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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작업하다 또 감전사…"한전 대책으론 근본해결 못한다" 왜

중앙일보

입력

한국전력이 근로자 감전사고를 막기 위해 전력선에 직접 접촉하는 작업을 퇴출하는 등 예방 대책을 내놨다. 최근 여주 신축 오피스텔 전기 공사 과정에서 협력 업체 근로자가 사망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전력 접촉 퇴출, 정전 후 작업 확대 

전기공사 작업 현장. 해당 사진과 여주 전기공사 감전 사망사고는 관계 없음. 중앙포토

전기공사 작업 현장. 해당 사진과 여주 전기공사 감전 사망사고는 관계 없음. 중앙포토

9일 정승일 한전 사장은 ‘안전사고 근절을 위한 특별대책’을 발표하고, 협력업체 직원 감전 사망사고에 사과했다. 한전은 3대 주요재해인 감전·끼임·추락 사고를 막기 위해 앞으로 미리 정한 안전 요건이 충족한 경우에만 작업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감전사고를 막기 위해서 전력선에 직접 접촉해 작업하는 ‘직접활선’ 작업을 퇴출하고 정전 후 작업을 확대한다. 또 전선에 접촉하지 않는 간접활선 작업도 늘린다. 한전은 “2018년부터 간접활선 작업으로 전환하고 있으나 약 30%는 여전히 직접활선으로 작업이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한전은 간접활선 현장 적용률을 높이기 위해 2023년까지 9종의 공법을 추가로 개발한다.

끼임 사고를 막기 위해 전기 공사용 절연 버킷(고소작업차) 차량에 고임목 등 밀림 방지장치 설치도 의무화한다. 고임목 설치를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먼저 확인한 후 작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근로자가 전주에 직접 오르는 작업도 전면 금지한다. 원래 2026년까지 전국 4만3695개소 철탑에 설치하려고 했던 추락방지장치도 2023년까지 설치를 당기기로 했다. 추락 방지망 설치 위치를 철탑 최하단 암(Arm) 하부 10m로 조정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전기공사업체 관리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모든 전기공사현장에 안전담당자도 1명씩 배치한다. 또 사전에 신고한 내용이 실제 공사 현장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인력·장비 실명제도 도입한다. 이를 안전담당자가 전수 검사해 부적정행위가 나오면 적발 업체와 사업주의 한전 공사 참여 기회를 박탈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도 도입할 계획이다. 공사 수주 업체의 안전관리비를 한전이 지원하거나 한전이 직접 구매해 주는 제도도 도입해 업체 부담을 완화한다.

“중대재해법시 한전 사장 처벌”

정승일 한국전력 사장. 한국전력

정승일 한국전력 사장. 한국전력

한전이 이 같은 강도 높은 대책을 내놓은 것은 지난해 11월 경기 여주시에서 발생한 오피스텔 전기 작업자 A씨 감전 사망사고 때문이다. 협력업체 직원인 A씨는 원래는 2인 1조로 작업해야 하지만, 혼자서 일을 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A씨는 감전을 막아주는 고무절연 장갑 대신 면장갑을, 고소절연작업차 대신 일반 트럭을 사용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노동부는 한전 지사장과 하청 업체 현장소장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안경덕 고용부 장관은 “한전 사장과 통화해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하면 한전 사장도 처벌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며 한전 안전 관리 강화를 촉구했다.

한전 책임 묻기만으로 해결 힘들어

전문가는 안전총괄책임자인 한전이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은 필요한 조치라는 평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근본 문제를 모두 해결하긴 어렵다고 지적한다. 특히 한전의 직접 공사가 불가능한 구조에서 안전 책임을 한전에게만 묻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현행 전기공사법상 한전은 직접 공사를 할 수 없고, 면허를 가진 공사 업체에 시공을 맡겨야 한다. 대체로 영세한 공사업체가 시공을 하는 과정에서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기공사업 참여가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면서 소규모 업체 참여가 급증했고, 관리 사각지대가 커졌다는 게 한전 설명이다. 실제 2001년 1만321개에 불과했던 전기공사업체는 2020년 1만9358개로 87.5% 급증했다.

안전 관련 비용도 문제다. 한전은 이번 사건으로 올해 안전예산을 전년 대비 2000억원 늘린 2조5000억원으로 편성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한전이 대규모 적자를 보는 상황에서 안전 관련 예산을 적극적으로 늘리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전기요금 등으로 한전에 적정한 보상을 해주지 않으면, 그만큼 관련 인프라 투자에 소홀해 질 수 밖에 없고, 이는 결국 국민 피해로 돌아오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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