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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하현옥의 시시각각

갭투자 권하는 상생임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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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정부가 전·월세 가격 안정을 위해 임대료를 5% 이내로 인상하는 임대인에게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을 완화하는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사진은 지난달 21일 서울 시내 부동산중개업소에 붙은 전월세 안내문. [연합뉴스]

정부가 전·월세 가격 안정을 위해 임대료를 5% 이내로 인상하는 임대인에게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을 완화하는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사진은 지난달 21일 서울 시내 부동산중개업소에 붙은 전월세 안내문. [연합뉴스]

 ‘상생(相生)’ 남발의 시대다. ‘둘 이상이 서로 북돋워 함께 잘 살아간다’는 뜻의 상생이 시대의 유행어처럼 각종 정책과 공약에 남용되며, 그 의미는 퇴색하고 있다. ‘윈(win)-윈(win)’이 아닌 대의를 앞세워 한쪽의 희생을 종용하는 듯한 어그러진 뉘앙스가 담기면서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2년 경제정책방향’에 담긴 ‘상생임대인’도 그 연장선상에서 읽힐 듯하다. 신규나 갱신 계약 시 임대료를 ‘직전 계약’ 대비 5% 이내 인상(유지·인하 포함)한 임대인이 해당 계약을 2년간 유지하면, 양도소득세 비과세 특례 적용을 위한 실거주 요건(2년) 중 1년을 충족한 것으로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정부는 시세차익을 노린 ‘갭투자(전세보증금을 끼고 적은 돈으로 집을 사는 것)’를 막기 위해 양도세 비과세 특례 적용에 실거주 요건을 추가했다. 현행법상 1가구 1주택자는 일정 보유 기간(2년)만 채우면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조정대상지역의 경우 실거주(2년)도 채워야 한다. 그 결과 집주인의 ‘자기 집 입성 러시’로 집을 비워야 하는 세입자도 늘었다. 전셋값 불안 요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한폭탄도 다가온다. 2020년 8월 기습 도입한 ‘임대차2법’으로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한 임차인의 계약만료 시점이 도래하기 때문이다. 전셋값을 5%밖에 올리지 못했던 집주인이 새로운 계약을 맺으며 시세에 맞춰 가격을 인상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전셋값 급등을 막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카드가 ‘상생임대인’이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집을 팔 때 양도세 폭탄을 피할 수 있는 실거주를 인정받고, 세입자 입장에서는 전셋값 급등을 피할 수 있어 상생이라는 것이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필요를 충족하는 묘수로 보인다.

 하지만 상생임대인이 되기 위한 조건을 찬찬히 뜯어보면 실효성에 의문이 인다. 일단 집주인은 1가구 1주택자여야 하고, 임대 개시 시점의 공시가격은 9억원(시세 12억~13억원) 이하만 해당한다. 또한 지난해 12월 20일부터 오는 12월 말까지 체결한 계약에만 한정된다.

 이 때문에 올해만 적용되는 한시적 양도세 완화 조건은 선거용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다. KB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2억원을 넘어선 만큼 공시가격 9억원 이하란 조건에 맞는 집도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 있다.

전세값 5% 이내 올리는 임대인에
양도세 비과세 실거주 요건 완화
어정쩡한 조건, 실익 없는 미봉책

 신규 계약에서 상생임대인이 되기로 했다면 1년 실거주 요건을 채우기 위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신규 2년+갱신 2년)을 쓴다는 가정하에 4년간 임대료 5% 이내 인상에 발이 묶여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실거주 1년을 채우기 위해 결국 다시 자신의 집에 들어와 살아야 한다. ‘눈 가리고 아웅’ 같다.

 게다가 1가구 1주택자가 임대인이 되려면 자신의 집을 세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집주인도 어딘가의 임차인이 돼야 한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해 집을 산 뒤 전셋값이 싼 곳에 세입자로 사는 갭투자를 조장하는 것”이라는 어느 네티즌의 지적처럼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보낼 수도 있다.

 앞뒤가 꽉 막힌 듯한 어정쩡한 정책에는 수차례 이어진 부동산 정책으로 인해 자가당착에 빠진 정부의 고민이 묻어난다. 임대차2법으로 인한 이중 가격의 후폭풍은 걱정스럽다. 하지만 투기를 막으려 호기롭게 꺼내 들었던 양도세 특례 조항의 실거주 요건을 쉽게 포기할 수도 없고, 이른바 적폐로 간주한 다주택자와 고가주택에는 어떤 정책적 혜택도 제공할 수 없다는 결기 말이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야기한 부동산 시장의 왜곡을 풀기 위한 근본적 대책을 찾지 못한 채 시행하는 상생임대인은 미봉책이다. 일단 문제를 덮고 넘어가려는 전시행정식 정책은 무용지물이 될 공산이 크다. 그저 ‘우리는 손 놓고 있지 않았다’는 정부 당국의 알리바이용 정책일 뿐이다.

하현옥 금융팀장

하현옥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