로 쌓아 올린 옷이 작은 산을 이루고 있었다. 포크레인이 공사장에서 흙을 떠내듯 옷을 퍼내 컨베이어벨트 위에 내려놓으면 직원 100여명은 옷더미를 재빠르게 80종으로 분류해냈다. 이 업체가 처리하는 헌 옷은 하루 28t. 분류한 뒤 아직 쓸모 있다고 판정받은 옷은 400kg짜리 압축 블록으로 포장돼 주인을 기다린다. 99%는 해외로 수출되고 일부는 국내 중고 옷 시장에 진입한다. 유종상 사장은 “버려진 옷이지만 헤지거나 낡은 것은 드물고, 유행이 지난 SPA(패스트패션) 브랜드 옷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21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위치한 헌옷수출업체 유창트레이딩의 모습. 분류된 옷은 블록으로 포장돼 수출된다. 장진영 기자

지난해 12월 21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위치한 헌옷수출업체 유창트레이딩의 모습. 분류된 옷은 블록으로 포장돼 수출된다. 장진영 기자

연간 새 옷 1000억벌을 만드는 인류  

‘멋지게 차려입은 더러운 산업(Stylish Polluter)’으로 불리는 패션 산업은 지구 멸망 시나리오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인류의 옷장은 한계에 달한 지 오래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매년 6200만t의 새 옷이 소비된다. 20년 전의 두배 정도다. 맥킨지는 연간 약 1000억 벌 만들어진다고 분석했다. 이 추세가 계속되면 2030년 옷 소비는 1억200만t으로 증가한다. 가격을 낮추고 빠르게 유행 제품을 만들어 내는 패스트패션 전성기의 부작용이다. 

 미국 소비자는 5.5일마다 새 옷을 산다고 엘렌 맥아더 재단 보고서는 전했다. 1996~2021년 사이 유럽 소비자의 의류 구매는 40% 증가했다. 평균적인 영국 소비자는 연간 26.7kg의 새 옷을 산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현재 의류 재활용은 업사이클링이 아닌 다운사이클링”이라며 “전체 사이클로 보면 의류는 다 쓰레기가 된다”며 “많이 만들고 빠르게 버려지는 패스트 패션이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패션 데이터 플랫폼 패션유나이티드에 따르면 글로벌 패션ㆍ섬유 산업 규모는 3조 달러(약 3612조원)로 700만명이 이 분야 종사자다. 패스트패션 산업의 급성장이 규모를 키웠다. 패션의 빛나는 시절로 기록할만하지만, 환경 파괴의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패션 산업은 온실가스의 8~10%(연간 4억~5억t) 유발하고, 전체 산업용 폐수 배출량의 20%(약 79조L)에 대한 책임(UNEP)도 있다. 한국의류·섬유 재활용협회 정석기 사무장은 “의류 재활용 과정에서 현실과 안 맞는 문제도 많은데 정부에 의견을 제시하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갈림길에 선 패션 산업  

다행히 패션 기업들은 ‘원죄’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샤넬에서부터 H&M까지 앞다투어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디자인을 다시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5일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은 새로운 ‘기후 행동을 위한 패션 산업 헌장’을 발표했다. 이 헌장에 서명한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나이키 등 130여개의 패션 브랜드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맥켄지와 패션 전문 매체 비즈니스오프패션(BoF)이 패션 기업 대표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3%가 ”과잉 공급을 피하기 위해 재고를 줄일 것“이라고 응답했다. 61%는 ”품목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재고를 관리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연세대학교 의류환경학과 고은주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며 "책임 있는 소비행동 양식들이 전파되고 있으며, 이에 지속가능패션 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변화하는 중고시장.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변화하는 중고시장.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패션 산업 재편 기회, 헌 옷

소비자 변화는 중고의류 시장에서 느낄 수 있다. 지난달 21일 오후 2시 서울 성수동 중고의류 매장 ‘밀리언아카이브’는 평일 오후인데도 활기가 가득했다. 264㎡(약 80평) 매장의 주력 상품은 빈티지 ‘어글리 스웨터’ 또는 ‘할머니 가디건’이다. 정은솔(33) 밀리언아카이브 대표는 “빈티지는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유행한 옷들인 만큼 시대별 스타일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취향에 따른 선택의 폭이 매우 넓다”며 “요즘 브랜드에서는 보기 어려운 손뜨개 패턴이나 디테일 장식 덕분에 오래된 옷이지만 오히려 새롭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고 의류의 산업화는 패션 재난 극복을 위한 핵심 전략 중 하나다. 넘치는 헌 옷을 패션의 주류로 만들어 산업을 지속가능하게 재편하는 움직임이다. 패션 업계는 2030년 탄소 절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옷장의 절반 이상을 중고품으로 채워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현재는 생산되는 옷의 13%만이 중고 시장에 재진입한다.

지난해 12월 21일 서울 성동구 밀리언아카이브 중고 의류 매장에서 시민들이 크리스마스에 입을 옷을 고르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지난해 12월 21일 서울 성동구 밀리언아카이브 중고 의류 매장에서 시민들이 크리스마스에 입을 옷을 고르고 있다. 임현동 기자

“남 의식 덜하는 MZ세대, 중고의류 소비층 부각”

중고 의류의 중심 상권도 전국 곳곳에 생기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 위치한 ‘비바무역’에서는 폴로 셔츠 또는 샤넬ㆍ프라다만 모아둔 행거를 따로 둘 정도로 브랜드별로 중고 의류를 진열한다. 일산 식사동 구제거리에는 100여개의 구제품 매장이 거리 곳곳에 자리한다. 소비자 심리학 전문가인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물건이 귀할 때 자라 소유욕이 강한 기성세대와 다르게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란 MZ(밀리네얼+Z)세대는 소유에 대한 집착이 덜하고 남이 어떻게 볼지에 대한 의식도 적어 중고 의류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래의 옷장엔 중고로 산 의류의 비중이 대폭 증가한다.※표는 채널의 대표적 브랜드 예시.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미래의 옷장엔 중고로 산 의류의 비중이 대폭 증가한다.※표는 채널의 대표적 브랜드 예시.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미국ㆍ유럽 등 해외에서는 이미 중고 의류 산업 덩치가 커지고 있다. ‘중고 의류업계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스레드업(thredUP)’은 명품 구찌에서부터 중저가 의류 갭(GAP)까지 하루 평균 10만벌이 넘는 헌 옷을 온라인에서 판매한다. 지난해 3분기 매출은 6330만 달러(약 751억원)로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35% 증가했다. 제임스 라인하트 스레드업 최고경영자(CEO)는 “소비자는 지속가능성을 최우선시하며 유통업계는 중고 거래를 산업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고, 정부는 자원 절약과 재활용을 통해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친환경 전환을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보스턴 컨설팅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중고 의류 시장 규모는 400억 달러로, 5년 뒤 두 배 가까이 성장해 2025년 77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분석된다. 2027년에는 패스트패션 브랜드 시장 매출을 뛰어넘을 전망이다. 한국도 당근마켓, 번개장터 같은 중고 거래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온라인으로 중고 옷을 사고파는 일이 빈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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