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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열사들의 어머니’ 아들 이한열 곁으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지난해 6월 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제34주기 이한열 열사 추모식에서 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배 여사는 아들의 죽음 이후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뉴시스]

지난해 6월 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제34주기 이한열 열사 추모식에서 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배 여사는 아들의 죽음 이후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뉴시스]

1987년 6·10 민주항쟁에 중요 역할을 한 고(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가 9일 광주광역시 조선대병원에서 별세했다. 82세.

조선대병원 등에 따르면 배 여사는 지난 3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지난 8일 퇴원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다시 쓰러져 조선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소생하지 못했다.

가정주부였던 배 여사는 아들의 죽음 이후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전남 화순 출신으로 연세대에 다니던 이 열사는 87년 6월 9일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졌다. 이 열사 사망은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배 여사는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세상을 떠난 열사들의 유가족이 모인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에 참여했다. 민주화 시위·집회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힘을 보탰다. 98년부터 유가협 회장을 맡아 422일간 국회 앞 천막 농성 등을 통해 민주화운동보상법과 ‘의문사 진상 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2019년에는 용산참사 소식을 듣고 용산범대위 공동대표를 맡았다. 배 여사는 고 전태일 열사 모친 고 이소선 여사와 박종철 열사 부친 고 박정기씨 등 한울삶 회원들과 함께 아들이 못다 한 민주화운동을 이어갔다. 이소선 여사 등이 만든 한울삶은 유가협 회원 생활공동체다.

최근에는 군부 탄압에 시달리는 미얀마인을 만나 위로했다. 배 여사는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은 지난해 5월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5·18 국립묘지에서 전남대 유학생 등 미얀마인 6명을 만나 “가족이나 친구들이 죽었다고 끝난 게 아니다. 죽어서도 함께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 여사는 2020년 민주화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그해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아직도 민주주의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님”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등에서는 애도를 표시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페이스북에 “오직 민주주의 한 길 위해 노력하셨던 어머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비통한 마음을 누를 수가 없다”고 썼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다시는 민주주의를 위해 삶을 희생하고 고통받는 가족들이 생기지 않는 나라가 됐으면 한다’는 이한열 열사와 배은심 여사님의 그 뜻, 이제 저희가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는 “어머님은 자식에 대한 사랑을 대한민국 미래 세대 모두에 대한 더 큰 사랑으로 승화시켰다”며 “감히 넘볼 수 없는 숭고한 정신과 꼿꼿함을 우리 모두에게 남기셨다”고 했다. 고인과 민주화 현장을 누빈 문정현 신부는 페이스북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졌다”고 적었다.

배 여사의 빈소는 광주 조선대병원 장례식장 1분향소에 마련됐다. 발인은 11일 오전 9시, 장지는 북구 망월동 8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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